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침례신학대 교수>

▲ 김주희<침례신학대 교수>

우리는 작가가 쓴 게 아니라 우리가 읽고 싶은 것을 읽는다고 알베르토 망구엘이 [독서일기]에 썼다. 자신은 돈키호테에서 기사들의 세계보다는 주인공의 윤리관, 그리고 산초와의 흥미로운 우정에 더 끌린다고. 작가는 기사이야기를 쓴 것이건만.

 읽고 싶은 것‘을’ 읽는다고 싶은 것‘만’ 읽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눈이 한 페이지 글에서 단어들을 솎아내며 읽고 안 읽고 할 재주는 없으니 다 읽고 난 뒤 마음에 남겨두는 일을 의미할 것이다. 어떤 것을 마음에 둘 동기나 여력이 있을 무렵 그 때 만난 것들이 마음에 남는 그런. 말이 그렇듯, 흐르듯 들리는 말 가운데 유독 마음에 생생하게 남는. 좋은 말이거나 나쁜 말이거나, 의미 있어지는 그런. 말한 이가 중요하기 때문이거나 그 때 그 말이 의미있는 상황이거나 어쨌거나.

 여름 무더운 날, 경주에 있었다. 유물 많은 지역에 죽은 자들의 도시같은 수사를 얼핏 떠올리는 편견이 충만할 때가 있다. 편견에 더해 늦은 시각 바닷가에 숙소를 구하려는 호사까지 덧붙으면 침침한 영화관에 떨어뜨린 무언가를 찾아들어야 하는 때 같은 난감함에 놓인다. 영화는 점점 고조되는데 놓쳐버린 그 무언가를 급히 찾아들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조급증과 닮은 그런. 바다에서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시겠다는 고대의 왕이 묻히셨다는 팻말이 지나고도 한참, 바다에는 검은 파도가 일렁이고 숙소들의 침침한 조명들에서 음험함이 연상되면 시내의 밝고 깨끗한 불빛 속으로 들어서는 결말이 황급해진다. 아침 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이배들은 고기를 싣고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 가요, 하는 노랫말을 웅얼대며, 희망 같을 금빛 아침바다는 다음에 보기로 기약하면서. 다보탑은 기억 속보다 훨씬 커다랗고 아름다웠다. 이 장려한 탑이 기억 속에 자그마하게 각인되어 있었던가. 탑을 쌓다니, 집도 절도 아닌 탑을 위해 일생을, 사랑을, 미래를 유보하기도 하다니, 사람이란. 무영탑 전설을 배경으로 하는 석가탑은 탑신들을 모두 해체해 수리 중이었다. 안전막 안에 탑이 해체되어 있는데, 그 위 기중기 같은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기계 없던 시절, 이런 탑 하나를 만들자면 얼마나한 공이 들어야 했을지.

 불국사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였다. 여관방 하나에 여러 명이 섞여 자던 시절, 일찍 자는 친구 얼굴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던 그 무렵, 여관에서 잘 때 선생님들 신발 감추면 안된다고 미리 호통 맞으면서도 기대에 부풀던 그 여행에서 아름답고 비례미가 있다는 다보탑과 석가탑에 대해 무슨 이유인지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기억도 없으니 그 때 인상이 이런 걸 아름답다고 하는 건가부다 하는 확인절차를 거치는 것 같았을지. 돌을 다루는 어려움과 그 돌을 다듬어 이런 모양을 만들겠다고 생각한 발상과 그걸 막상 다듬어 나가는 일의 고된 노력들에 무지해서 였을까. 교과서에 나올 정도면 하늘을 찌르는 높이일 것이라고 기대했을지. 그 나이에는 규모로 세상을 보기도 했으므로 아마도 어마어마한 규모를 기대했는지 모른다.

 


 아름다움을 이루는 시간과 노력과 아슬함과 포기했을 많은 것들을 그 형태 너머로 볼 만한 세월 덕인지. 탑을 만든 이의 절박함과 그를 기다렸다는 어린 연인의 기다림을 안쓰러워하다가 그 오래 전 사람들이 돌을 진흙 다루듯 했다고 동행이 감탄했다. 돌로 그렇게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이와 탑을 같이 보는 일이 다행이었다. 어려운 걸 알기 때문에 안쓰럽고 아름답고 고귀한 것을 아낄 수 있게도 되는지 모른다. 잘 자란 나무들을 보면서 동행이 또 다시 감탄했다. 이 나무들은 얼마나 됐을까. 나무들은 우람하고 그늘이 깊었다. 우리가 다녀 가고도 삼십년쯤? 그래, 다녀가고도 삼십년이니 그 사이 나무들은 어려움들을 넘어서면서도 두터워졌을 것이다. 새로 심어도 장성한 나무가 되었을 터이니. 우리 삶에 이끼 끼어도 오래 남는 돌 같은 무엇이 있을 수 있다면, 나무 뿌리내리듯 깊고 신실한 신자가 될 수 있다면 시간 흘러 육신 쇠잔해도 의식이 명료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작가가 쓴 게 아니라 읽고 싶은 것을 읽는다는 다른 버전은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일 수 있겠다. 그렇다면 탑이 아니라 시간의 힘을 빙자한 자아도취였는지 어쨌는지 어쨌거나 되어가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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