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UPDATED. 2018-09-23 07:21 (일)
10회 충북여성문학상 수상작-손자병법 놀이
10회 충북여성문학상 수상작-손자병법 놀이
  • 동양일보
  • 승인 2015.09.08 09: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계편(始計篇)

1. 싸우기 전에 갖추어야 할 정신

 

거짓말 같다고?

하하, 그럴 줄 알았어. 다들 내가 3학년이라면 놀라거든. 그렇다고 유치원생으로 보는 건 너무해.

엄마는 내가 밤마다 엉뚱한 짓거리를 하느라고 잠을 충분히 자지 않아서 성장이 더디다고 믿고 있어. 그래서 성장에 좋은 음식만 만들어주는데 솔직히 맛은 별로야. 그리고 현실과 상상을 구분 못한다나 뭐라나. 성장클리닉에 다니는 것도 지겨워죽겠는데 글쎄 얼마 전에는 정신과병원에도 억지로 끌려가서 상담을 받았다니까.

나는 의사 선생님에게 그동안 내가 겪은 일과 내 생각을 말했어.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진짜로 믿는 것 같았어. 나는 신이 나서 겪었던 이야기에다 살짝 보태서 더 재미나게 했더니 선생님이 엄청 좋아하는 거야.

상담이 끝나고 의사 선생님이 엄마를 불렀어. 그리고 뭐라고 한줄 알아?

“앞으로 큰 인물이 될 아드님을 두셔서 좋으시겠습니다. 요즘 보기 드물게 상상력과 감성이 풍부한 아이입니다. 하하. 저도 모처럼 어린이다운 어린이를 만나서 기분이 좋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웃으며 말했어. 난 가만히 있고 싶었는데 내 어깨가 저 혼자 괜히 으쓱거리더라고.

“아드님은 지극히 정상이니까 다음 진료는 예약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하하.”

나는 기분이 엄청 좋았어. 그런데 엄마얼굴이 빨개지는 거야.

 

엄마는 내가 엉뚱하고 산만해서 공부에 집중을 못한대. 물론 엄마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야.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눈에 보이는 게 다 궁금하고 참견하기 좋아하니까 산만해 보일 거야. 그것까지도 괜찮은데 나무나 꽃, 새와 동물들에게 말을 거는 걸 보면 어떤 엄마라도 그런 걱정을 할 거야. 그렇지만 그건 엄마 생각이지. 우리처럼 어린 아이들과 어른들은 모습이 다른 것처럼 생각도 달라야하는 거 아니야?

너희들도 보이는 것만 믿니? 아닐 거야. 세상에 보이는 것만 있다면 사는 게 얼마나 재미없겠어. 지금 이순간도 우리 주변에서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이런 사실을 너희들만이라도 믿어줬으면 좋겠어.

물론 지금 당장 믿어달라고 하지 않을 게.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믿어도 늦지 않아. 나는 너희들과 주로 놀지만 너희들이 모르는 다른 친구들하고도 놀거든. 그러니까 시간이 부족해서 잠을 덜 자는 건 사실이야. 그렇다고 엄마가 걱정하는 성장장애라든가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할 만큼 산만한 건 아니야. 내가 지금은 친구들보다 몸이 좀 작지만 언젠가는 클 거거든.

그러니까 내 말은 나는 지금 성장을 잠시 미뤄두고 있다는 거야.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빨리 크고 싶지 않거든. 실컷 놀고 나서 커도 늦지 않잖아? 지금도 실컷 못 노는데 어른이 된다고 실컷 놀 수 있겠어. 만날 일만하는 아빠를 보면 알 수 있어. 어른이 된다는 건 참 따분한일이라는 걸.

그러니까 너희들도 내가 좀 작다고 얕보면 안 돼. 그랬다가는 너희들 큰 코 다칠 걸. 음, 왜냐하면 난 손자병법을 써서 사람들을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만들 수 있거든. 하하하, 그렇다고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어. 내가 무슨 마술 같은 걸 부려서 너희들을 내 맘대로 움직이겠다는 건 아니니까.

 

너희들, 설마 손자병법이 뭔지 모르는 건 아니지? 음, 모르는 친구도 있을 것 같아 말해줄게.

