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영(논설위원 / 영동대 교수)

▲ 백기영(논설위원 / 영동대 교수)

폴 주커의 책, 도시를 만드는 자의 고민을 읽었다. 폴 주커는 미국 부루클린, 마린, 루손의 계획국장과 샌디에고의 부행정관을 역임하는 등 공공과 민간 계획분야에서 활동해 왔다. 그는 계획가로서의 40년을 되돌아 본다. 그는 작은 계획을 세우지 말고 굵고 큰 계획에 집중하라고 이야기 한다. 굵직한 아이디어들은 절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것 같다. 문제가 된 것은 단지 자잘한 아이디어들 뿐이었다. 그간 제안했던 굵직한 아이디어들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되지 않지만 제안하지 않았던 아이디어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굵직한 아이디어들에 대해서는 후회된다고 이야기 한다.
도시를 만들어 가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도시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계획이 반드시 다루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논의의 끝은 결국 도시계획 전체의 방향성에 대한 반성으로 귀결된다.
폴 주커는 샌디에고 부행정관의 경험속에서 도시를 위한 굵직한 아이디어중 아주 소수만이 공론화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샌디에고 시는 다양한 생물종 서식을 위해 미국에서 거의 처음으로 최대 규모의 서식처 보호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넓은 지역의 오픈스페이스를 확보하고 생물서식지를 보호하면서 보호지역 외곽에서의 개발을 허용했다. 이 프로그램은 바다로부터 산에 이르는 88km 길이의 회랑을 포함하는 거대한 강과 협곡의 공원을 만드는 것이다. 굵직한 아이디어가 실현된 사례이다.
굵직한 아이디어로 몇 년간 토의가 이루어졌으나 실행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샌디에고 베이에서 미션베이까지 수로를 연결하는 것이나, 공원과 베이를 연결하는 아이디어들이다. 왜 시민들이 정부로부터 소외되는지, 도시계획이 기술문명시대에 어떻게 사람들의 사회화수준을 높이는지 관심이 컸지만 진행되지 못했다.
샌디에고는 농업보존계획을 추진하면서 일반적인 계획을 많이 해놓았다. 흙의 종류에 따라 토양지도를 만들었고, 농산물의 경제성을 검토하기 위한 경제학자도 확보했고, 도시화로부터 좋은 농지를 보호하기 위한 계획도 수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계획은 정치적으로 묵살되었다. 그 이유가 있다. 샌디에고 시에는 우량농지의 양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미래의 도시화 예정시점과 농지로 사용되는 현재사이의 시간적 간격이 상대적으로 짧았다. 토지의 투기가치가 농지가치보다 높았었고, 진정한 농부보다 토지투기꾼이 더 많았다. 이러한 정치적인 환경속에서 어떠한 제안도 쉽게 수용될 것이라고 확신되지 않았다. 토지투기에 한참 앞서서 계획이 수립되어야 농경지 보호가 이루어진다.
별 볼일 없는 작은 계획에 대한 논쟁 때문에 굵직한 아이디어를 실현할 기회를 놓쳐 버린경우도 있다. 샌디에고에 해군훈련센터부지가 군 공항부지, 산업용지와 함께 재개발예정이었다. 150만평에 달하는 이들 부지는 만과 해안으로 연결되어 있고 도심과도 매우 가까워 입지적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복합용도 워터프런트 커뮤니티 시설이 포함된 세계적인 도심개발지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미국 서부해안의 베니스가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시는 항공기주차장, 소방서 훈련시설, 렌터카업체 주차시설, 군 주거시설, 호텔 한 개 등 무미건조한 시설들을 건설하려 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었는가? 폴 주커의 한탄이다.
계획가들은 훨씬 더 많은 것들을 해야 한다. 계획가는 마음을 열고 시도하고 바꾸고 도전해야 한다. 우리는 가끔 큰 아이디어가 아니라 그저 사소한 것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곤 한다. 도시를 이끄는 큰 비전과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지속적으로 큰 계획을 진행하고 있는가? 오랜 검증의 기간을 견디어내고 있는가?
작은 계획을 세우지 마라. 이 말은 다니엘 번햄이 시카고 계획을 수립할 때 한 유명한 말이다. 작은 계획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마력이 없기 때문에 실현되지 않을 수 있다. 큰 계획을 세우고, 소망을 원대하게 하여 일하라. 시카고의 도시미화운동을 이끈 다니엘 번햄같은 인물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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