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수필가)

▲ 박영자(수필가)

 노인인구가 2014년 기준 628만 명으로 곧 전체인구의 14%에 해당되는 700만의 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될 것이란다. 도시보다는 농촌에 노인들이 많이 산다. 한 나라나 지역에 노인이 많으면 고령화가 사회 문제로 대두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60세가 되면 노인으로 여겨왔으나,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요즈음은 노인의 나이를 65~70세 정도로 상향조정 해야 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생각보다 간단치 않아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노인(老人)은 고령자, 늙은이, 시니어, 실버, 어르신 등 불리는 이름도 많다. 노인만을 위한 경로당, 노인정, 노인대학, 노인복지회관 실버타운 노인요양원등 시설도 많이 늘어났으며 앞으로 더 늘려야만 될 추세이다. 
  장수를 축복으로 여겨 잔치까지 벌이는 우리 풍습이었다. 61세가 되는 생일을 환갑(還甲), 그 이듬해 생일은 진갑(進甲)이라고 하며 축하해 왔다. 일흔 살은 칠순(七旬) 또는 고희(古稀), 여든 살은 팔순(八旬), 아흔 살은 구순(九旬) 아흔아홉 살은 백수(白壽)라고 하여 자식들이 축하연을 열어주기도 하는데 요즈음은 오래 사는 것이 결코 축하받을 일만도 아니지 싶다.
  의도 하지 않았지만 나도 어느새 노인의 대열에 서 있고,  많은 노인들 속에서 젊은 세대들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눈치를 보아야 하는 처지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노인을 피해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젊은 사람들이 자기는 안 늙을 줄 안다면 착각이다.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인간에게 주어진 길이니 말이다.
  복지회관에 가면 나를 보고 ‘어르신’이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여 ‘나보고 하는 소린가?’ 하며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처음으로 ‘할머니’ 소리를 들을 때의 생소하고 조금은 섭섭하던 그 때처럼 말이다.
   그러나 ‘어르신’이라는 말의 어원을 알고 보면 그럴 일이 아니다. ‘어른’ 은 ‘얼’이란 말에서 비롯되었다. 얼은 정신, 넋, 혼을 뜻한다. 나이만 먹었다고 다 어른이 아니다. 나이 많은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이 어른이다. 어르신은 어른 보다 더 한층 높여 부르는 경칭(敬稱)이다. 어르신은 지혜로워서 존경과 흠모를 받는 사람을 말한다. 어른과 어르신은 육체적인 나이가 아니라, 정신적인 수준과 교양이나 양심의 나이를 기준으로 한다.
  과연 내가 어르신이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요즈음 세상에는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어른의 권위가 바로서지 못하니 젊은이들의 잘못을 보고도 타이르거나 혼을 낼 어른이 없단다. 섣불리 타이르다가는 오히려 망신을 자초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서글픈 일이다. 잘 못 된 일을 책임 질 어른도 없다는 것이다.
  괴테는 ‘노인의 삶은 상실의 삶’ 이라는 말을 남겼다. 사람은 늙어가면서 건강을 잃고 일을 놓게 되며, 친구를 잃게 되고, 돈을 잃고 꿈도 잃게 된다. 하지만 늙었다고 미리 포기하지 말고 건강, 일, 돈, 친구는 꼭 챙기고 희망과 꿈을 잃지 않도록 끝까지 노력하지 않으면 홀로설 수 없게 될 것이다.
  노인은 무기력한 존재이기만 할까. 하이든의 천지창조는 66세에 작곡됐고, 소포클래스는 75세에 오이디푸스왕을 썼고 괴테는 81세에 파우스트를 탈고했다. 노인은 무능하고 외롭고 불행하다는 시각은 옳지 않다. 노인이 젊은이 못지않게 행복할 수도 있다. 가장 행복한 나이는 60세부터 75세사이라는 김형석 교수의 말은 공감이 간다.
  요즘 젊은 세대는 연애도 결혼도 아이도 포기한다는 3포 세대를 넘어 5포 세대라는 말이 생겨나더니 이제 7포 세대까지 등장하였다. 그만치 삶이 각박한 것이다. 그들에게 노인들이 짐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염치없는 일인가. 젊은 세대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자립적인 사고와 노력으로 노인보다 어르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노인네 무릎 세우듯 한다.’는 말이 있듯이 내 생각만이 옳다는 고집은 버려야 한다.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노인일 수밖에 없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려하고 소통하려 한다면 어르신일 것이다. 스스로 절제 할 줄 알고, 아는 것도 모르는 체 겸손하고 여유가 있다면 어르신인 것이다.
  나이 들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있다. 공짜를 바라지 말고 베풀며 살 수만 있다면 행복한 삶이다. 그래야 친구도 이웃도 잃지 않을 것이다. 어르신 되기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노인으로 살지 말고 어르신으로 살기위해 애써 볼 일이다.
  젊은이들의 시각도 바꾸어야 한다.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 한 사람이 죽는 것은 도서관 1개가 불에 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듯이 세상을 먼저 살아 본 노인에게는 지혜가 있다.

머리카락에
은발 늘어 가니
은의 무게만큼

고개를 숙이리

허영자 시인의 시가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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