지금부터 2000여 년 전에 중국 제나라에 손자(孫子)라는 사람이 살았대. 그 당시 제나라 주변에는 작고 큰 많은 나라들이 서로 싸우느라 백성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았나 봐. 백성들은 굶주리는 것도 모자라 전쟁터에 끌려가서 목숨을 잃었겠지. 그걸 보고 손자(孫子)는 전쟁을 통해 사람의 강하고 약한 점과 허점을 예리하게 찾아내 전쟁에 활용하는 책을 썼는데 그게 바로 손자병법이야.

힘과 무기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 전쟁을 오래 끌지 않는 방법, 가엾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하지 않으면서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 같은 걸 연구했대. 그래서 손자병법은 그냥 단순한 병법 책이 아니야.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담겨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지.

우리는 전쟁에 나가 싸우는 군인 아저씨도 아닌데 왜 손자병법을 읽느냐고?

하하하. 그렇기는 해. 그렇지만 총과 칼을 들고 싸우는 것만 전쟁이 아니잖아. 우리처럼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것도 전쟁이야. 누구는 만날 게임하고 놀기만 하는 것 같은데도 공부를 잘 하고, 누구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고 그러잖아? 같은 여건에서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하는 학교생활은 무척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지 않니?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만 봐도 자주 싸우셔. 할아버지는 손자병법 내용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할머니에게 만날 당하지만. 하하하 그러면서도 할아버지는 나만 보면 손자병법을 가르친다고 난리라니까.

솔직히 너희들도 사는 게 힘들지?

실컷 놀고 싶은데도 맘대로 놀지 못하잖아. 휴,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게 다 전쟁이나 마찬가지야.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니? 사람뿐만 아니라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도 만나고. 그냥 만나기만 하나, 만나서 네 거니 내꺼니 하고 따지는 일, 누가 더 이익이고 손해인가 하고 재 봐야지. 사는 게 엄청 복잡하단 말이지.

손자병법은 이런 문제들이 생겨서 골치 아프기 전에 미리미리 대비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어. 물론 그런 일이 내 앞에 딱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후회하지 않는 결정을 할 수 있나 하는 것도 배울 수 있지.

손자병법 책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궁금하다고?

그 이야기를 다 해 줄 수는 없어. 그러려면 나는 놀지도 못하고 만날 그 이야기만 해야 할 걸. 그러니까 자세한 걸 알고 싶으면 너희들이 직접 읽어 봐. 내가 이 자리에서 다 이야기해버리면 책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책은 누구나 읽으라고 있는 거야.

대신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손자병법을 써 먹은 이야기 중에 재미난 걸로 몇 가지만 들려줄게.

 

아, 깜빡했네. 내 이름은 영재야. 권, 영, 재.

형은 날 보고 콩알만 한 게 잔머리만 굴린다고 ‘잔대갈’ 이라고 부르지만, 우리 할아버지는 내가 훌륭한 장수의 피를 물려받아서 전략에 뛰어나댔어. 내가 그렇게 된 데에는 이름도 한몫했어. 할아버지가 지혜로 똘똘 뭉친 사람이 되라고 이름을 ‘영재’라고 지어주었거든.

너희들도 ‘영재’가 무슨 뜻인지는 알지?

탁월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는 말이야. 이순신 장군이나 권율 장군도 나처럼 영재였나 봐. 전술과 전략을 잘 활용해서 적군보다 훨씬 적은 부하를 데리고 적군을 무찌른걸 보면 알만하지?

‘전략이나 전술’ 같은 말이 너무 어렵다고?

뜻을 풀이하면 별 거 아니야. 전술은 전투 중에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기술이고 전략은 전투가 벌어질 때까지의 상황을 이용하는 기술이야.

 

너희들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장군이 누구라고 생각해?

맞아, 이순신 장군이야. 그런데 이순신 장군은 바다에서 하는 전쟁에서 최고지만 육지에서 하는 전쟁에서는 권율 장군을 무시할 수 없지.

흠흠, 내가 바로 그 권율 장군의 후손이야. 우리 할아버지는 내가 훌륭한 장수의 피를 물려받아서 살아가는 전략에 뛰어나대. 그 점은 나도 할아버지 생각과 같아. 어, 왜 그런 눈으로 봐? 내가 잘난 척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니?

