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고서 수집가 강전섭씨

(동양일보 조아라 기자) 먼지가 뽀얗게 쌓인 헌책 더미를 뒤지는 것이 지상 최대의 행복이다. 책으로 사방을 둘러싼 헌책방의 풍경은 그 자체로 황홀하고 퀴퀴한 책 냄새마저 향기롭다. 25년을 책에만 미쳐 살았다는 고서수집가 강전섭(60·사진·청주 대성여상 교사)씨.

최근 그가 그동안 분신처럼 모아온 고서 중 일부를 ‘2015 동아시아 문화도시 문화주간 시민참여 프로젝트-청주시민 애장품 특별전’을 통해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지난 20일까지 옛 청주연초제조창 동부창고에서 개최된 이 행사에서 그는 딱지본 50여권 등 고서 130여권을 전시했다. 특히 윤동주의 첫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년)’, ‘소년’ 잡지 창간호(1908년),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년)’과 화려한 표지의 딱지본들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딱지본이란 1910년대 초반부터 구활자본으로 출간된 소설로 책의 표지가 아이들 딱지처럼 울긋불긋하게 인쇄된 이야기책을 말한다.

그의 고서 사랑은 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헌책방을 자주 다니던 그는 우연히 고서 수집가 박상희씨와 만나며 고서에 깊이 빠지게 됐다. 이후 고서가 있는 곳이라면 서울, 수원, 천안, 대구, 전주 등 전국 방방곡곡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원하는 책이 있는 곳이라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찾아가 손에 넣어야지만 직성이 풀렸다. 평일이면 퇴근하는 대로 청주 시내 헌책방과 골동품 가게를 돌아보는 것이 일과였다. 그렇게 책을 모으느라 대략 “아파트 한 채 값”을 들였다. 너무 많아 세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는 고서 수집을 하기 위한 조건으로 책에 대한 지식, 경제력, 인적 네트워크, 행운을 꼽았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적 네트워크. 강씨는 “고서방 주인들이 뜨내기에게는 절대 좋은 책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며 “원하는 고서를 양도받고자 엄동설한에 고서방 주인집 대문 앞에서 벌벌 떨며 기다리기도 했고, 헌책방 주인의 환심을 사고자 온종일 바둑을 두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한번은 교장으로 은퇴한 분 댁에 좋은 책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예천까지 간 적이 있었어요. 장사꾼에게도 팔지 않았다는 귀한 책들이 꽤 있었는데 저보고 필요한 것 있으면 그냥 가져가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었지요. 돈을 드렸더니 화를 내셔서 억지로 쥐어드리고 왔던 기억이 있어요.”

서가에 쌓아둔 책은 칼집에 꽂힌 칼과 같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꾸준히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1992년 충북 학생회관에서 개최한 ‘고본 교과서 전시회’를 시작으로 10회가 넘는 전시회를 가졌다. 특히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열린 ‘해방공간의 도서들(2005)’전은 전국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켜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강씨는 “고서는 나이 든 이들에게는 그리움을, 젊은이들에게는 시대상을 읽게 한다”며 “고서를 통해 당시의 정신적 사상, 문화, 철학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책의 질로 당시의 경제적 상황을 파악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영·정조시대와 조선 후기의 지질과 활자는 큰 차이가 난다”며 “교과서 종이질이 가장 좋지 않던 때는 1947년이었는데 광복 이후 2년 쯤 지나 일제 시대에 사용했던 종이가 떨어지며 마분지에 교과서를 찍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고서에 빠져 있느라 늘 뒤로 미뤄져야 했던 아내에게 미안함을 느낀다는 강씨. 주말이면 전국 각지의 헌책방을 다니느라 어릴 적 추억을 함께 만들지 못한 자식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리다.

강씨는 “고서 수집은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호사스러운 취미”라며 “앞으로 현직을 떠나면 그동안 모은 책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활용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젊은 시절을 모두 바쳐 어렵게 수집한 책들이 청주시민을 위해 옳게 사용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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