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율이 40%가 넘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지난 20일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4번째 확진 환자와 2명의 감염 의심자가 발생했다. 이번에 감염이 확인된 40대 여성은 국내 첫 감염자와 2인실 병실을 같이 썼던 환자의 딸로 이 병실에 4시간가량 머물렀다고 한다. 첫 감염자의 부인을 포함해 이 병실에 일정 시간 함께 있었던 3명이 모두 메르스에 감염된 것이다.
그런데 이 여성이 지난 21일 보건당국에 격리 치료를 요청했지만 당국이 이를 무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38도 이상의 발열과 급성호흡기(질환) 증상을 보이는 경우에만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고 격리 병상으로 이동시키고 있는데 이 환자는 그동안 감기 증상이 있었지만 38도 이상의 고열은 없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질병관리본부는 자체적으로 정한 기준에 따라 대응했겠지만 전 국민이 치료제도 없는 것으로 알려진 이 전염병에 공포심을 느끼는 상황에서 감염자의 가족이 스스로 요청한 격리 치료까지 거절한 것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결정이었는지 의문이다. 3
8도 이상의 고열이나 급성 호흡기 질환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는 유전자 검사를 해도 감염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그렇더라도 스스로 감염을 의심하는 당사자의 자발적 요청이 있으면 격리 치료하는 것이 당연하다. 더구나 이 여성이 격리 치료를 요청한 시점에도 이미 메르스의 전염성이 알려진 것보다 강한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3번째 환자의 경우 한 병실에 같이 있었던 것만으로 감염됐기 때문이다. 보건당국이 좀 더 경각심을 갖고 비상한 각오로 대응했어야 했다.
당국은 국내 첫 환자를 치료한 의사와 간호사 등 2명까지 감염 의심자로 확인되고 나서야 국가지정격리병상으로 이송해 유전자 검사를 시행하는 기준을 체온 38도에서 37.5도로 낮추는 등 검사 기준을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38도 이상인 경우에만 감염을 확인할 수 있다는 앞서 해명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 기준 변경의 이유로 메르스 환자의 경우 증상이 수시로 변화한다고 설명했다는데 그렇다면 당초 적절치 못한 기준을 금과옥조처럼 고집하다가 일을 키운 것은 아닌지도 따져봐야 할 것 같다.
보건당국은 처음부터 허술한 전염병 관리체계를 노출했다. 2013년 메르스중앙방역대책반을 만들어 대비해왔다고 하지만 정작 첫 환자의 경우 귀국 후 발열과 기침 등으로 병원 3곳을 돌아다녔는데도 당국이 이를 파악하지 못했고 나중에 일반 병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이 과정에서 가족, 다른 환자, 의료진 등 60여 명이 거의 무방비로 노출됐다. 이 중 3명이 감염됐고 2명은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대책반을 만들어 놓고 2년 동안 무엇을 준비했는지 모르겠다.
보건당국은 메르스 환자가 추가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불신을 더 키운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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