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조아라 기자) 기러기 끼룩끼룩 하늘 쪼는 그 소리도/피맺힌 가슴속에 차곡차곡 담으면서/묵묵히 동트는 새벽 헤아리던 거목이여.//우리가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릴 때/그대는 아물잖는 상처를 두드리며/땡볕도 꺾을 수 없는 자존심을 내뿜었다. (시 ‘압각수’ 중에서)

윤상희(69) 시조시인이 등단 23년 만에 첫 시조집 ‘하늘 쪼는 소리’를 냈다.

‘남긴들 어디에 쓰랴/망설이고 망설이다(시 ’웃는다 웃어‘ 중)’ 장고 끝에 조심스레 내놓은 첫 시집. “그저 부끄럽기만 하다”는 이 책에는 85편의 시조가 담겼다.

윤 시인의 시조는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듣는 구수한 옛날이야기처럼 따스하면서도 정겹다. 위트가 가득해 쉽게 읽히면서도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1부 ‘하늘 끝에 올린 소망’에는 조국에 관한 시를, 2부 ‘아리아리 하얀 미소’에는 서민 생활을 묘사한 시를 실었다. 3부 ‘절뚝이는 나그네’는 소소한 개인사가, 4부 ‘초롱초롱 눈망울’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주들이, 5부 ‘못된 짓거리’에는 사회비판적 시각이 시로 묘사된다. 시조 ‘순이’, ‘소쩍새’, ‘징소리’, ‘고랑포 산노루’에 곡을 붙인 시노래 악보도 만나볼 수 있다.

제목 ‘하늘 쪼는 소리’는 23년 전 그를 시인의 길로 이끌었던 등단작 ‘압각수’ 중 한 구절을 따온 것. 윤 시인은 “시 한편을 따다 제목을 짓기 보다는 전편을 아우를 수 있는 제목을 달았다”고 설명했다.

제2의 고향인 청주와 이곳의 벗들에 대한 진한 애정은 시조 곳곳에 묻어난다. 압각수, 육거리시장 등 청주의 상징과 대표하는 공간들, 청주시 남문로에 있는 전통찻집 ‘삼화령’이 등장하기도 한다.

가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도 엿볼 수 있다. 딸을 출가시키는 아비는 ‘인생의 발걸음마다/풀꽃향기 일게 하소서(시 ’축원‘ 중에서)’ 기원하고, 손자손녀에 끔뻑하는 할아버지는 ‘둥개둥개 둥개둥/왜 이리도 예쁜겨’라며 그들의 이름을 넣어 시를 짓기도 한다.

출판기념회는 26일 오후 4시 충북예총회관 따비홀에서 열린다.

김선호 시조시인(충북도 문화예술과장)은 해설을 통해 “물결이 치는 대로 가다 보면 생각지 않은 진주를 만난다는 시인의 훈계는 설득력이 있다”며 “오랜 숙성 기간을 거쳐 상재한 이 책이 실리만을 좇는 물질만능주의에 급제동을 걸고 그 마찰음이 멀리까지 퍼져 나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윤 시인은 1947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1992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을 받으며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행우문학회장 등을 지냈으며, 2013년 충북시조시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한국시조시인협회·뒷목문학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도서출판 푸른나라. 148쪽. 1만2000원.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