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집념의 승리였다. 감동의 역전 드라마였다. 결코 포기하지 않은 근성으로 쓴 골프 역사였다.

박인비. 세계 여자 골프 사상 7번째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은 숱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것이어서 더욱 값지다.

TV 중계를 본 국민들은 박인비의 침착함과 대담함, 냉정함에 놀랐다. 선두 고진영에게 3타 차로 뒤진 채 공동 5위로 마지막 라운드에 나선 박인비가 우승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국제대회 첫 출전이었지만 3라운드 내내 선두를 고수해 온 고진영이 안정된 플레이를 해 왔기 때문에 박인비가 3타 차를 뛰어 넘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사실 욕심이었다. 그런데 그는 해냈다.

박인비는 마지막 홀에서 우승을 확정지으면서 비로소 웃었다. 4라운드 내내 그의 얼굴에선 웃음을 볼 수 없었다. 역전의 기반이 된 14번 홀(파5)에서 7m 이글퍼트를 성공시켰을 때도 그는 웃지 않았다. 얼굴엔 결기가 가득했다. 그만큼 이번 대회를 임하는 비장한 각오가 묻어났다.

박인비는 “골프도, 인생도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우승소감을 말했다.

박인비의 이번 우승은 단순한 우승이 아니다. 현재 국위를 선양하는 선수들이 세리(박세리) 키즈라면 앞으로는 ‘인비 키즈’를 기대해야 겠다. 박인비의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보고 제2의 박인비를 꿈꾸는 어린선수들이 이 무더위에도 열심히 운동하고 있을테니까.

하지만 정작 골프왕국 대한민국에선 골프가 무엇인가. 한국의 낭자들이 연신 우승낭보를 전해 주며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데 ‘죄악시’ 하고 있지 않은가.

박인비의 우승으로 우리나라 여자골프선수들은 올들어 열린 20개 대회 가운데 12승을 기록했다. 종전에는 2006년과 2009년 11승이 최다였다. 박인비가 우승한 리코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는 고진영이 2위, 유소연과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가 공동 3위에 올라 1, 2, 3위를 휩쓸며 세계 골프팬들을 경악케 했다.

대회마다 한국선수들이 휩쓸자 LPGA가 생동감이 떨어져 재미가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심지어 세계대회인지 국내대회인지 헷갈리고, 대회스폰서가 잘 붙지는 않을까 걱정 아닌 걱정도 한다. 일각에선 LPGA의 흥행을 위해 한국선수들이 좀 살살 쳐야 되지 않겠느냐는 우스갯 소리도 할 정도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골프가 찬밥신세다. 골프 치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게 문제다. 주말에 골프 한번 치려면 25만~30만원은 족히 든다. 그린피 21만~23만원에 캐디피 3만원(12만원 4등분), 그늘집 간식비, 운동후 식사비용 등이 그렇다. 많은 국민들로부터 사치 스포츠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이유다.

그린피가 비싼 것은 세금 때문이다. 아마도 운동하면서 세금내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을 것이다. 골퍼는 무조건 개별소비세 2만 5000원(대중골프장 제외·체육진흥기금 포함) 정도를 내야한다. 골프장 측에는 종합부동세, 재산세, 취득세 등이 타 업종에 비해 높게 부과된다. 골프장에 부과되는 이같은 세금은 결국 그린피에 포함돼 골퍼 몫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골프는 아무나 하는 운동이 될 수 없고, 툭하면 공직자 골프금지령이 내려지고, 골프접대 받았다고 처벌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엔 현재 골프장 545개, 골프인구는 270만명에 달해 대중스포츠화 되고 있다. 지난해 연 매출은 3조 3900억원, 용품·의류 등 연관산업을 포함하면 20조 안팎의 전·후방 경제효과를 가져다 준다고 한다.

그러나 경기악화로 골퍼들의 발길이 뜸해지자 많은 골프장이 경영난에 봉착했다. 도내 31개 골프장 중 7곳에서 110억 6500만원을 체납중인 게 골프장의 현주소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 초 국무위원들과 가진 티타임 자리에서 골프활성화를 주문했다. 이는 곧 골프장 세금 감면으로 받아 들여져 왠 뜬금없는 골프얘기냐, 서민증세·부자감세라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골프연관산업의 육성으로 침체된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대명제 앞에서 골프활성화에 거는 기대가 더 컸다.

그러기를 6개월. 골프활성화 방안이 나왔다는 얘기는 없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주문했는데도 아직까지 후속조치가 없다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벌써 레임덕이 온 것도 아닐텐 데 말이다. 박인비가 쓴 골프 역사를 계기로 정부는 골프를 진정한 대중스포츠로 만들어야 한다. 그 방법은 단 하나, 지금의 그린피를 절반정도로 낮추도록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골프를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도 바로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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