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연 기(한국교통대 교수)

▲ 홍 연 기(한국교통대 교수)

올해는 광복 70주년이다. 정부를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 이념과 지역 그리고 세대 간 갈등을 넘어서 대한민국이 하나 되는 계기를 만들고자 다양한 행사들이 기획되고 있다. 매년 맞는 광복절이지만 70주년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의미와 지금의 사회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올해 광복절은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오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겠다고 하니 직장인들의 입장에서는 연휴를 얻었다는 기쁨도 있을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14일이 공휴일로 지정되면 연속으로 휴가를 갈 수 있어 메르스 사태와 가뭄으로 침체된 내수경기 진작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세우기도 한다. 하긴 워낙 어려운 경제상황이라 그러한 의견도 나름 타당하다고는 생각하나 과연 광복절에 내수 진작이 더해지는 것이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들의 무게감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 않나 싶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절찬리에 상영 중인 영화 ‘암살’은 광복절 연휴에 자칫 잊기 쉬운 우리 순국선열들의 헌신과 희생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조국이 사라진 1933년의 암울한 시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계획한 암살 작전으로 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속사포, 폭탄 전문가 황덕삼과 임정의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 그 계획의 주인공이다.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한 일련의 영화나 드라마들이 조국독립이라는 엄숙한 명제에만 몰두했다면 이번 ‘암살’이란 영화는 우리의 독립운동이 블록버스터의 소재로서도 손색없는 재미를 주고 있다. 혹자는 영화 ‘암살’에 대해 ‘역사의 오락화’라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극중의 안옥윤(전지현 분)처럼 아름답고 속사포(조진웅 분)와 같이 생계형 독립운동이라 할지라도 나중에는 조국을 위해 뜨겁게 산화하며, 황덕삼(최덕문 분)처럼 우직하게 작전만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들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그 어떤 주인공보다도 멋있고 자랑스러웠다. 심지어 단돈 300불이면 누구도 살해할 수 있다는 살인청부업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 역시 결국은 조국의 피스톨이 되었다는 점도 감동이었다.

분명 이 영화는 가상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영화의 배경이나 모티브가 된 일련의 사건들은 영화 ‘암살’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극중에도 등장하는 김원봉의 의열단과 김구의 한인 애국단, 안옥윤이 소속된 지청천 부대와 안옥윤의 어머니가 살해당한 간도참변, 속사포의 출신인 신흥무관학교가 우당 이시영 선생 등이 세운 무장독립투사들의 산실이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여배우의 화려함으로 인해 사실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싶은 극중 안옥윤은 사이토 조선총독을 암살하려했던 여성 의열단원 남자현 선생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해방 후 극중 염석진이 친일 혐의로 서게 된 재판소가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였다는 것도 그리고 염석진에 대한 처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반드시 되짚어봐야만 하는 우리의 역사이다.

영화에서 조국을 위해 헌신한 이들 모두가 처음부터 투철한 조국관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었다. 배가 불러야 독립운동이 되지 않겠냐는 나름 엘리트인 속사포, 함량 미달의 폭약을 제조해왔던 황덕삼, 살인청부업을 하던 하와이 피스톨 등이었지만 결국 조국 앞에서 그들 모두는 애국자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듯 역사는 걸출한 몇몇 사람들에 의해 바뀌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먹고살기에 바빠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을 지배하는 상황들을 피부로 느끼고 자각하고 그런 의식들을 행동으로 실천하면서 서서히 바뀌게 되는 것이다. 도리어 나중에 변절한 염석진은 우리에게 또 다른 역설적인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지금의 우리나라는 이렇듯 수많은 우리 선조들이 희생을 치른 결과물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의 조상들이 바로 저 영화에 나오는 멋있는 분들임을 말해줘야 한다. 실제로 영화에 나오는 분들 만큼의 미남·미녀는 아닐지라도 그분들의 기개와 정신은 다른 나라의 그 어떤 누구보다도 훌륭하다고 말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말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광복 70주년을 맞아 이념과 지역 그리고 세대 간 갈등을 넘어서 하나 되는 대한민국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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