그러면 우리 형이 놀려대는 잔머리의 짱인 ‘잔대갈’인지, 지혜로 똘똘 뭉친 ‘영재’인지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저절로 알게 될 거야. 판단은 너희들에게 맡길게.

음, 사실 우리 할아버지가 권율 장군의 후손으로 형이 아닌 나를 선택하게 된 데에는 꼬마바람도 한몫했어.

꼬마바람이 누구냐고?

하하, 물어볼 줄 알았어. 궁금하지? 꼬마바람은 나에게 아주 옛날 손자(孫子)가 살던 세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변화가 빠른 지금,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너희들과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손자병법을 깨우치게 해 준 친구야.

그럼 지금부터 꼬마바람과 함께 손자병법 놀이를 한 이야기를 들려줄게.

 

 

작전편(作戰篇)

 

2. 병사들을 잘 대우해줘야 싸움에서 이긴다

 

“권영재! 너, 엄마 말이 말 같지 않니? 잘 때 왜, 자꾸 창문을 열어놓고 자는 거야?”

오늘 아침에도 나를 깨우러 온 엄마가 또 잔소리를 하는 거야.

‘쟁, 쟁, 쟁’ 엄마 잔소리는 징 두들기는 소리 같아서 한참 듣고 있으면 귀가 멍멍해져. 다른 소리는 안 들릴 정도야.

너희들도 생각해 봐. 나라고 깜깜한 밤에 창문을 열어놓고 자고 싶겠어? 창밖에서 무시무시한 귀신이 내 방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잔단 말이야. 또 겨울에는 얼마나 춥다고. 너희들은 겪어보지 않아서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를 거야.

그런데도 창문을 열고 잘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단 말이지. 내 이야기를 잘 들어 봐. 그럼 너희들도 고개가 끄떡여질 거야.

 

나는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편안한 마음으로 상상하기를 좋아해.

뭐, 처음에는 억지로 생각을 끌어다 퍼즐처럼 맞췄어. 그런데 자꾸 하다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저절로 되는 거야. 어느 때는 상상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될 만큼 생생하다니까.

너희들은 상상의 세계에 빠지고 싶은 적 없었어?

있었을 거야. 그러니까 게임을 좋아하지. 게임의 세계는 현실처럼 학교에 가고, 학원에 가고, 밥 먹고, 잠자고, 만날 같은 일을 반복하는 바보짓은 안 해도 되잖아?

그래서 나도 전에는 게임을 자주 했어. 그런데 게임은 재미는 있지만 게임의 틀 속에 갇혀서 해야 하니까 생각처럼 신나지 않았어. 게임에도 미리 정해진 규칙이 있고 그걸 지켜야하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게임하는 것도 학교생활이랑 비슷해서 상상의 세계를 내 멋대로 다니는 것보다는 재미가 덜하다는 거지.

 

그날도 나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서 눈을 감고 상상나라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어. 나만의 상상의 나라로 들어가려면 먼저 주위가 조용해야 돼. 안 그러면 들어가려다 탁 막히거든. 눈을 살며시 감고 아주 편안하게 눕는 거야. 그런 다음 숨을 천천히 쉬며 속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게 중요해.

그날은 바람을 타고 세계여행을 하는 상상을 하려고 맘먹었거든.

‘영재야, 지금 기분이 어때?’

‘음, 아주 좋아.’

‘지금 뭐가 보이니?’

‘음, 희미한 빛이 보이는 것 같아. 그리고 무슨 소리가 들려.’

‘그래? 무슨 소리인지 잘 들어 봐.’

사실 그날 나는 소리를 들으려하지 않았어. 그래서 조금 의아했지.

‘그럴게. 근데 이게 무슨 소리지? 토독, 토독, 토독. 빗방울 소리?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그날은 좀 이상했어. 상상의 세계로 들어갈 때에는 내가 소리를 무시하면 안 들리거든. 그럴 때의 소리는 그냥 스쳐지나가. 그래서 무시하고 다음 단계로 가려고 하는데 또 들리는 거야. 타닥, 타닥, 타닥. 하고 말이야.

