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사회문화연구소 이음 개소

(동양일보 조아라 기자)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진양아파트 6동 102호. 화가 손순옥씨의 작품 ‘채송화’ 위로 ‘젠더사회문화연구소 이음’이라 새겨진 액자 모양의 작은 문패가 방문객을 반가이 맞는다.

다소 사무적인 이름과 달리 문을 열자 따스하고 아기자기한 풍경이 펼쳐진다. 20평짜리 아파트에 꾸려진 작은 공간에는 소박하고 단출한 살림살이들이 정갈하게 들어앉았다. 10명은 앉고도 남을 커다란 테이블과 네 개의 책상들이 이곳의 정체성을 알린다.

‘젠더사회문화연구소 이음’은 여성학 강사로 활동하던 김수정씨와 박현순 청주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 정은경 청주시 가경노인복지관장, 박인영 청주여성영화도서관 ‘소란’ 대표 등 네 명의 여성이 의기투합해 만든 공간이다.

저마다 자신의 위치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도 ‘페미니스트’라는 공통분모를 가졌던 이들은 각자의 연구 공간을 갈구하던 끝에 비로소 네 명이 함께 한 공간을 운영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올해 초 김수정씨가 성공회대 NGO대학원 실천여성학과 석사 과정을 마친 것이 동력이 됐다. 소장은 김씨가 맡았다. 나머지 세 명의 몫은 연구원이다.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가부장제 사회를 수평으로 연결해내자는 의미로 연구소 이름은 ‘이음’이라 지었다. 박인영씨의 합류로 충북NGO센터 내에 있던 ‘소란’도 이음 안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지난 16일 오픈하우스 행사를 열어 연구소의 개소를 알렸다. SNS로 전달된 초대장에 30여명이 응했다. 연구원들이 차린 다과에 지인들이 가져온 떡과 와플, 오미자, 더치커피가 더해져 풍성한 잔치가 됐다.

김수정 소장은 “우리 사회는 아직 가부장적인 사고가 만연된 문화를 갖고 있다. 이 가부장성은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아주 불편한 문화”라며 “이 불편한 문화를 어떻게 해체하고 재구성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그 고민을 주민교육을 통해 나누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기초 여성학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강의는 주로 김 소장을 비롯한 연구원들이 직접 한다. 이들은 그동안 수차례 대학 강단에 서 왔던 노하우를 십분 활용하려 한다. 서로의 숨결을 느끼며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도록 참가자는 5~10명으로 제한한다. 최소한의 실비도 받을 예정이다. 수업은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교재를 읽고 발제하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또한 여성단체 실무자를 위한 심화학습 과정을 진행하고, 여성 영화 보기 모임도 운영한다.

가능한 외피를 가볍게 하고, 할 수 있는 것만을 해 나가겠다는 방침. 단체를 만들어 지자체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사업을 할 경우 자칫 여성운동으로서의 야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김 소장은 “조직을 만들면 돈이 필요하고 필요한 돈을 조달하기 위해 운동의 목적을 잃게 되는 것을 보아 온 우리로서는 할 수 있는 만큼만 역량을 발휘하자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곳은 서울 ‘수유+너머’와 같은 공간을 지향한다. 넉넉히 만든 반찬, 텃밭에서 가꾼 야채를 갖고 이웃집 마실 가듯 놀러가 밥 먹고 산책 하고 수다 떨고 연구도 하는 공부방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여성주의 담론이 확산되고 여성들의 연대가 다져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이상적일 수 없을 터다. 물론 여성만을 위한 공간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성평등주의자라면 남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이다.

“좋은 사회는 누구도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는 사회입니다. 불평등한 사회는 불편한 사회입니다. 결국 모든 성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연구소 이음이 지역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