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한국사람은 모임을 참 좋아한다.
오죽하면 한국사람 셋 이상이 모이면 모임이 생긴다고 하지 않나. 얼마나 모임을 좋아하면 매일 얼굴을 보는 직장 동료들이 한 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모임을 따로 만들어 퇴근후 별도의 자리를 가질 정도니 말이다.
우스갯소리로 한국에는 3대 마피아가 있다고 한다. 해병전우회, 호남향우회, 고대교우회가 그것이다.
이같은 소리를 듣는 데는 이들의 결집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서로 끌어주고 당겨주는 인맥의 줄기는 가히 국가대표 급이다. 지금은 새로운 인물확보가 쉽지 않아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하는 위세가 예전과 같진 않다지만, 그래도 ‘우주에 떨어뜨려 놓아도 잘 산다’는 농은 유효하지 않나 싶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임들은 성격에 따라 긍·부정이 엇갈린다. 중요한 건, 이러한 모임들이 어떤 불순한 동기를 가진 몇몇 사람들에 의해 세력화될때 일어나는 부작용만큼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공통된 관심사나 소속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돕고 교류하는 것은 적극 권장돼야 한다.
그런 뜻에서 우리 지역에도 지역사회의 화합과 안정, 발전을 견인할 순수한 모임이 필요하다.
지역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청주에는 청녕회와 이수회, 무심회라는 기관·단체 관계자들의 모임이 있다. 청녕회는 지사와 교육감, 법원장, 검사장 등 주요 기관장과 언론계, 금융계, 경제계 등의 수장 30여명의 모임이다. 이수회(貳首會)는 부기관장들의 모임이다. 도청, 교육청, 법원, 검찰, 경찰, 국정원, 식약처의 2인자가 회원이다.
무심회는 관서장, 언론계, 종교계, 금융계, 공공단체, 사회단체, 국회의원 등 150여명을 일반회원과 특별회원으로 두고 있다. 워낙 회원이 많다 보니 지역발전을 위한 심도있는 대화는 한계가 있어 1년에 상·하반기 두번 주로 점심에 만나 식사하고 불우이웃돕기 및 장학금을 지급하곤 한다. 
여기서 눈여겨 볼 모임은 청녕회(淸寧會)다. 말 그대로 청주를 평안하게 하자는 모임이다. 회원은 도단위 기관·단체장 및 군부대장이며 충북도지사가 당연직 회장이다. 과거 청녕회는 주요기관장 7~8명이 주기적으로 만나 친목 강화는 물론 충북지역사회의 화합과 발전을 위한 소통의 자리가 됐다. 지역에서 골치 아픈 왠만한 현안은 이 자리에서 공유하고 해법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런 청녕회가 언제부터인가 흐지부지돼 지금은 회원도 대학·언론·금융·경제계 수장으로 확대돼 30명이 훌쩍 넘는다. 그렇다보니 모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유명무실해졌다는 비판을 받는다. 작년의 경우 겨우 연말에 한번 만나 모임을 때웠을 정도로 관심밖으로 밀려났다. 보다못한 한 회원이 “이런 식으로 운영하려면 뭣하러 하느냐”고 쓴소리를 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충북호의 수장 이시종 지사에게 한마디 거든다면, 과거처럼 주요기관장 모임을 정례화할 생각이 없느냐는 거다. 단순히 전·출입하는 기관장 환송회만 할 게 아니라 매월 얼굴을 맞대 소주 잔 기울이며 지역현안을 논의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를 주도할 의향이 없느냐는 거다.
한참 전의 일이다. 중부고속도로순찰대 소속 경찰관이 뇌물수수 혐의로 청주지검에 줄줄이 구속된 적이 있다. 상납은 당시의 관행이었다. 그래서 관심은 검찰 칼끝이 경찰 수뇌부 어디까지 향하는 거 였다. 그런데 기자들과 만난 검사장은 뜻밖에도 수사를 더 이상 확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유는 “인품이 훌륭한 김 모 지방경찰청장을 봐서...”였다.   
당장 내달 18일부터는 괴산에서 2015괴산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가 열린다. 그런데 이 엑스포의 성공개최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임각수 괴산군수가 지난 6월초 불미스러운 일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죄를 법으로 다스리겠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 국제행사라는 특수상황을 감안해 우선 행사를 치르게 한 뒤 사법처리 수순으로 갔어도 되지 않았나 하는 지역여론도 있다. 이런 때 과거처럼 주요기관장 모임이 활발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크게 다가온다. 지방자치제도 시행이후 선출직 단체장과 사법기관과의 관계가 예전과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만나서 지역현안을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면 뜻밖의 해법이 나오게 돼 있다. 법은 사람이 다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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