나는 벌떡 일어나서 소리가 들리는 곳이 어디인지 둘러봤어. 엄마가 내 방을 노크하는 소리도 아니야. 그럼 뭐지?

“잘 못 들었나?”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다시 시작했어.

그때 누군가 창문을 탁탁탁 치는 거야. 난 정신이 번쩍 들었지. 이건 상상의 세계가 분명히 아니거든. 그리고 우리 집은 18층 아파트에 10층이니까 누가 창문을 두드릴 수가 없다는 거지.

갑자기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어.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기도 했고 무시무시한 귀신이 들어올 것 같아 무섭기도 했어.

솔직히 말하면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을 참았어. 귀신은 숨소리를 듣고 가까이 온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았거든. 한참을 숨을 참다가 도저히 더 버틸 수가 없는 거야. 어차피 숨을 참다가 죽는 거나 귀신에게 잡혀서 죽는 거나 죽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래서 이불을 걷어내고 참았던 숨을 푸 하고 내뱉는 순간, 아 글쎄 창문을 누군가 흔들지 뭐야.

소름이 쫙 돋았어. 차라리 기절했으면 하는 생각까지 했다니까. 기절해버리면 무서운 것도 못 느낄 것 아냐? 아마 너희들이라도 그런 생각을 했을 걸.

창문도 무서운지 덜컹덜컹 떨고 있더라고. 나도 너무나 무서워서 덜덜 떨었어.

그런데 무서워하면 안 될 것 같았어. 내가 누구야? 권율 장군의 후손 권영재잖아. 만약 권율 장군이 보고 있다면 얼마나 실망하겠어.

나는 나 자신에게 무섭지 않다는 걸 증명해보이려고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에 어깨에 힘을 주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어.

“으쌰!”

구호를 외치며 이불속에서 나와 창문을 조금씩 여는데 창문이 들들들 소리를 내는 거야. 내 손이 떨고 있으니까 창문도 따라서 떨지 뭐야.

창문이 한 뼘쯤 열리는 순간 바람이 휙 들어왔어. 나는 그냥 비가 오려고 바람이 부는 줄 알았어.

그런데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내 가슴을 밀치면서 달려드는 거야.

“앗, 깜짝이야!”

나는 뒤로 벌렁 나자빠졌어. 도대체 꿈이야 현실이야 하고 어리벙벙한 얼굴로 방금 열린 창문을 올려다봤지. 밖은 아주 조용하고 고요했어. 아, 꿈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커다랗게 웃는 소리가 나는 거야.

“하하하하. 동작 봐라. 그래가지고 장군은 무슨…….”

“누구야?”

나는 얼떨결에 내 방을 둘러보며 물었어. 그러다 아차 하고 고개를 저었지. 내 방에 나 말고 누가 있겠어. 그런데도 나도 모르게 그런 바보짓을 했다니까.

조금 후에 정신을 가다듬고 볼을 꼬집어보았어. 꿈인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볼이 얼얼하게 아픈 거야. 상상여행도, 꿈을 꾸는 것도 아니라는 게 증명된 거지.

“말도 안 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귀에 손바닥을 대고 탁탁 털었어. 내 귀에 뭐가 들어가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아무도 없는 방에서 누가 내게 말을 건다는 일 따위 말이야.

그때 휘리릭, 소리를 내며 바람이 내 머리카락 속으로 파고드는 거야. 그리고는 이리저리 마구 돌아다녔어.

나는 너무나 황당해서 벌떡 일어났어. 바로 앞에 있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또 한 번 기절할 뻔했지. 아, 글쎄 내 머리가 하늘을 향해 올라가서 연못에 난 수초처럼 하늘하늘 거리잖아.

“캬악!”

저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어.

너희들도 생각해 봐. 여태껏 살면서 바람이 이런 장난치는 거 봤어? 못 봤지? 봤다고 하면 말할 것도 없이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을 거야.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털썩 주저앉았어. 이제는 내가 나를 못 믿겠는 거야. 우리 엄마말대로 세상에 둘도 없이 황당하고 엉뚱한 짓만 골라하는 말썽꾸러기라는 걸 인정해야 했어.

