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철호 동양일보 회장, 시집 '유목민의 아침' 발간

 

그러나 어쩌랴
살아 있는 한 떠나야하는 이 질긴 순명의 길을
차마 거역할 수 없어 다시 말 등에 오르면
오 천지간 나를 반기는 이 기운
가다 육신의 힘 다하여 스러진다 해도
몸은 풀뿌리로 살아나 대지를 덮고
영혼은 눈 밝은 한 마리 수리로 되살아 이 광야 지키고 있으리
아직 나타나지 않는 노마도 기다려야하느니

*노마 : 걸음이 느린 말. 재능이 둔해 남에게 빠지는 사람의 비유

(시 ‘유목민의 아침’ 중에서)

새 아침. 유목민은 다시 길 위에 선다. 그동안 살아온 날만큼이나 거칠고 험난했던 길들을 얼마나 많이 지나왔던가. 돌아보니 아득하다. 안락하고 편안하지만 단조로운 삶 보다는, 핍박받을지언정 시도하는 굴곡진 삶을 택했던. 그에게 인생은 늘 도전이었고 새로운 시작이었다. 고달팠지만 함께 걷는 이들이 있었으므로 외롭지는 않았다. 처음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는 같은 여정을 하리라 다짐한다. 가슴을 두근대게 하는 새 길 앞에 서서, 오늘도 바람 따라 유랑한다.
조철호(71·동양일보 회장·청주시 청원구 충청대로 103·☏043-218-5225)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유목민의 아침’을 발간했다. 2년 전 펴낸 ‘다시 바람의 집’에서의 감성은 이번 시집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그저 스치는 사물들로 그 형태를 미루어 짐작케 하는 바람. 그 정처 없는 자유로움은 그를 강하게 유혹하는 이미지다. 그는 ‘가을엔/아내에게 미안하다/아무리 참아도/온 몸에 바람 드는 걸 어쩌지 못(시 ‘가을 낙서’)’한다 토로하고, ‘젊은 날/길의 유혹 떨칠 수 없음에/차라리 바람의 깃을 잡아/색동옷 입히다 주름 깊어졌나이다(시 ‘노정’)’ 회상하기도 한다.
오탁번 시인(고려대 명예교수)은 “그의 시에는 유독 바람의 시적 상상력이 자주 돋을새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며 “그가 타고난 바람에의 지향성은 한낱 방랑벽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본연적인 욕망에서 비롯되는 이타적인 희생과 통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농경의 안정된 삶을 이어가면서도 유목의 무한 변화와 모험을 외면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원형적 집단무의식과도 맞물린다”고 밝혔다.
“어린 시절엔 높은 사람이 귀한 사람인줄 알았고 젊은 시절엔 멀리 있는 것이 그리운 것인 줄 알았었다”던 조 시인. 지난해 칠순을 치른 그는 이제 “눈 머물거나 손 닿는 모든 것이 소중하다”고 고백한다. 젊음을 떠나보낸 대신 사물에 대한 온화한 시선을 얻은 그의 시는 한결 다사롭고 포근해졌다.
김주희 문학평론가(침례신학대 교수)는 작품 해설을 통해 “주체는 기준을 내부에 둠으로써 더 나은 존재가 되려는 의도를 행위의 목표이자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 주체 정체성은 시집 전체를 포괄하는 유목민 목자와 같은 범주에 있다”며 “풀뿌리로 대지를 덮고 한 마리 수리로 광야를 눈 밝게 지키려는 목자처럼 잔치를 열어두고 만나기를 청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랑이 젊어지는 이치(시 ‘송년엽서’)’를 담은 초대장은 황홀하다”고 밝혔다.
조 시인은 1945년 청주에서 출생, 청주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연합통신 기자와 취재반장·충북지국장을 거쳐 1991년 동양일보를 창간했다. 1978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으며, 저서로 시집 ‘살아 있음만으로’, ‘다시 바람의 집’, 장편 여행에세이집 ‘중국대륙 동서횡단 2만5000리’, 중국어판 ‘들끓는 중국’ 등이 있다. 충북도문화상, 중국 장백산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사)한국시낭송전문가협회 회장, 충북예총 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도서출판 푸른나라. 167쪽. 1만2000원.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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