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편집국 취재부 부국장>

김동진<편집국 취재부 부국장>

예정된 폐업을 앞두고 입원 환자들이 줄줄이 다른 병원이나 요양원으로 옮겨지던 지난 3일, 청주시노인전문병원 환자 보호자들이 청주시청을 찾았다.
환자 보호자 10여명이 서명한 ‘청주시노인전문병원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한 건의서’를 제출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건의서에서 “우리는 노조를 바라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조끼를 입고 근무하는 모습에 데모꾼 같은 마음이 들고 환자를 방패삼아 시민을 우롱하는 모습에 화가 날 수밖에 없다”며 “노조라는 이유로 비노조원과의 갈등을 조장했다”고 병원 폐업의 책임이 노조의 투쟁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특히 “보호자들은 내 부모에게 위해를 가할까 이제까지 참아왔다”며 “이제는 병원을 폐쇄로 몰고 있는 노조를 없애주고 병원 정상화를 통해 환자 가족의 아픈 마음을 달래 줄 것을 시와 시민들에게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진작에 환자 보호자들이 나서서 입장을 밝히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는 말도 덧붙였다.
환자 보호자들의 이같은 절규를 과연 노조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들이 병원을 폐업으로 이르게 하면서까지 투쟁의 명분으로 내세운 공공성이 과연 이들의 동의와 지지를 얻는다고 생각하는가.
‘공공성’이라는 것은 ‘널리 사회 일반에 이해 관계가 있는 성질’을 의미한다.
노조의 주장과 요구가 청주노인병원과 관련된 이해 관계자들 모두의 동의를 얻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면 공공성은 성립된다.
그러나 노조의 일방적 요구와 주장은 집단이기주의이자 투쟁 명분의 자기합리화일 뿐, 공공성과는 부합되지 않는다.
환자 보호자들의 “노조를 없애달라”는 울분이 이를 증명한다.
노동자들의 권익 찾기는 마땅한 그들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사실엔 이견이 없다.
하지만 타협과 절충을 통해 합리적인 접점을 찾아내는 것이 마땅한 일이지, 일방적인 주장과 요구만 앞세워 투쟁을 하는 것은 부여된 권리와 의무의 경계를 넘어선 이기주의다.
청주노인병원 노조는 병원 운영의 주체를 자임하고 있다. 그래서 공공성 확보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주장한다.
병원 운영의 주체라고 하면서 병원 폐업과 환자 피해에 대한 책임은 모두 경영진과 청주시에 있다고 떠넘긴다.
이기주의에 함몰된 ‘선택적 주체’에 불과하다.
특히 의료기관의 노조는 일반 민간기업과는 권리와 책무 면에서 엄격하게 구분돼야 옳다.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에서 노조가 근로를 통해 획득한 정당한 이윤을 합리적으로 재분배해달라는 요구는 권리이자 의무다.
허나, 이윤 추구보다는 공적 기능을 우선하는 의료기관 노조는 자신의 이익과 권리에 앞서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우선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전제되기 마련이다.
시내버스나 철도 파업이 대중의 지지와 참여를 얻지 못하는 이유도 이같은 맥락이다.
서민의 권익을 자신들의 이익 쟁취를 위한 볼모로 삼기 때문이다.
하물며 환자의 건강은 물론 심지어 생명과도 직결될 수 있는 병원 노조가 일반 민간기업 노조와 같은 투쟁방식을 택한다면, 그들의 요구와 주장에 동의하고 지지할 사회 구성원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묻지 않아도 알 일이다.
환자 보호자들처럼 위해가 두렵거나 나설 용기가 없어서 침묵하고 있을 뿐, 그들의 요구와 주장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청주시가 노인 건강 증진과 의료환경 확충을 위해 157억원이란 엄청난 세금을 들여 설립한 청주노인병원이 수년 동안 극심한 노사 갈등만 겪는 바람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연 노조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항변할 수 있는가.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내려놓은 채 전쟁의 두려움과 고통에 빠져있던 피란민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다 끝내 열병에 걸려 숨진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세상 어느 것 하나도 나와 관계없는 것은 없다. 인륜이나 도덕의 문제도 나의 일이며, 진리와 자유와 인도와 정의의 문제를 추궁함도 나의 일이다. 순전히 제 한 몸, 제 일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는 부끄러워하라”고 교훈한다.
중증에 걸린 노인 환자를 돌보는 노인병원의 노조라면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은 채 헌신적으로 그들을 돌보지 못할망정, 그들을 생명의 위협으로 내몰아선 안된다.
이제라도 사회적 책무를 재인식, 환자 보호자들로부터 “노조를 없애달라”는 비난 대신 “노조원들에게 감사하다”는 지지와 격려를 받는 노조가 되길 간곡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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