머리를 헤집어서 나를 놀라게 한 그 바람이 어깨를 타고 바닥으로 스르르 내려왔어.

“놀랐니?”

“응.”

나도 모르게 넙죽 대답부터 했어. 그러다 또 믿을 수가 없어서 고개를 마구 흔들었지.

“하하, 네가 불러놓고 왜 그래?”

“내가? 언제?”

“너, 바람을 타고 여행을 하고 싶어 했잖아?”

“그거야 그냥 상상으로…….”

“내가 막 네 창가를 지나가는데 네가 나에게 말을 걸었잖아.”

“내가?”

“‘내 친구 바람아.’ 하고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나. 그래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바람이 내 볼을 마구 흔드는 거야.

너희들도 못 믿겠다는 표정이군. 하기야 나도 늘 겪으면서도 못 믿을 때가 많으니까. 너희들 탓을 할 수는 없지 뭐.

“앞으로 날 꼬마바람이라고 불러줘.”

“꼬마바람?”

“응.”

“그런 바람도 있어?”

꼬마바람은 한숨을 크게 쉬었어. 꼬마바람 한숨이 얼마나 센지 이불 가운데가 푹 들어갔을 정도야.

“우리 바람들은 뭉쳐서 다녀. 그런데 난 궁금한 게 너무 많아 이곳저곳 기웃대기를 좋아했어. 그러다가 무리를 놓치고 만 거야.”

”그랬었구나.”

“혼자 된 나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 네 창가를 지나는데 네가 ‘바람아.’하고 부르더라고. 그때부터 네가 창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지만 열지 않기에 두드렸어.”

“그러면 넌 외톨이네?”

“그런 셈이지. 휴~”

한숨을 쉬는 꼬마바람을 보니까 조금 전에 놀라서 부풀어 오른 가슴이 내려가고 꼬마바람이 가엾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사실 나도 혼자서 한숨을 쉴 때가 종종 있어. 나는 가족을 위해, 친구들을 위해 뭔가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끝에 가서는 혼나거나 원망을 듣거든. 그럴 때 가슴이 답답하니까 한숨을 쉬고 나면 좀 속이 후련해지기는 해.

꼬마바람의 말을 듣고 나니 우리 둘이 갑자기 한편처럼 느껴졌어.

우리 엄마는 아마 내가 꼬마바람처럼 우리 가족 무리에서 떨어져나가면 속이 시원하다고 할 걸. 우리 집은 나만 없으면 속 썩을 일이 없을 테니까.

 

그날부터 꼬마바람은 내가 혼자 있을 때를 어떻게 알고 귀신같이 찾아와 문을 두드렸어.

꼬마바람과 밤새 이야기도 하고, 게임도 같이 하고, 아무도 없는 놀이공원에 가서 놀고, 한강 변을 한 바퀴 달리기도 했지. 꼬마바람과 함께 있으면 아무리 달려도 힘도 안 드는 거야.

낮에 친구들하고 노는 게 점점 시시해졌어. 그렇게 꼬마바람과 즐겁게 노는 동안 말썽꾸러기에다 사차원 아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만 거야.

며칠 전에는 글쎄……. 아,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혀. 그러니 엄마는 얼마나 기가 막혔을지 이해가 가. 그럼, 그 황당한 이야기를 들어볼래?

그날 저녁에 밥 먹다가 깜빡 졸았나 봐. 밥숟가락을 입에다 넣는다는 게 셔츠 가슴에 달린 주머니에 넣다가 엄마에게 들켰어.

“권영재!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밥을 떠서 입에다 넣었어.

“셔츠 주머니에 밥은 왜 넣니?”

“셔츠 주머니?”

나는 얼른 셔츠 주머니를 내려다봤어.

“어? 밥이 언제 여기에 들어왔지. 그게……. 그러니까, 아, 맞다. 꼬마바람 주려고.”

“꼬마바람?”

엉겁결에 한 말 때문에 그날 나는 어쩔 수 없이 꼬마바람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가 엄마의 잔소리 따발총에 엄청 많이 두들겨 맞았어.

