박영자(논설위원 / 수필가)

박영자(논설위원 / 수필가)

엊그제 한참 못 만났던 친구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친구는 키도 훤칠하고 늘씬한 체격인데 오늘따라 낯빛도 밝고 아주 건강해 보였다. 반가운 인사를 나눈 다음 나는 ‘건강해 보이는데 무슨 운동을 하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낄낄거리며
  “게을러서 특별히 하는 운동도 없어. 오직 숨쉬기운동만하지….”
친구의 대답이 걸작이라 같이 한바탕 웃었지만 그저 겸손의 말이려니 했다.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오면서 그 친구가 말한 ‘숨쉬기운동’ 이라는 말이 자꾸 되뇌어졌다. 그래 맞다. 나도 태어나서부터 일흔 살이 넘은 이 나이까지 숨쉬기운동을 했기에 지금 살고 있는 것이다. 단 1분이라도 숨쉬기운동이 멎는다면 죽고 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숨쉬기’ 만큼 중요한 것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그저 무심하게 살아온 ‘숨쉬기’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전에는 가까이 사는 동생에게서 일찌감치 전화가 왔다.
  “언니, 오늘 급한 일 없으면 밖에 나가지 마. 꼭 나갈 일 있으면 황사마스크 쓰고 나가     고...”
오늘 ‘우리 동네 일기예보’ 에 미세먼지 농도 ‘나쁨’…야외활동 자제하고, 외출 시 마스크 착용해야한다고 나와 있단다.  내가 시간이 나면 우리 집 앞의 불무공원을 걷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동생이 얼마 전에는 스마트폰에 ‘우리동네 날씨’ 라는 앱을 깔아주면서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고 주의 하면서 살아야한다고  했건만 습관이 되지 않아서 잊어버리기가 일쑤다. 황사마스크도 사다 놓고는 까맣게 잊고 밖에 나가서야 아차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들 안 쓴 마스크를 나만 유난스럽게 쓰는 것도 쑥스럽고 거북하여 그냥 지내곤 했다.
 
  ‘우리동네 날씨’를 확인해 보았다. 서풍에 실려 온 중국발 스모그의 유입과 국내 오염 물질 축적으로 인해 어제에 이어 오늘도 전국 대부분의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예보했다. 서울을 비롯한 경기 일부 지역에는 초미세먼지 주의보까지 발령되었다.
  걷기운동이 좋다고 이구동성이고, 나이 들수록 햇볕을 많이 쬐어야 뼈 건강에 좋다는데 ‘미스황’ 이 그것을 방해하다 못해 협박까지 한다. 참말 요즘 이래저래 살기 힘들다. ‘미스황’은 미세먼지+스모그+황사의 합성어다. 이름은 예쁜데 속마음은 고약하다 못해 악질이라 우리의 건강은 물론 생명까지도 위협한다.
  
   세계보건기구는 미세 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중국 난징의 종양병원에는 8세 소녀가 폐암에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고 중국 언론이 보도했다. 아이의 집은 자동차가 번잡하게 오가는 도로변이었고 의사는 미세 먼지 탓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폐암 같은 암은 세포 손상이 오래 누적돼 생겨나는 병이란다. 열 살도 안 된 아이가 그런 노인의 병에 걸려버린 것이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은 육안으로도 대기가 뿌옇게 흐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황사는 발원지인 몽골 서남부 지방의 가뭄으로 눈이나 비가 내리지 않아 모래 폭풍이 발생하면서 한반도로 날아온다는 것이다. 이 모래폭풍이 최근에는 연 60회 정도로 늘어나 심각한 수준이다. 몽골은 국토의 80%가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2010년 조사에서 호수 1166개, 강 877개, 우물 2277개가 말라붙었다니 참말 심각한 상태다. 과도한 목축으로 초지의 사막화가 큰 원인이라니 이것도 자연보다는 인간 때문인 것이니 한심한 일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스모그’ 다. 미세먼지나 황사는 마스크 등으로 어느 정도 방어를 한다지만 스모그는 그렇지 못하다. 환경전문가들은 스모그에 비하면 황사는 양반이라고 할 정도로 스모그가 만만치 않은 존재다. 스모그는 자동차, 공장, 가정에서 사용하는 화석연료로 인해 발생한다. 중국은 석탄을 많이 때서 공기가 더러우며 스모그에는 황사보다 더 많은 오염물질이 들어 있어 병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미스황 때문에 숨쉬기 운동도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무심하게 살았던 숨쉬기조차 신경 쓰고 조심해야 한다니 어쩌겠는가. 적응하며 살 도리밖에 없는 것인가. 황사 마스크를 쓰고 피부노출을 최대한 줄이란다. 물을 많이 먹어 오염물질을 배출하라니 그렇게라도 해 볼 도리밖에. 숨쉬기 운동도 잘 해야 하는 세상을 살아야 할 우리의 숙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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