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과 이교수를 따라 제로와 발발이 π가 캠퍼스를 걷고 있다
연못 중앙엔 가시연꽃, 잉어들은
빨간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폐곡선 놀이에 빠져 있고
나무는 한쪽 발이 없는 불구의 컴퍼스여서
제로는 누구의 고통도 측정하기 싫은 우울한 짐승이다
(시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와 발발이 π’ 중에서)

어렵다. 난해하다. 이상하다. 기괴하다…많은 이들이 함기석 시에 대해 이렇게 반응한다.

그렇다 그의 시는 어렵다. 난해하다. 이상하다. 기괴하다. 그래서 그의 시와 관계를 맺고 이로 인해 영혼이 정화되고 치유되기를 꿈꾸는 많은 이들을 당혹하게 하고 멀리하게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유로 그의 시를 멀리한다면 이는 삶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시와 기하학을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시로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해 오고 있는 함기석(50) 시인이 최근 시집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를 발간했다. 전작 ‘오렌지 기하학’ 이후 3년 만에 펴낸 책. 이번 시집은 4부로 구성, 모두 60편의 시가 담겼다.

시집 제목은 본문에 등장하는 시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와 발발이 π’에서 따왔다. 20세기 전반의 대표적 수학자 중 한 사람인 힐베르트의 이름을 딴 고양이와 발발이 π를 통해 그는 수학적 세계가 어떻게 언어로 형상화되는지 보여준다.

이렇게 시인은 익숙해 보이는 단어에 수학적 용어들을 더하는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생경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살모사 방정식’, ‘함박눈 함수’ 등도 그렇다. 한양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동시집 ‘숫자벌레’, 동화집 ‘야호 수학이 좋아졌다’ 등을 펴내며 수학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이어 가고 있는 시인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시세계를 분명히 다진다.

‘내가 낑낑거리며/지하실을 업고 옥상으로 올라갈 때/아내는 옥상에서 핏물 뺀 아이의 빨래를 널고/흐린 하늘을 착착 접어 계단을 내려온다/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햇볕과 바람에 지하실을 말린다 (시 ‘간병’ 중에서)‘

이해하기 어렵고 심지어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한 그의 시는 오래오래 찬찬히 음미하며 씹을수록 진한 맛을 낸다. 싸한 감동을 주지만 결코 과하지는 않다. 시는 어떠해야 한다는 정형화된 틀을 깨는 시들은 마치 어느 실험극 무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봉준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에는 전작 ‘오렌지 기하학’에서 보여주었던 파격이나 해체나 실험이 사실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기석의 시는 초현실적인 긴장감으로 충만해 저항과 유희, 우연과 필연의 경계선을 넘나든다”며 “이전의 시편들이 자연적 삶과 ‘시=언어’를 선명하게 단절시키는 방향을 유지했다면 이번 시집은 그것들이 불연속적이나 결코 무관한 관계가 아님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함 시인은 1966년 청주 출생으로 1992년 ‘작가세계’로 등단했다. 저서로 시집 ‘오렌지 기하학’, ‘뽈랑 공원’, ‘국어선생은 달팽이’, 동화집 ‘상상력학교’, ‘코도둑 비밀탐정대’ 등이 있으며, 박인환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눈높이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민음사. 155쪽.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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