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임금이 두 시종을 불러 한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구해오라고 명하고, 다른 시종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을 구해오라고 명했다.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른 후에 두 사람이 각각 상자 하나씩을 가지고 나타났다. 좋은 것을 구해온 시종의 상자 속에도 나쁜 것을 구해온 시종의 상자 속에도 모두 사람의 혀가 들어 있었다. 혀로 하는 말은 가장 유익한 것인 반면에 가장 해로운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겠다.

가수들이 부르는 노랫말은 감정이입이 강력하다. 노랫말은 정서적인 언어로 짜여진 언어조직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다. 그런데 그런 노랫말을 반복하다 보면 가수 스스로의 삶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가수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노랫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노랫말이 뇌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의식 세계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다보면 잠재의식으로 연결되고, 잠재의식은 훗날 현실로 연결된다.

 

또 하루 멀어져간다/내뿜은 담배연기처럼/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점점 더 멀어져간다/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비워가는 내 가슴 속에/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조금씩 잊혀져간다/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또 하루 멀어져간다/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김광석 ‘서른 즈음에’)

 

김광석의 어느 콘서트에서였다. 객석에서 ‘서른 즈음에’를 불러달라고 신청했다. 그는 가수는 노랫말대로 된다는 말 때문에 이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다면서도 신청곡이니 부르겠다고 하였다. 그날 그의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처연하게 들렸다. 그리고 몇 해 후 그는 거짓말처럼 우리 곁을 떠났다.

배호는 ‘0시의 이별’을 불러 0시에 떠났고, 차중락은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불러 낙엽 따라 가버렸으며, 김현식은 ‘이별의 종착역’에서 떠났고, 산장의 여인 권혜경은 ‘재생의 길’을 걷다가 쓸쓸히 가버렸다. 송대관은 첫 곡 ‘세월이 약이겠지요’를 부른 후 몇 해를 기다린 끝에, ‘해뜰 날’을 불러 가요계의 정상을 차지하였다. 그러다가 ‘혼자랍니다’를 불렀다가 6년 간 가족과도 헤어져 히트곡 없이 혼자 지냈다고 한다.

칼릴 지브란은 그의 시 ‘예언자’에서 ‘그대의 육체는 그대 영혼의 현악기/ 그것으로 감미로운 음악이 울릴 것인지/ 또는 혼란스런 음을 낼 것인지는 그대에게 달린 일’이라고 하였다. 노랫말에 나타난 정서로 영혼을 이끌어서 노랫말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닐까 (계속)

<권희돈 청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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