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시인)

▲ 나기황(시인)

“더워도 너무 덥다.” “지난 밤 한 숨도 못 잤다.” 만나는 사람마다 더운 날씨가 인사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덥다. 수은주가 섭씨38도를 오르내리고 잠 못 드는 열대야가 여러 날 이어졌다. 그래도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말복을 지나면서 공기가 달라졌다.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處暑)도 열흘 안쪽이다. 한결 여유가 생겼다.

날이 지나도 수그러들지 않는 후텁지근한 뉴스도 있다. ‘롯데가(家)’의 전쟁 얘기다.
분쟁의 규모나 파장으로 봐서는 재계가 들썩일 만한 태풍 급인데 내용은 잔잔한 집안싸움이다. 롯데그룹 신동주, 신동빈 형제간의 볼썽사나운 경영권다툼이 부자간 싸움으로 번졌을 뿐이다. 90대 노인네를 앞세워 ‘치매다, 아니다. 귀 쌈을 맞았다. 무릎만 꿇었다. 용서를 못한다. 법대로 하자.’ 등등 갈수록 ‘막장’과 ‘패륜’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품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다큐를 연출하고 있다.
주연은 신동주, 신동빈 두 형제지만 94세의 신격호 총괄회장이 주연급 조연으로 단연 돋보인다. 결말은 아직 모르지만 만일 신격호 총괄회장의 의도대로 된다면 맥아더 장군의 명언을 고쳐 써야 할 것이다. “노장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다만, 지시할 뿐이다.”
시청률만 가지고 드라마의 작품성을 논하기는 어렵다. 관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국내 재계서열 5위 그룹을 일궈낸 신격호 창업주의 연기는 실망스럽다. 어눌한 목소리와 떨리는 손끝은 세월 탓으로 돌리더라도 어떻게든 영향력을 행사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보는 이를 참담케 한다. 창업주로서 가질 수 있는 롯데에 대한 과도한 애정표현이라고 한 수 접어줘도 돌아가는 모양새가 노욕(老慾)이요, 집착으로 밖에는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재벌기업의 후계구도가 정해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왕자의 난’이나 ‘형제의 난’은 언제부턴가 통과의례가 됐다.
현대가 그랬고 삼성이 그랬다. 숱하게 봐온 사실이지만 볼 때마다 허탈하고 울화가 치미는 일이다. 온갖 혜택과 ‘갑질’의 대명사가 된 재벌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가뜩이나 곱지 않은데 꼴사나운 집안싸움까지 봐줘야 한다면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재벌기업이 내분으로 휘청거리면 그룹의 이미지는 물론 국가의 이미지마저 실추시킬 우려가 있다. 대기업이 국가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고 한 국가의 경쟁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코카콜라가 미국의 상징적인 기업이 됐듯이 “우리는 한국기업입니다.”하고 석고대죄를 하지 않아도 국민이 자랑스러워하는 기업이 돼야한다. 말해 무엇 하랴.
‘신 경영’을 내세우며 그룹 쇄신을 추진하던 삼성도 이건희 총회장이 쓰러지자 한때 구심력을 잃고 갈팡질팡했다. 삼성이라는 거대 글로벌기업조차 창업주의 의중을 살펴야 하는 지배구조와 기업풍토라면 문제라는 것이다.
창업주가 표방하는 올바른 경영이념을 본받아 계승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투명하고 적법한절차를 거쳐 경영능력을 갖춘 자가 그룹을 맡는다면 자식이 됐든, 형제가 됐든 누가 뭐라 할까. 그러나 이번 사태로 불거진 롯데계열사의 지배구조를 보면 미로처럼 복잡한 ‘깜깜이’ 구조라서 진단도 어렵고 수술도 어려운 형국이다.
투자회사인 L사의 주소를 따라가 보면 신격호 총괄회장의 저택이 나온다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롯데’라는 사명(社名)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따올 만큼 ‘롯데’가 국민(고객)으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했던 창업정신을 돌아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껌이라면 역시 롯데 껌!’을 외치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신동빈 회장의 대국민 사과가 일단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껌 씹는 소리’가 돼서는 곤란하다. 이래저래 뜨거운 여름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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