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

지방에는

지방의 라디오가 있어서

음색 짙고 다정한 디제이는

오래된 유행가를 연달아 내보내고

여인은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길가에서

풀잎을 어루만지며 걷는다

 

꽃비처럼 내리는 전파가 머리 위에 쌓이면

지방의 여인은 노래가 된다

꽃잎은 분홍이고 사랑은 멀어서

뒤뚱뒤뚱 걸어가는 그녀는

때때로 눈물도 웃으면서 흘린다

 

산기슭 따라 구불거리는 길에는

숨겨진 그늘이 있어

잔가지가 많은 초목은 풀내음이 짙다

 

여인이 걸어가는 그곳은

크지 않아도 시내라 부르고

많지 않은 사람 중에도 모르는 사람이 있으며

낮은 지붕의 집에는 방마다 불빛이 노랗다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함부로 세워진 차량과

텅 빈 상가들을 무심코 지나가는

저 여인이

열고 들어갈 고요한 방 문 안에서

잘 익은 무화과 냄새가 날 것 같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