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강홍씨, '빛에 대한 예의' 발간

 

아침 햇살이 방안 깊숙이 들어와 어둠을 밀었다. 유리창 무늬를 관통한 두툼한 빛 몇 가닥이 침대 머리맡 사진액자에 닿았다. 파타야 해변에서 찍은 신혼여행 사진이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도톰한 입술, 건드리기만 하면 눈물을 쏟아낼 듯 커다란 눈이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보이는 아내가 액자 속에서 나를 향해 웃는다. 아침 이슬에 젖은 꽃처럼 화사하고 푸른 미소. 입술을 일렁일 때마다 솔솔 풍기던 웃음 향기. 그러나 아내가 품고 있던 그 꽃은 이제 지고 없다. 아내한테는 알싸한 독풀 냄새만 난다. (‘빛에 대한 예의’ 중에서)

16회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온 이강홍(56·사진)씨가 첫 번째 단편소설집 ‘빛에 대한 예의’를 발간했다.

책에 실린 8편의 소설은 모두 저자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현장에서 직접 움직여 발로 써낸 소설 속 문장들은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감동을 전한다. ‘충북작가’ 등의 지면을 통해 발표된 작품들로 중편 소설 ‘직지에게 길을 묻다’는 지난 2013년 1회 ‘직지소설문학상’ 공모전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소설에 실린 주인공들의 일상은 대체로 비루하고 남루하다. 자살한 남편 대신 정육점을 운영하는 미망인, 불의의 사고로 두 눈의 시력을 잃고 만 화가, 12살 연상인 타국의 남성에게 시집 와 팍팍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이주여성 등 우울하고 어둡기 짝이 없는 작품 속 인물들은 그저 ‘살아남기’를 목표로 하는 이 시대 밑바닥 인간들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듯 보이는 이들에게도 희망은 있다고 소설은 말한다. 심지어 마지막 희망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이 오면 발버둥이라도 쳐 보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작가와 작품을 관통하는 명제다.

이강홍씨는 “소설을 시작한지 어느새 십 년이고 등단한지 오 년이 되었으니 이제 소설가라고 해도 될지 모르지만 여전히 소설이 뭔지 잘 모르겠다”며 “훌륭한 소설가라는 명예에 대한 꿈은 없다. 단지 어떤 사람이 내 소설을 읽고 행복할까, 어떤 사람이 내 소설에 관심을 가질까에 대한 고민이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표제작 ‘빛에 대한 예의’는 정신과 의사인 ‘나’를 주인공으로 한다. ‘나’와 ‘그녀’가 만나며 모범적으로 보이던 ‘나’의 일상이 조금씩 무너진다. 마치 첫사랑을 하는 청년처럼 ‘그녀’와의 연애에 취해 있는 동안 아내는 차근차근 이혼 준비를 해갔고, 급기야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아내가 이혼 소송을 담당했던 연하의 젊은 변호사와 재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결혼과 함께 ‘나’의 곁을 떠난 ‘그녀’는 비극적인 소식과 함께 다시 찾아온다.

소설가 안수길씨는 “작가는 단 몇 마디로 인물들의 개성을 잘 살려내는 장기를 지닌 외에 소재를 정선, 압축하면서도 소설의 분위기를 매끄럽게 이끌어가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 준다”며 “사건과 인물들 상호간의 관계가 실감 있게 다가오면서 주인공들의 빛을 향한 삶의 의지가 엿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평했다.

저자는 충북 진천 출생으로 주성대(현 충북보건과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충북작가’ 신인상, 2013년 1회 직지소설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책과나무. 272쪽.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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