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 장손녀

▲ 광복 70주년에 만난 윤주경 첫 여성독립기념관장

(천안=동양일보 최재기 기자) “후손들에게 나라 잃은 설움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삶을 불사른 독립투사들과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에서 당당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 세대들의 피와 땀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윤주경(56·사진) 독립기념관 관장은 광복 70주년 을사늑약 110주년을 맞아 9일 선조들의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열어주는 것이 우리세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윤 관장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독립기념관장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1932년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현 루쉰 공원) 의거를 결행한 매헌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이기도 하다. 매헌 윤봉길 월진회 이사와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도 맡고 있다.
윤 관장은 할머니에게서 직접 들은 할아버지 윤 의사의 인간적인 면모를 들려 줬다.
“할아버지가 평소엔 할머니와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수줍음이 많았답니다. 그렇지만 아내와 어린 자식들에 대한 사랑만큼은 남달랐다고 합니다.”
윤 관장은 할아버지의 의거 결행으로 남은 가족들이 힘든 삶을 살아야만 했던 가족사도 조심스럽게 꺼냈다. “할아버지를 늘 그리워하신 할머니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셨고, 아버지는 일본인 담임선생이 ‘윤봉길은 조선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고, 이 학생은 그의 아들’이라고 말해 친구들에게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시는 등 힘든 학교생활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윤 관장은 어린 시절 ‘윤봉길 의사의 손녀’로 살기보다는 ‘자연인 윤주경’으로 살고 싶었다.
윤 관장은 그 이유에 대해 “독립운동가 집안이라는 자부심은 컸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모범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돌아보니 그런 부담이 제게는 아름다운 구속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잘못을 저지르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마다 저를 멈추게 하는 힘이 됐고, 오늘의 나를 만들었으니까”라고 웃는다.
그는 독립기념관 이사를 거쳐 2014년 9월 제10대 독립기념관장에 취임했다.
윤 관장은 광복 70주년과 을사늑약 110주년을 맞아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고 대한민국의 새 역사를 열어 나가기 위해 다양한 기념사업과 독립운동 선양사업을 펼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사업은 독립운동인명사전 편찬사업이다. 기념관이 1996년 펴낸 ‘한국독립운동사사전 -총론편’ 2권과 2004년 발간한 운동·단체편(5권)을 잇는 민족적 대사업이다. 독립운동인명사전 편찬은 광복 70년을 맞는 올해 시작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2019년 간행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윤 관장은 독립운동인명사전 편찬이 독립 운동가들의 역사적 자취를 복원하고 독립운동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명사전은 30권 분량에 1만 6000여명의 독립 운동가가 수록되고, 이들의 성장과 활동 내용, 사상과 의미 등이 상세하게 서술된다.
윤 관장이 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사업은 기념관 산하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일이다. 갈수록 주도면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역사왜곡을 저지하고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다.
윤 관장은 “광복 70주년이 위축된 독립기념관의 위상을 다시 세우고, 일본의 잘못된 역사의식을 바로 잡는 계기가 돼야 한다. 아울러 올해가 통일을 여는 원년의 해가 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그러기 위해서는 70주년 광복절행사가 정부주관으로 독립기념관에서 개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관장은 당초의 건립 목표대로 천안의 독립기념관이 아닌 대한민국의 독립기념관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역사의 한 현장이 되길 희망하고 있다. 윤 관장은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국제사회가 ‘자유와 평화’라는 한국독립운동의 정신을 온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삼아 반침략 평화주의를 지향하도록 하는 것이 독립기념관이 앞으로 추구해야 할 새로운 가치”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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