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발전과 민주주의 성숙을 위해 여야가 당리당략을 떠나 합리적이고 공정한 선거제도를 마련하여 정치개혁을 이끌겠다던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의 ‘공식’ 활동기간이 8월 31일로 종료됐다. 그러나 정치권이 약속했던 정치개혁은 온데간데없고 5개월여 동안 선거구획정위원회 설치와 국회의원정수 300명 유지만을 잠정 결정했을 뿐이다.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가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편차에 대해 헌법불합치를 결정하면서 반드시 개편해야하는 선거구획정기준을 비롯해 지역구와 비례대표간 의석수 배분, 권역별비례대표제와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등 많은 핵심 쟁점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책임 떠넘기기와 기득권 지키기에만 여념이 없었다는 유권자들의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정개특위는 9월 1일 정기국회 첫 본회의에서 재구성이 결정되어 11월 15일까지 가동하게 됐지만 내년 총선이 불과 7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현재까지 선거구획정 기준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고 이에 따라 선거구획정위원회도 선거구획정 작업을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회의원정수를 300명으로 유지하면서 선거구별 인구편차 2:1 이하를 적용하려면 인구가 밀집된 도시지역의 지역구 의석수가 12석이나 늘어나야하고 여기에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농·산·어촌 지역대표성 문제까지 고려하게 된다면 결국은 비례대표 의석수가 그보다 더 큰 폭으로 감소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구의 절반을 넘지만 극히 과소대표되고 있는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것인가? 이것은 그동안 정치권이 주장해왔던 사회적 소수자가 더 많이 정치에 참여하여 다양한 집단과 계층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정치개혁에 크게 역행하는 결과일 것이다. 우려했던대로 정개특위의 구성에서부터 여성의 대표성은 고려되지 않았고 활동기간 내내 어디에서도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에 관한 논의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급기야는 비례대표의석이 대폭 축소되게 생겼으니 내년 총선을 앞두고 20대 국회 여성 국회의원 30% 달성을 목표로 다양한 노력을 하던 여성계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핵심적인 여성 지위 지표는 여성의 정치세력화 비율이며 이것은 현실적으로 국회, 지방의회 등 선출기구에서의 여성 비율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 비례제 여성할당 50% 도입에도 불구하고 2015년 현재 15.7%로 국제의원연맹(IPU) 조사에서 190개국 중 87위를 차지해 전형적 후진성을 드러내고 있다. Kanter의 임계치(critical mass)이론에 의하면 여성의 정치참여가 높지 않고 남성 위주로 작동하는 현실 정치사회에서는 여성정치인이 최소한 15%를 차지해야 정치문화가 바뀌기 시작하고 여성을 위한 정책과 입법산출이 가능해지며, 여성의원이 각급 의회에서 40%로 늘어나게 되면 그 의회의 문화와 조직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한 나라의 국가경쟁력과 그 사회의 투명도가 여성의 정치참여 정도에 정비례한다는 것은 이미 일반적 통설이 되었다. 스웨덴, 핀란드 등 세계에서 부패인식지수가 최상위 수준이고 국가경쟁력이 높은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여성의 정치참여율이 이미 40%를 넘어서고 있음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이들은 먼저 정치와 행정 그리고 공공부문에서 달성한 양성평등을 바탕으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성참여를 확대하고 여성인력의 효율적 활용을 도모해 낼 수 있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4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성격차지수’(Gender Gap Index)는 142개국 중 117위로 그 순위가 해마다 하락하고 있는 심각한 실정이고, 특히 성격차지수의 세부 부문 중 여성의 정치권한 부문은 93위에 머물고 있다.

의회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낮은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입법과정에서의 여성대표성 제고에 걸림돌이 될 뿐만 아니라 성 격차 해소를 저해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부문에서의 여성참여 확대와 대표성 제고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은 아직도 미약하기 짝이 없다.

정개특위는 남아있는 활동기간 중에 정치개혁과 정치선진화의 중요한 부분인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보장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와 양성평등한 공천심사 시스템을 구축하여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킴으로서 정치의 효율성을 제고시키고 민주주의를 한걸음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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