“권영재! 내가 뭐랬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몸도 정신도 건강해진다고 했어, 안 했어? 밤마다 말도 안 되는 상상하느라 잠을 설치니 그 모양이지. 네 형은 지금까지 속 한번 썩히는 일이 없었는데 너는 뭐가 되려고 그러니? 이러다 엄마가 너 때문에 명대로 살기는 글렀어. 아이고, 지겨워.”

나는 엄마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귀지를 파는척하고 손가락으로 귀를 막았어. 그래도 여전히 따따따따 따발총이 엄마 입에서 쏟아져 나왔어.

“여보! 그만 좀 하지.”

아빠가 말리지 않았으면 난 그날 학교에도 못 갔을 거야.

엄마는 아빠가 내편을 들어주는 게 싫었나 봐. 밥 먹다말고 먹던 음식을 버리고 설거지를 하는 거야.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쨍그랑 쨍그랑 시끄러웠어.

“저놈의 성질머리는…….”

아빠가 구시랑 댔어. 그때 엄마가 휙 돌아서며 나를 노려보고 소리를 지르는 거야.

“영재! 너, 또 장난칠래?”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양 손을 펼쳐보였지. 난 아무 짓도 안했거든. 그냥 밥만 먹고 있었으니까.

엄마도 그런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다시 설거지를 하더라고.

잠시 후에 내 젓가락이 계란말이를 집으러 가는 순간에 엄마 치맛자락이 펄럭이는 거야. 엄마가 또다시 나를 휙 돌아보았지. 나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어.

엄마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뒤를 돌아보고 치마를 만져보고는 혼잣말을 했어.

“이상하네. 분명히 누군가 내 치마를 잡아당겼는데…….”

나는 엄마 치맛자락이 다시 펄럭일 때를 놓치지 않고 고개를 흔들며 눈으로 꼬마바람에게 경고를 했어.

‘하지 마. 너, 정말 그럴래? 나 혼자 있을 때만 나타나라고 했어? 안 했어?’

하하, 그렇게 말하고 보니까 우습더라고. 글쎄 나도 어느새 엄마 말투를 따라하고 있잖아.

그날 밤에 꼬마바람에게 다른 사람하고 있을 때는 절대로 나타나지 말라고 경고했어.

“너, 약속 지키지 않으면 친구사이 땡이다!”

“아, 알았어. 엄마 일은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꼬마바람은 건성으로 나에게 사과를 하고는 내 일기장을 후르륵 넘기잖아. 나는 눈을 흘기며 일기장을 얼른 덥고 꼬마바람이 건드리지 못하게 필통을 올려놨어. 꼬마바람은 그래도 바람을 일으켜 필통까지 들썩이게 만들더라고. 하하. 그 녀석도 나만큼이나 고집불통에 장난꾸러기인가 봐. 아무튼 난 꼬마바람의 고집이 맘에 들었어. 나를 좀 닮았거든.

그때 난 알았어. 꼬마바람이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을 줄 병사라는 걸. 손자병법에도 이런 말이 있거든.

‘싸우는 것은 병사들이니 잘 대우해주라. 그들이 승리를 가져다준다.’

왠지 나를 닮은 꼬마바람을 부대장으로 임명해야겠어. 내 생각이 괜찮은 것 같지?

음, 표정들이 왜 그래? 하기는 아직 꼬마바람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너희들도 나한테 잘했다고 할 거야.

 

 

 

모공편(謨攻篇)

 

3.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이길 수 있다

 

엄마가 씩씩대며 내 방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어. 나는 설핏 든 잠을 얼른 쫓아냈지.

엄마와 나의 전쟁이 곧 터질 거야. 누가 이길지는 모르지만 전쟁을 먼저 시작한 건 나니까 할 말은 없어.

“내가 못살아. 너 때문에 엄마가 10년은 더 늙겠어.”

엄마는 입에 총알을 물고 침대에 누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어. 곧 엄마의 잔소리 총알이 나를 쏘아댈 테지.

엄마 입에 아무리 총알을 잔뜩 넣고 쳐들어와도 겁나지 않아. 왜냐고? 엄마가 먼저 공격하도록 작전을 짠 건 나니까.

‘키키키. 엄마는 나보다 한 수 아래라니까.’

나는 잠든 척하고 속으로 킥킥거렸어.

