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금서 읽기 주간

루소의 ‘에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보들레르의 ‘악의 꽃’ … 후대에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대부분 금서였다.

한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금오신화’, ‘홍길동전’ 등이 금서 조치를 당했고, 군사정권 시절에는 권력을 비판하거나 사회주의에 관한 책이 대부분 금서로 지정됐다. 금서 지정은 단순히 한 권의 책을 세상에서 소멸시키는 것을 넘어서 사유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독서의 달, 바람직한 독서문화를 위한 시민연대의 제안이 솔깃하게 들린다.

이들은 오는 9월 1~7일을 1회 금서 읽기 주간으로 선포하고, 전국의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 독서동아리에서 금서를 읽고 토론하자고 나섰다. 이를 통해 한국사회의 위축된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고 독자의 권리, 도서관의 자유에 대한 인식을 넓히겠다는 방침이다. 이 주간 동안 ‘추천 금서 목록’을 배포하고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이번 금서 읽기 주간은 지난 5월 한 민간단체가 어린이·청소년 도서 12종을 ‘좌편향’ 도서로 지목하자 문화체육관광부와 경기도교육청이 공문을 보내 학교·공공 도서관의 추천도서 적절성을 재고하도록 한 일이 발단이 돼 열리게 됐다.

추천 금서 목록은 교사, 대학교수, 시인, 그림책 작가, 시민단체 활동가 등 100명의 추천을 받아 작성했다. 회원들의 추천사도 함께 담겼다.

목록에는 의외의 책들이 가득하다. 만화 ‘아기공룡 둘리’는 아이들 버릇이 나빠진다는 이유로 불량만화의 대명사로 지탄받았고, 그림책 ‘사랑해 너무나 너무나’는 입양에 의한 새로운 가족을 구현한 따스한 그림책이라는 찬사와 게이 커플을 조장한다는 혹평이 함께 했다. ‘강아지똥’의 저자 권정생의 책도 금서였던 적이 있다. ‘우리들의 하느님’이 2008년 반정부 반미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국방부 금서가 됐던 것. 목록에는 출간 당시 선정성 논란을 일으키며 마광수 교수를 감옥살이 시킨 ‘즐거운 사라’도 포함됐다.

심지어 현재 25개국 언어로 번역된 유아들의 필독서 ‘갈색 곰아, 갈색 곰아 무엇을 보고 있니?’도 들어있다. 2010년 좌파 철학자 빌 마틴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텍사스 교육위원회에 의해 금서로 지정됐던 적이 있다.

도종환 국회의원(시인)은 백석 시집 ‘사슴’을 추천했다. 월북작가라는 이유로 1988년 해금될 때까지 금서로 분류돼 있던 책이다. 도 의원은 “백석은 월북작가가 아니라 고향이 북쪽이라 그냥 거기 있었을 뿐”이라며 “문제가 될 만한 이념적인 내용을 담은 시는 한 편도 없다. 지금은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닮고 싶어하는 시인”이라고 설명했다.

오혜자 청주 초롱이네도서관장의 추천 금서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다. 오 관장은 “1992년 국내 최초 무삭제 완역이라는 완장을 두른 따끈한 책을 손에 들고 흥분하던 기억이 있다”며 “이 책은 금서였던 적은 없지만 완역되지 않았었다. 동화의 형식을 빌어 작품을 부분만 출간해 온 것은 독자에 대한 기망이었다”고 밝혔다.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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