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묘순(편집국 기자 / 옥천지역 담당)

▲ 김묘순(편집국 기자 / 옥천지역 담당)

지구 탄생 이래 가장 생명이 긴 말이 ‘요즘 것들 싸가지(싹아지) 없다’는 말이란다.
이 말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쓰여지며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시장에 갔다. 그곳에 가면 사람냄새가 나서 좋다.
여든을 바라보는 할머니 한 분이 좌판을 벌여놓고 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푸성귀의 종류와 날씨가 선선할 때만 손수 만들어 내오는 손두부의 맛에 이끌려 할머니와 친해졌다.
항상 명랑하게 오늘의 추천 품목을 정해주시던 할머니께서 그날은 시큰둥한 표정이셨다. 사정은 이러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시장에 나온 젊은 새댁이 할머니께 얼토당토 않은 막말을 쏟아 붓고 간 것이다.
마트에 가며 아이를 할머니께 맡겨놓고 간 사이 할머니는 아이에게 과자를 집어줬다. 잘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할머니는 몇 웅큼 아이에게 먹였고 그 사이 아이 엄마가 돌아왔다. 할머니는 아이를 보며 “엄마만 먹고 너는 안 줬어?”라는 말이 새댁을 화나게 했다. 시장에서 새댁은 한바탕 이 세상 상스러운 욕의 족보를 모두 늘어 놓으며 막말을 해대고 사라졌단다. 시장 사람들도 혀만 내두르고 있었다.
하필 새댁의 몸매는 뚱뚱했고 할머니는 아이의 모습이 예뻐서 의례적으로 하는 정서적 표현의 의사소통 행위였다.
스물일곱 살부터 시장에 나와 싱싱한 푸성귀를 젊은이들의 입에 넣어줬던 할머니의 비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세상은 유토피아의 반대되는 가상세계라는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겠는가.
존 스투어드 밀은 디스토피아(Dystopia)는 Dis(나쁜)+Topos(장소)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물도 위에서 아래로 항상 흐르는 법이거늘 하물며 인간이 어찌 어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위로 함부로 치솟기만 하는지. 나쁜 장소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애를 써야한다.
극소수에 불과한 새댁 같은 사람들로 인해 인간의 도리라는 거대담론이 뒤집히는 것은 아닌지, 목소리를 높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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