전쟁에서 이기려면 작전이 중요해. 엄마는 항상 내 작전에 속으면서도 화가 나면 무조건 잔소리 총알부터 쏟아낸다니까.

내가 원래부터 엄마를 이긴 건 아니야. 엄마를 이기는 방법은 할아버지께 배웠어.

할아버지는 손자병법을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라는 말을 제일 자주 하거든.

할아버지는 모든 일에 손자병법을 빗대어 말하기를 좋아했어. 얼마나 심하게 했는지 할아버지 친구들이 할아버지를 보고 ‘손자 동생’이라고 부를 정도라니까, 글쎄.

할아버지는 친구들과 장기를 두면 항상 이겼어. 이기고 나서 공연히 상대방에게 한마디 하다가 욕을 엄청 얻어먹지만.

“이 친구야. 머리는 쓰라고 있는 거야. 자네는 달고만 다니니까 항상 지지.”

“어이구, 저 잘난 척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 저 영감하고 장기를 두지 말아야지. 고질병이여, 죽어야만 고치는 병이여. 쯧쯧.”

할아버지는 장기와 바둑도 네모판 위의 전쟁터이기 때문에 작전을 잘 짜는 사람이 이긴다고 했어.

 

“너! 사고치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엄마는 아이스크림이나 콜라, 라면 같은 걸 절대 못 먹게 해. 그런 걸 먹으면 키가 더 안 큰대나. 평소에 다정다감하다가도 갑자기 무시무시한 마녀 엄마로 변한다니까. 그런데 나는 그럴수록 더 먹고 싶은 거야. 왜 있잖아.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거.

그런데 오늘은 아이스크림이 너무너무 먹고 싶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거야. 엄마는 내가 엄마 몰래 엄마가 말하는 불량식품을 사 먹을까봐 용돈도 주지 않거든.

오늘따라 땀을 흘리고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왔더니 아이스크림이 더 먹고 싶은 거야.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이스크림을 먹을까 한참동안 궁리를 해봤지.

드디어 좋은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얼굴을 쏙 내밀었어. 너희들도 그게 뭔지 궁금하지?

노력하면 안되는 게 없다는 할아버지 말이 맞았어. 역시 나는 명장군의 후손이라니까.

“오! 반갑다. 좋은 생각아. 어디 있다가 이제 온 거야? 역시 영재 너는 천재야.”

나는 나에게 최고의 칭찬을 해줬어. 할아버지가 가끔 써먹던 속담도 생각나서 외쳤지.

“이 없으면 잇몸으로!”

나는 다다닥 달려가 냉장고에서 우유와 오렌지주스를 꺼내 종이컵에 따랐어. 그리고 설탕을 두 스푼이나 넣었지. 엄마가 예뻐지기 위해 혼자 먹는 땅콩과 호두를 표 안 나게 조금 훔쳐 잘게 부숴서 종이컵에 넣고 저었어. 그리고 나무젓가락 한 개를 꽂았어. 그런데 문제가 있는 거야. 자꾸 나무젓가락이 옆으로 비스듬히 쓰러지잖아.

“씨, 이게 가운데 똑바로 꽂혀야 진짜 아이스크림 같을 텐데.”

이왕 만든 아이스크림인데 진짜 아이스크림이랑 비슷해야지. 맛도 맛이지만 모양도 중요하거든.

나는 생각이 깊은 사람처럼 식탁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곰곰이 생각했어. 사람이 사는데 폼도 아주 중요하다는 건 우리 삼촌이 항상 하는 말이거든.

“권영재! 좀 더 생각해 봐. 머리는 달고 다니라고 있는 게 아니고 쓰라고 있는 거야.”

나는 내 머리를 콩콩 쥐어박으며 다그쳤어. 생각해낼 때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이건 나와 내가 하는 싸움이고, 싸움에서 이기려면 끝까지 버티는 게 아주 중요하거든.

시간이 째깍째깍 흘러갔어. 나도 내 머리를 계속 콩콩 쥐어박았지. 계속 맞는 게 싫으면 얼른 생각해내야 해.

한 시간쯤 지났을 때 드디어 좋은 생각이 튀어나왔어.

