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소설가 연작소설 '바닥쇠들 아라리' 발간

(동양일보 조아라 기자) 자식 9남매를 둔 양실영감의 선친인 구장은 말년에 자신의 퇴침서랍에 자물쇠를 장치했다. 그리고 이걸 자신이 이동할 때마다 정성스럽게 들고 다녔다. 출타할 때는 자신만 아는 곳에다 숨겨 놓았다. 아홉 자식들이 수상히 여겼다. … 청렴만을 고집해 빈한함을 면치 못하게 했던 부침에 대한 원망스러움으로 그간 멀리했던 발걸음을 가까이하기 시작했다. … 그런데 아버지 구장은 임종 때까지도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았다. 하여 아홉 자식들이 퇴침의 서랍을 개봉했다. 그러자 순간 자식들은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속이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퇴침대출’ 중에서)

 

격주마다 동양일보 ‘풍향계’ 코너를 통해 독자들을 만나오고 있는 박희팔(75·사진·충북소설가협회장) 소설가가 최근 연작소설 ‘바닥쇠들 아라리’를 선보였다.

콩트집(‘시간관계상 생략’), 엽편소설집(‘향촌삽화’), 단편소설집(‘바람타고 가는 노래’), 장편소설(‘동천이’) 등을 발간하며 다양한 소설 장르에 도전하고 있는 박 소설가가 처음으로 펴낸 연작소설집이다.

그는 “연작소설이란 단편소설 하나가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 아래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것”이라며 “한 지방에 살고 있는 99집의 이야기를 99편의 소설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바닥쇠들 아라리. 생경한 제목이 눈길을 끈다. 바닥쇠란 ‘벼슬이 없는 양반을 낮잡아 이르던 말’, 또는 ‘그 지방에 오래전부터 사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을 뜻한다. 저자는 여기에 민요의 후렴구에 등장하는 ‘아라리’를 더해 ‘벼슬이 없는 양반이나 그 지방에 오래 전부터 사는 사람들의 그윽한 사연’이라 풀이한다.

여기서 ‘그 지방’이란 충청도의 어느 시골. 구체적으로는 박 소설가가 거주하는 음성군 맹동면으로 추측된다. 등장인물들은 시골에 실제로 존재할 법한 친숙한 인물들이다. 이들을 통해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특유의 위트로 상황을 조화롭게 이끌어가는 충청도 사람들의 기질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가상의 인물들을 통해 ‘본 바닥에서 오랫동안 사는 서민’들의 애환 어린 사연을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동네 사람들에게 직접 듣거나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그가 직접 보고 겪은 다양한 이야기들도 각색해 소설 속에 녹여낸다. ‘양거지’ 등 지금은 사라지고 잊힌 풍습들이 실려 중장년 세대에게 향수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 삶에는 때로 서글픔이 서려 있기도 하지만 그 끝은 결코 슬프지만은 않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성품의 작가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맺음으로서 독자들에게 호쾌한 감동을 안긴다. 느릿느릿하고 소박하며 여유로운 일상 속에 순박한 이웃들이 끌어가는 이야기가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을 강하게 매료시킨다.

박 소설가는 “내년에는 중편소설집을, 내후년에는 여러 소재의 짤막한 소설들을 모아 스마트소설집으로 낼 예정”이라며 “소설의 전 장르를 망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뒷목문화사. 321쪽.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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