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논설위원 / 시인)

나기황(논설위원 / 시인)

 “세대 간 화합과 /지속가능한 미래의 시작/노년세대의 결단과 용기 감사합니다.”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 앞에서 일단의 젊은이들이 들고 있었던 플래카드의 문구다. ‘청년이여는미래’라는 청년단체가 현행 ‘노인’의 기준연령인 65세를 점진적으로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대한노인회의 입장표명에 대해 감사인사차 들른 것이라 한다.
각계의 반응도 다양하다. 젊은이들은 미래세대의 ‘짐’을 덜어주려는 노인세대의 결단이 고맙단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 높은 세대의식의 발로라고 한껏 추켜세우고 있다. 내 것도 모자라 남의 것마저 빼앗으려는 세태에 비춰보면 앉아서 받던 밥상을 스스로 물리겠다는 발상자체가 어른대접을 받을만하다는 분위기다. 턱없이 부족한 노인복지를 늘려도 시원찮은 판에 그나마 근근이 연명하던 빈곤노인층을 아예 벼랑 끝으로 내모는 처사라고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노인이 ‘짐’이고 부담이라는 인식이 사회저변에 집단무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최근 SNS를 달궜던 부모에 대한 ‘희망나이’에서도 드러난다. 부모가 들으면 황당하고, 자녀가 들어도 민망한 얘기가 부지런한 누리꾼들에 의해 SNS를 타고 퍼졌다.
‘녹색평론’ 최근호 좌담에서 나온 내용이라는데 서울대 학생들한테 부모가 언제 죽었으면 좋겠냐는 ‘희망나이’를 물었더니 63세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유가 더 가관이다. 은퇴해서 퇴직금 다 쓰기 전에 바로 사망해(?)주어야 우수리가 남는다는 계산에서다. 서강대 교수가 베이비부머의 대학생 자녀들에게 물었다. ‘아버지한테 원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0% 이상이 ‘돈밖에 없다’는 답을 했다고 한다. 마당놀이 윤아무개가 들었으면 "이런 싸가지..."하고 손을 치켜 올렸을 것이다. ‘찌라시’ 수준의 우스개로 넘기다가도 문득 곰씹게 만드는 우울한 내용이다.
노인을 규정하는 나이를 올리자는 입장표명 만으로도 ‘미래세대’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다. 부모에게 바라는 것이 ‘63세 사망’과 ‘단지 돈’뿐이라면 한참 잘못된 생각이다.
‘인구절벽’을 코앞에 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노인(老人)은 직간접적으로 책임져야하는 사회적 부담인 것만은 사실이다. 슬프지만 맞는 얘기다.
단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노인세대가 ‘노인(老人)’아닌 ‘노인(No-人)’으로 취급받는다면 문제가 다르다.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은 665만 명으로 전체 국민의 13.1%를 차지하고 있으나, 2030년에는 노인이 전체국민의 24.5%에 달한다. 불과 15년 후면 4명에 한 명꼴로 노인비중이 커지는 사회가 된다. 알고도 준비하지 못한 역사적 과오가 얼마나 많았던가. 노인을 짐으로 생각하는 세대 간 단절을 극복하지 못하면 지금 상태로는 답이 없다.
노인을 경제적 사회복지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도 문제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하는 드라마 대사가 생각난다.
지금 노인세대가 겪고 있는 3중고의 실체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 땅의 노인세대는 “외롭고, 아프고, 가난하다.” 사회복지의 핵심이 '최소한의 안정적 삶'을 목표로 한다면, ‘삶의 최소한의 행복’을 목표로 하는 것이 ‘문화복지’다. 베이비부머세대를 포함한 노인세대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주체로 다시 일어서야 한다.
'노인기준연령‘을 상향조정하는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품위 있는, 노령화시대의 주역으로, 노년세대가 힘차게 문화복지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산업일선에서 흘린 땀이 문명의 '기적을 이루는데 밑돌이 됐듯이, 그들이 사는 문화적 삶의 모습이 로드맵이 되어 젊은 세대들에게 물려줄 또 하나의 문화유산이 돼야한다.
나이 듦이 재앙이 돼서는 안 된다. 외롭지 않게, 아프지 않게, 가난하지 않게 ‘노년’을 바라보는 사회가 진정한 복지사회다.  노인세대가 행복해야 젊은이들의 미래가 있다.
“노인(老人) 아닌  ‘노인(NO-人)을 반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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