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 전시 연출’…“일제 잔재 청산 의미 부여”

▲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 구덩이 안에 잘려진 조선총독부 첨탑이 박혀 있다. 공원은 올려다 봐야했던 첨탑을 땅 아래 낮게 전시하거나 홀대하는 방식으로 조성돼 일제 식민지 시기의 극복과 청산을 강조하고 있다. <천안 최재기>

-광복 50주년 맞아 1995년 8월 15일 철거돼
-첨탑 등 해체 부재 일부 독립기념관으로 옮겨

 

(천안=동양일보 최재기 기자) #장면1. 광복 50주년이던 1995년 8월 15일. 이날 오전 9시 20분 조선총독부 건물의 첨탑 해체가 시작됐다. 서울 광화문 앞에 모인 5만여 시민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TV 중계방송 시청률은 28.5%로 역대 광복절 경축식 중 가장 높았다.

#장면2. 천안 독립기념관 산책로 한쪽에는 조선총독부 부재 전시공원이 조성돼 있다. 각종 건물 잔해들로 이뤄진 이 공원 한쪽에서 관람객들은 어디선가 본 듯한 전시물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철거된 조선총독부 건물 첨탑이다.

 

올해는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일제강점기 국난 극복사와 각지에서 펼쳐진 독립운동의 역사를 되새기는 다양한 행사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일제 식민주의와 상징으로 20년 전 철거된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독립기념관(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삼방로)에 전시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독립기념관은 애국선열의 자주독립 의지를 고취하는 유적인 동시에 가족 여행객들에게는 안락한 휴식처로 각광받고 있다. 이곳에는 애국정신을 배우는 다양한 전시물과 더불어 신록이 우거진 곳에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숲길 코스도 갖춰졌다.

거룩한 공간이라는 엄숙함을 잠시 걷어내면 독립기념관은 일상 속으로 익숙하게 파고든다. 아이들과 함께 방문할 수 있고, 숲이 어우러져 호젓한 나들이 장소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일상 속에서 대중과 자주 만나는 것은 독립기념관의 설립 취지와도 맞닿는다.

주말이면 겨레의 탑과 연중 태극기 815기가 게양되는 태극기한마당에서 태극기를 배경삼아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 전시관 뒤편 선현들의 시가 새겨진 잔디밭에서 담소를 나누는 가족들의 풍경을 볼 수 있다. 독립기념관을 일상으로 받아들인 이런 모습은 의외로 묘한 감동을 준다.

‘역사알기’를 구현한 7개 전시관은 일제의 침략상을 고발하고 각지에서 펼쳐진 독립운동 등을 시기별로 전시한다.

백련못을 기점으로 시작되는 단풍나무 숲길은 여름에도 시원한 산책공간이다. 숲길 초입에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부재로 조성한 전시공원이 있다.

조선총독부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10년간의 공사 끝에 1926년 완공한 건물이다. 일(日)자 모양으로 대(大)자 형상인 북한산, 본(本)자 형태의 옛 서울시청사와 함께 일제의 식민정책을 상징하는 건물이었다. 해방 이후 제헌국회가 열리고 건국이 선포된 곳, 6.25전쟁 당시 서울 수복의 태극기가 올라간 곳으로 국민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6.25전쟁 때 대파됐다가 다시 복구된 뒤 1982년 중앙청이라는 이름으로 정부 청사로 쓰이다가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6년 8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개조해 사용했다.

이후 광복 50주년이던 1995년 8월 15일 철거됐다. 당시 언론들은 ‘70년 동안 서울 한복판을 억누르던 식민정책의 상징물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고 보도했다.

당시 해체된 부재 가운데 30% 정도는 공사자재로 재활용됐고 나머지는 김포매립지에 버려졌다. 건물 첨탑 등 건물 일부만 그해 11월말께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졌다.

전시공원에는 4290㎡(1300평)의 야외공원에 첨탑과 정초석, 난간석조물 등 17종이 전시돼 있다. 첨탑 아래 부분은 5m가량 매장돼 있고 나머지 전시물들도 흩어져 전시돼 있다.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일단 고개를 갸웃거린다.

전시물 일부는 땅에 처박혀 있고 다른 전시물들은 여기저기 초라하게 방치돼 있어서 전시공간이라고 말하기에는 엉성하다 못해 어설픈 느낌마저 든다. 해가 짧은 겨울철이면 전시물이 석양에 가려 을씨년스런 풍경까지 연출한다.

이 모든 것이 “연출”이라는 게 독립기념관 측의 설명이다. 독립기념관 관계자는 “전시공간을 서쪽에 위치시켜 석양(지는 해)을 상징하고 홀대하는 방식으로 전시 연출해 ‘일제 잔재의 청산과 극복’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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