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메르스, 가뭄으로 잔뜩 주눅이 든 대한민국이 ‘배신정치’로 더 어수선하다. 배신하면 가롯 유다가 떠오른다. 예수님 12제자중 하나인 유다는 높은 지위에 있었음에도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겨 십자가에 못박히게 했다.

이성계는 고려왕조를 배심함으로써 왕권을 잡았고, 수양대군은 나이어린 조카 단종을 배신했다. 8·15후 최대의 반역은 김구 암살이다. 일제 침략자들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 백범 김구를 안두희와 그 비호세력이 죽였다. 4·19후엔 반란군을 제압해야 할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이 반란군 앞잡이가 돼 장면 총리를 배신했다. 박정희는 그런 배신자 장도영을 이용해 먹었다. 그후 장도영은 서울구치소에 들어가 그가 배신했던 제2공화국 각료들과 함께 수감됐다. 배신자가 배신당한 꼴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밝히며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작심한 박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구태 정치’ 발언 충격은 일파만파다. 마치 자신은 ‘무오류’이고 반대의견에 대해선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배신자’로 낙인찍었다. 그 대상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있자마자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비롯한 친박계 의원들은 일제히 ‘유승민 찍어내기’에 몰입했다. 원내대표 사퇴뿐 아니라 차제에 아예 정치생명줄까지 끊을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왜? 유승민의 ‘자기정치’에 밀려 비주류 신세 상황을 반전시키고 내년 4월 총선공천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친박계 의원들은 대통령 발언이후 있은 의총에서 유승민이 재신임받자 머쓱해졌다. 친박계는 의총소집을 다시 요구, ‘유승민 싹’을 자를 심산이었다. 하지만 비박계가 의총을 열어 결판을 내자고 반격해 오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아니 ‘의총 소집 촉구’에서 ‘의총 결사 반대’로 바뀌었다. 표 대결을 해 봤자 승산도 없고 그럴 경우 박 대통령과 친박은 벼랑끝 궁지에 몰릴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친박계의 의총 재소집 요구 자체가 코미디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박 대통령 발언과 관련한 의총은 이미 했는데 똑같은 것을 또 하게 되면 일사부재리원칙에 어긋난다‘며 초등학교 어린이회가 웃을 일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는 CBS 노컷뉴스 의뢰로 지난 27~28일 전국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8.5%가 친박계의 유 원내대표 사퇴주장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친박계 주장에 ’공감한다‘는 32.9%에 그쳤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왜 유 원내대표를 콕 찍어내려는 것일까. 한때 자신의 비서실장으로 최측근으로 불렸던 유승민은 지금은 ‘원박’도 ‘친박’ 아닌 ‘멀박’ ‘반박’으로 분류된다. 유 원내대표는 지난 2월 취임 일성으로 증세없는 복지론 수정을 요구하며 “당이 국정 중심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박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도 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도입 공론화를 주장하고, ‘청와대 얼라들’이라며 정부외교안보정책을 비판한 것도 눈엣가시였다. 개성이 강한 유 원내대표와 더 이상 국정을 함께 할 수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하지만 “당선된 후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 등 격한 표현을 동원해 가며 정치권을 비난한 박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박 대통령이 대선때 내걸었던 국정철학과 주요 공약들은 하나둘 없던 일이 됐다. 박 대통령의 제1구호이자 국정철학이라 할 ‘100% 국민대통합’은 공허한 말 그 자체다. 지난해 4월 어린 학생들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 초기 구조에 실패한 국가의 무능 여론 확산에 “세월호가 경제 다 죽인다” ‘세월호 유족들만 국민이냐“는 여론전으로 국민을 두동강 냈다. 국가정보원의 댓글 대선개입 사건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로 물타기 했다,

대표적 복지공약인 기초연금제는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 지급’에서 소득하위 70%에게 차등지급하는 것으로 축소됐다. 전시작전통제권전환 공약도 파기하고 2014년 완성을 약속했던 반값 등록금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2015년 이후로 미뤄졌다. 폐기된 공약들이 중도 내지는 진보적 의제에 가까워 대선때 지지층을 넓히기 위해 공약을 남발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심각한 것은 박 대통령의 지난 2년반 동안이 두 국민 정치, 분열 정치로 얼룩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바란다면, 앞으로 국민들이 박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비판에 ‘배신당한 것은 바로 나, 국민’이라는 비참한 생각 들지 않도록 해 달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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