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수동 6통 2반 반장댁 대문 귀퉁이

거칠게 떨리던 손이 비뚤비뚤 지나갔을

서투른 글자가 내 눈알을 걸어놓는다

삭을세놈니다

 

낡고 헐은 바람벽에는 우울의 낙서투성이라서

몸 하나 거둘 곳 있을 리 만무한 집인데

삭아빠진 세를 놓는다는 건지

삭신이 쑤신 놈을 찾는다는 건지

삭은 몸뚱이를 보러 오라는 건지

도무지 깃들 수 없는 기우뚱한 담벼락에 기댄

나의 그림자를 떼어낼 수 없다

 

갑자기 꼭 너 같은 놈의 등짝을 보면

쩔쩔 끓는 방바닥으로 지져주고 싶다는

갈퀴 손 닮은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