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논설위원 / 시인)

▲ 나기황(논설위원 / 시인)

 7월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염소 뿔도 녹는다.’는 중복더위를 지나 어느 새 말복(末伏)을 남겨놓고 있다. 시간은 늘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우리 곁을 스쳐간다.
시간의 의미가 가장 극적으로 표현되는 분야가 스포츠가 아닌가 싶다. 초(秒)마저도 쪼개어 승부를 가리는 게 기록경기의 매력이고 숙명이다.
지난 26일, ‘한국현대바둑 70주년 기념’ 특별이벤트로 열린 ‘조훈현-조치훈 특별대국‘이 있었다. ’전설의 귀환‘. 대형걸개그림에 적혀있는 문구다. 바둑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조조(曺,趙)대결‘은 승패를 떠나 두 ’전설‘을 한자리서 볼 수 있는 가슴 설레는 축제다. 
‘명인(名人)’이니, ‘국수(國手)’니 황제니 하는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어색치 않을 두 사람이다. 두 사람에게 오르지 못했던 정상은 없었다. 밟아보지 않은 미답(未踏)의 타이틀도 없었다. 그들에겐 아직 깨지지 않은 기록만 있을 뿐이다.
조치훈 9단은 6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바둑을 평정한 천재기사다. 90년대 후반 일본에서 최고 권위를 가진 기전(棋戰)인 기성(棋聖), 명인(名人), 본인방(本因坊)을 네 차례나 동시 석권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조훈현은 또 어떤가. 세계 최연소 입단(9세)기록에 프로통산 160회 우승, 80년대 초중반에 국내기전 전관왕(80년 9관왕, 82년 10관왕, 86년 11관왕)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3차례 나 기록했다. 지금도 40-50년 터울의 후배들과 쟁기(爭棋)를 하고 승부세계를 호흡하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두 거장의 만남은 전 세게 바둑팬 들에게 그 자체로 이슈고 이벤트다.
세기의 대국은 어이없게도 154수에서 승부가 났다. 조치훈의 ‘시간 패’라는 예상치 못했던 결과가 발생했다. 두 기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시간 1시간, 각각 40초 초읽기 3회씩이 주어졌다.
얽히고설킨 381로(路) 반상(盤床)에서 최상의 수를 찾아내야하는 승부사들에게 ‘초읽기’는 생사를 가르는 덫이요, 극복해야할 장벽이다. 하나, 둘, 셋.......열까지 세는 마지막 10초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을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목숨을 걸고 둔다.”는 조치훈 9단이 “열!”을 헤아리는 계시원의 동시착점(同時着點)시간의 덫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조훈현의 이의제기와 입회인의 판정결과 통보와 조치훈의 승복이라는 과정을 거쳐 세기의 대국, ‘전설의 귀환’은 ‘시간패’라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끝이 났다.
대국이 끝난 후 인터뷰에서 조훈현은 “내용은 지고, 승패는 이겼다.”고 실토했다. “세니까 이긴 것”이라고 조치훈은 화답했다. 그렇다. 그들에게 승패는 이제 영광도 상처도 아니다. 전설이 가는 길에 ‘시간승’과 ‘시간패’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이력을 남겼을 뿐이다.

바둑을 잡기(雜技)로 보는 사람은 이제 없다.
국내외 스포츠의 한 종목으로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바둑 인구도 중국에 이어 세계2위,
9백만이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한국바둑은 중국의 만리장성을 허물고 남.녀 단체전, 혼성페어바둑 전 종목에서 금메달을 싹쓸이 하는 쾌거를 이뤘다. 올해 소년체전에서는 바둑경기가 정식종목으로 치러졌고, 내년 97회 전국체전에서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13년 만에 ‘전시종목’의 껍질을 벗게 됐다.
북송(北宋)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는 “인간사 한편의 바둑(世事棋一局)”이라고 갈파했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신선놀음에서 ‘초읽기’의 극한까지 달려온 인류의 역사도 따지고 보면 한편의 바둑에 다름 아니다. ‘초읽기’와 같은 치열한 삶의 기록이 인생이라면 인생에 있어서 ‘시간패(敗)’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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