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UPDATED. 2018-09-23 07:21 (일)
"태안 고선박은 600년전 쌀 운반선"…처음 나타난 조선시대 배
"태안 고선박은 600년전 쌀 운반선"…처음 나타난 조선시대 배
  • 장인철 기자
  • 승인 2015.08.26 15: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마도 4호선' 발굴조사 중간발표
▲ 바다에 파묻혀 있는 마도 4호선.

(동양일보 장인철 기자) 지난해 충남 태안 마도 해역에서 발견된 고선박 '마도 4호선'이 한국 수중고고학 사상 최초의 조선시대 조운선(漕運船)으로 확인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소재구)는 지난 4월22일부터 마도 4호선 정밀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조선시대 관청 명칭이 적힌 목간과 분청사기 등 유물 300여점이 발견됐고 선박 구조가 견고한 점으로 미뤄 이 배가 조선 초기 조운선으로 보인다고 26일 밝혔다.

조운선은 지방 창고에 있는 조세미(租稅米)를 도읍에 있는 창고인 경창(京倉)으로 운반하던 선박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굴된 고선박은 마도 4호선을 제외하면 13척이다. 그중 10척이 고려시대 배이고, 2척은 13∼14세기 중국 선박, '영흥도선'으로 명명된 1척은 통일신라시대 배다.

조선시대 마도 해역에서는 무수한 배가 침몰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 시대의 배가 실물로 출현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선박 안에서 글을 쓴 나뭇조각인 목간 60여점이 출수(出水)됐는데, 대부분 출발지인 나주와 종착지인 한양 광흥창을 뜻하는 '나주광흥창'(羅州廣興倉)이 적혀 있었다.

일부 목간에서는 곡물의 양과 종류를 의미하는 문자인 '두'(斗)와 '맥'(麥)이 나오기도 했다.

연구소는 목간의 글자가 마도 4호선이 전남 나주 영산창(榮山倉)에서 거둬들인 세곡이나 공납품을 광흥창으로 옮기는 배임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광흥창은 고려시대 설치돼 조선시대까지 존속한 관리들의 녹봉 관리 기관이다.

임경희 문화재청 학예연구사는 "마도 4호선 목간은 이전에 마도에서 발굴된 배의 목간과 마찬가지로 화물의 물표"라면서 "파손되지 않은 목간에는 끈을 꿰 묶을 수 있는 작은 구멍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15세기 목간이 동아시아에서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강조한 뒤 "나주광흥창이란 문구가 쓰인 목간이 무더기로 나왔다는 점이 이 배가 조운선이라는 명확한 증거"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선내에서 출토된 분청사기 대접과 접시 140여점 중 3점에서는 조선시대 관청인 내섬시(內贍寺)를 뜻하는 '내섬'이라는 글자가 확인됐다. 내섬시는 궁궐에 바치는 토산물, 2품 이상 관리에게 주는 술과 안주 등을 담당하던 곳이다.

또 분청사기에 중앙부는 문양을 성글게 넣고 주변부는 국화나 새끼줄 무늬를 빽빽하게 새기는 15세기 초반 제작 양식이 사용된 사실도 드러났다.

박경자 청주공항 문화재감정관은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태종 3년(1403) 내섬시를 세웠고, 태종 17년(1417) 공물로 바치는 그릇에 관청의 이름을 새기라는 명령이 내려졌다"며 "세종 3년(1421)에는 그릇에 관청 명칭 대신 제작자 이름을 쓰도록 했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마도 4호선이 1410∼1420년대 세곡과 도자기를 싣고 나주에서 한양으로 향하다 마도 해역에서 침몰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와 함께 배에서는 벼와 보리, 조선시대 편찬된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주 공물로 기록된 대나무와 숫돌, 조선시대 도량형을 유추할 수 있는 곡물 가마니도 출수됐다.

현재 마도 4호선은 마도 북동쪽 해역의 수심 9∼15m 지점에 파묻혀 있으며, 오른쪽으로 50도 기울어져 있고 뱃머리는 남동쪽을 보고 있다. 밑판 3열과 좌현 외판 4단, 우현 외판 11단, 선수와 선미의 자재가 일부 남아 있는 상태다.

배의 규모는 마도 해역에서 이전에 발견된 선박과 비슷한 길이 13m, 폭 5m, 깊이 2m이며, 형태는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平底船)으로 파악됐다.

뱃머리 판재는 고려시대 배와 조선시대 군선이 세로로 설치한 것과 달리 가로로 배치하고, 좌우 판재를 연결하는 나무는 고려시대에 쓰인 원통형 목재보다 튼튼한 횡강력재를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지난해 마도 4호선이 발견됐을 때 주변에서 인양된 18세기 백자 110여점과 배에서 출수된 분청사기 사이에는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대해 조사단은 마도 4호선이 가라앉은 뒤 해저에 파묻히고, 이후 그 위에 백자를 실은 배가 침몰했거나 백자가 떠내려 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10월말까지 마도 4호선 발굴조사를 계속할 예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충청대로 103 (율량동)
  • 대표전화 : 043)218-7117
  • 팩스 : 043)218-7447,7557
  • 창간 : 1991-12-29
  • 제보전화 : 043)218-722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원중
  • 명칭 : 동양일보
  • 제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 등록번호 : 충북 가 00003
  • 등록일 : 1991-12-27
  • 발행일 : 1991-12-27
  • 회장 : 조철호
  • 발행/인쇄인 : 유영선
  • 편집인 겸 편집국장 : 김영이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ynews@dy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