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청주 배티공원에서 열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여성인권수호 기원상 제막식’. 이날 행사에는 충북 유일의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가 초대돼 참가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당시의 상황을 얘기해 달라”는 사회자의 당연하지만 잔인한 질문이 있었고, 천 번도 넘게 같은 질문을 받았을 할머니는 처참한 기억을 떠올리기도 싫다는 듯 구체적인 언급을 피한 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어지는 다른 질문에 대한 할머니의 대답에서는 길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깊은 한이 배어있었고, 그 와중에 할머니는 연신 밝은 웃음을 지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보은에 거주하는 이 할머니의 나이는 89세. 현재 생존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평균 나이다. 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아갈 날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상황에서 이 땅의 많은 소녀들이 성노예로 전락해야 했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전국 각지에 세워지고 있는 것이 바로 평화의 소녀상이다.

충북에서는 올 초부터 충북여협과 도내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충북 평화의 소녀상 시민추진위원회가 소녀상 제작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작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불협화음을 냈고 두 개 단체에 의해 각기 다른 모습의 두 개 소녀상이 제작되는 결과를 낳았다. 건립 부지 제공을 요청받은 청주시가 소녀상을 한 개만 설치할 것을 요구하면서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됐다. 청주 청소년광장에 두 개를 나란히 세우는 것으로 접점을 찾으려했으나 청소년 관련 단체의 반대로 이마저 어렵게 됐다. 결국 청주시는 차선책으로 배티공원에 건립을 제안했고, 여협은 여성친화공원이라는 의미가 있는 이곳에서 제막식을 가졌지만 추진위의 소녀상은 아직도 건립 장소를 찾지 못한 채 시봉식만을 가진 상태다.

이러저러한 논란이 많기는 했으나 어찌됐든 소녀상의 건립 취지는 높게 사야 한다. 그러나 추진위의 소녀상은 훼손될 가능성이 있고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소년광장에 건립되지 못한 채 ‘전시’되고 있는 상태다. 아픈 역사가 더 이상 잊히지 않고 더 많이 기억되기 위해서는 소녀상이 많은 시민들이 오가는 곳에 세워져야 한다. 갈 곳 잃은 소녀상이 아픈 몸을 누일 곳을 하루 빨리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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