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사람을 살리고 구하는 수사’

얼마전 청주지방검찰청을 방문한 김진태 검찰총장이 강조한 말이다. 그는 직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우리가 수사하고 제재하는 대상은 범죄행위이지 행위자가 아니다. 개인적인 가치관이나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늘 법과 원칙에 따라 바르고 합리적인 일 처리를 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백번 천번 옳은 말이다. 문제는 이같은 인식이 검찰총수에만 머물러선 안된다는 거다. 일선 말단 수사관까지 김 총장의 뜻이 먹혀 들어가야 진정 사람을 살리고 구하는 수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 수사를 당해 본 사람들은 어디가서 하소연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는 경우가 많다. 충북경찰의 충북예총 보조금 관련 수사만 해도 그렇다. 경찰은 넉달이 넘도록 질질 끌면서 ‘아니면 말고’ 식의 먼지털이 수사로 진을 다 빼 놓고 예총 업무까지 마비시켰다. 더 나아가 자존심 하나로 먹고사는 문화예술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어 참담하게 만들었다.

경찰은 충북예총 보조금 수사와 관련해 회장과 사무처장에 대해 3가지 혐의를 적용했다. 업무상 횡령과 사기,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이중 사무처장은 횡령과 사기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그런데 애초부터 경찰의 표적수사 선상에 오른 회장에 대해선 검찰이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경찰이 얼마나 무모하게 수사권을 남용했는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경찰이 적용한 사기와 기부금품법의 부당함에 대해 말들이 많다.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는 한마디로 경찰의 짜맞추기식 수사행태가 만든 결과물이다. 다시말하면 대가성 있는 금품, 예를 들어 예총회보 광고료 등은 기부금 대상이 아닌데도 이를 포함, 액수를 부풀려 무슨 엉청난 비리가 있는 양 몰아갔다. 심지어 회장 며느리가 예총 직원들 고생한다며 식사비나 하라고 전달한 100만원도 기부금으로 몰아간 게 경찰이다.

사기 부분은 예총 회원들에게 자괴감과 암울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법 조항만 갖고 따진다면 1원짜리 사기도 사기라면 사기다. 그렇지만 법에도 인정이 있고, 눈물이 있고, 정상 참작이란게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법을 다루는 사람이 어떤 목적을 갖고 편협으로 일관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 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경찰이 충북예총에 적용한 사기혐의는 보조금 자부담에서 비롯됐다. 국민의 세금인 보조금이 투명하게 목적대로 사용돼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하지만 자부담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부담시켜야지 비영리단체인 예술단체에까지 부담토록 하는 것은 분명 제도적 모순이다. 더욱이 예술단체의 문화예술행사는 국가 또는 자치단체를 대신해 불특정 다수의 국민에게 문화예술향유 기회를 주는 공익성을 띤 재능봉사다. 근본적으로 전업률 2%도 안되는 척박한 현실에서 자부담 규정은 예술문화인들의 창작 토양을 피폐화시키는 주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보조금 사업비의 변칙 정산이 비일비재하고 형사처벌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게 현실이다. 이번 충북예총의 경우도 전년도 5%였던 자부담을 충북도가 10%로 늘려 부담을 가중시킨 것도 한 몫했다. 따라서 사업비 보조를 받기 위해 자부담 2400만원이라는 돈이 필요했고, 실무자가 이 돈을 행사참여 업체로부터 빌려 은행잔고증명을 만들어 제출한 것을 경찰은 사기로 옭아 맨 것이다. 즉, 자부담 능력도 없으면서 있는 것인 양 속여 보조금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말하면 충북도가 자부담 부담률을 종전대로 유지하고, 예총이 산하 단체에 보조금 자부담을 물렸더라면 이렇게까지 될 일도 아니다. 태생적으로 모순을 안고 있는 보조금 자부담 폐지를 위해 한국예총은 지난 2월 궐기대회를 열었으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폐지를 약속, 현재 정부에서 개선안이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충북예총 내사전 모 언론사와 청주시의원 재량사업비에 대해 내사를 벌였지만 이렇다할 혐의를 잡지 못하고 종결한 바 있다. 때문에 충북예총마저 그냥 넘어간다면 쏟아질 비난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을테고 이를 모를 리 없는 경찰이 저인망식 수사로 무리하게 결말을 냈다는 게 문화예술계의 시선이다. 무엇이 사람을 살리고 구하는 수사인지 곱씹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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