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논설위원 / 소설가)

 이건 전해오는 이야기인데 한번 들어 보렴, 지난날에 말이다 사또와 진사가 사냥을 나갔단다. 양반들이 거동하는 자리이니 수행원 겸 심부름꾼이 있어야 해서 진사가 자기 집 하인을 대동했단다. 그러니까 셋이서 나갔는데 그때에 총이라는 게 있었던지 사또와 진사는 포수차림으로 총을 한 자루씩 들고 앞장서고 하인은 사냥물을 꿰차고 묶을 도구를 손에 들고 허리에 두르고 뒤따라갔겠다.
 -때는 만화방창한 춘삼월 호시절이라 산속의 그윽함이 셋의 몸과 마음을 감싸 도는데 사냥물은 도대체 찾을 수가 없었다. “여보게 진사, 온 산을 헤매도 토끼새끼 한 마리 나타나지 않으니 아무래도 그냥 돌아감이 옳을 것 같으이!” “아마도 사또마님의 위엄이 이 산속까지 퍼져 있나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미물 한 마리 얼씬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사또마님은 여기 앉아 쉬어 계시고 저희가 한 행보 다시 해보겠나이다.” 해서 진사와 하인이 사또와 떨어져 산 구렁을 샅샅이 뒤지는데 하인이 갑자기 발길을 멈추고 속삭인다. “나리마님, 뭐가 보입니다. 저기 저기를 보십시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누릇누릇  희끗희끗 한 것이 아직 앙상한 덤불 사이로 어른거린다. 옳지, 틀림없이 짐승의 몸태다. 진사는 얼른 총을 조준했다. 그리곤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소리가 요란하게 골짜기를 타고 메아리쳐 나간다. 동시에 그 목표물이 푹 고꾸라지는 게 보인다. 또 한방을 쐈다. “맞았습니다. 맞았습니다!” 하인이 소리치며 앞질러 뛰어가고 진사가 부리나케 뒤따랐다. 그런데 앗, 그 목표물 앞에서 사색이 되어 있는 하인의 얼굴, 그 쓰러져 널브러져 있는 건, 사람 사람이었다. 행색으로 보아 산나물이라도 찾아 들어온 것 같은 처자의 몸체였다. 둘이 돌부처가 된 채 시신 앞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총소리를 듣고 사또가 달려왔다. “뭐, 뭐라도 잡았는가?” 하더니 이내 앞에 벌어진 광경을 보자 역시 돌부처가 돼버렸다. 셋의 돌부처들! 그런 채로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그 한참 후,  이윽고 사또가 하인에게 고개를 돌린다. “묻어라!” 나직한 어조이나 비장한 태도였다. 분부대로 하인이 시신을 다 묻고 나뭇가지로 감쪽같이 갈무리하고 나자 사또가 역시 아무 말 없는 채 두 사람을 향해 검지로 입술을 막아 세워 보인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셋은 산을 내려왔다. -
 집에 돌아온 진사는 말이다. 악몽에 휘둘려 잠을 설치고 말수가 적어지더니 몸이 점점 야위어가더란다. 하도 이상해서 안 마나님이 푸닥거리도 해보고 온갖 효험 있다는 보약제는 다 써보아도 소용이 없자 하루는 작정하고 물었단다. “이 보시오 당신, 뭣 말 못할 사정이 있나본데 이 마누라한테도 말 못할 사정이오. 확 풀어놓아야 응어리가 확 풀린다 하오.” 했더니 그때서야, 지난 날 그때의 모든 걸 마누라한테 풀어놓았다는구나. 그랬더니 그 마누라가 말이다 입을 꼬옥 한번 물더니, “사또가 묻으라고 했다고요?” 하더란다. 그러했는데, ‘소한테 한 말은 안 나도 처한테 한 말은 난다’더니 이 마누라가 입방정을 떨어 가장 친하다는 이웃마을 장진사댁에게 은밀히 발설했고 이게 또 돌고 돌아 소문으로 퍼져나가 마침내 그때 그 당시의 셋이 모두 잡혀갔더란다. 그래서 현장답사라는 걸 했다는데 이게 또 어인 일이냐. 그 처자의 시신이 묻힌 데를 파보니 거기서 개뼈다귀만 소롯이 나오더란다. 허허 참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니겠냐!
 -그때 집으로 돌아온 하인은 어느 때고 이 셋의 비밀이 들통이 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행랑에서 기르던 개를 남몰래 산으로 끌고 가서 그 처자의 시신과 바꿔치기를 하고 시치미를 딱 떼었다. -
 이래서 셋은 가까스로 살아남게 됐지. 그런데 말이다. 이 사실을 하인이 자랑삼아 은밀히 제 처에게 귀띔을 해주었는데 이걸 그 처가 가장 친한 하인의 처에게 자랑삼아 입방정을 떨고 이걸 처에게 들은 하인남정네는 또 다른 이에게 입방정을 떠니 이게 또 다시 소문으로 퍼져나가서 그 셋은 다시 공모로 잡혀 들어갔고 마땅히 살인의 죗값을 치렀다는 얘기다.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하면 말이다. 이 세상 모든 비밀의 들통은 바로 이 입방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일러주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 입방정으로 인하여 모든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게 되니 이에 할 말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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