“앗, 싸!”

나는 다시 냉장고 야채실에서 무를 하나 꺼내 내 손가락 한 마디만큼의 두께로 썰었어. 그리고 종이컵 밑바닥을 올리고 젓가락으로 밑바닥을 따라 그렸지.

“크크, 전쟁에서 총알로 쓸 건 너무 많단 말이야.”

무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동그라미 안쪽에 가위를 대고 오렸어. 뭐 삐뚤빼뚤한 게 모양은 맘에 안 들었지만 총알로 쓰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겠더라고.

“크크. 영재 너는 역시 대단해.”

종이컵에 동그랗게 썬 무를 넣고 가운데에 나무젓가락을 꽂고 오렌지주스와 우유, 잘게 부순 호두와 땅콩을 넣고 저은 다음 종이컵에 부었어.

“자, 너는 지금부터 다시 태어나는 거야.”

종이컵을 들고 냉동실 문을 여는데 종이컵 속 우유와 주스가 들어가기 싫은지 자꾸 찰랑댔어.

“겁먹지 마. 이따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 네 모습을 보면 이 형님께 고맙다고 절을 하게 될걸. 히히.”

나는 냉동실 문을 닫고 돌아서며 할아버지처럼 뒷짐을 지고 험험 거리며 내 방으로 갔어.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은 거야.

나는 아이스크림이 만들어질 때까지 침대에서 뒹굴 거리며 손자병법 만화책을 읽었어.

그리고…….

 

 

엄마의 콧김물총과 잔소리 총알이 내 얼굴로 마구 뿜어져 나왔어.

“으, 음.”

나는 잠꼬대하는 척하고 엄마의 콧김물총을 피해 옆으로 돌아누웠어.

“영재, 너! 안자는 거 다 알아. 얼른 일어나지 못해!”

곧바로 일어나지 않으면 이번에는 엄마 손바닥 폭탄이 터질 차례야. 나는 얼른 엎어지면서 엉덩이를 쑥 내밀었어.

‘엄마, 오늘은 엉덩이에다…….’

마음속으로 빌고 있는데 엄마 손바닥 폭탄은 내 허벅지에 팍! 팍! 팍! 세대가 터지고 말았어.

“윽!”

나는 허벅지를 잡고 침대에서 나뒹굴었어. 얼마나 아픈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거든. 엉덩이에 터지면 그래도 참을만한데……. 엄마는 절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다니까.

“영재, 너! 이게 뭐야?”

더 버티다가는 내 허벅지가 엄마 손바닥 대포에 박살이 날 것 같아 일어나서 엉거주춤 앉았어. 엄마 마음을 다 아니까 엄마를 똑바로 볼 수가 있어야지.

“너, 이게 뭐야?”

엄마가 내가 만든 종이컵 아이스크림을 내 코앞에 대고 찌르는 시늉을 했어.

살짝 봤더니 종이컵에서 빼낸 아이스크림이 그럴싸해보였어. 아이스크림 끝에 붙은 무에 얼음보석이 박혀 반짝반짝 빛이 났어. 꼭 겨울왕국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엘사 공주 같더라고.

눈으로만 봤는데 달달하고 시원한 맛이 입으로 막 들어오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어.

“누가 잔머리의 대가 아니랄까봐. 그 좋은 머리로 공부를 좀 해 봐. 그러면 너희 학교에서 일등은 맡아 놓고 할 거다.”

형이 나를 부를 때 키가 작다고 ‘땅콩’, 잔머리를 잘 굴린다고 ‘잔대갈’이라고 불러. 그러니까 엄마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야.

엄마가 잔소리총알을 쏘는 동안 얼음왕국에서 막 나온 내 아이스크림이 녹기 시작했어. 무에 박혀있던 보석도 빛을 잃어가고 있었지.

‘아, 아깝다.’

엄마도 내가 만든 아이스크림이 신기한지 입으로는 잔소리 따발총을 쏘면서도 눈으로는 아이스크림을 신기하게 보고 있었어.

이럴 때 엄마 마음을 약하게 만들면 먹을 수 있단 말이지.

할아버지가 말하는 손자병법에서 배운 첫 번 째 전략을 써 먹을 때라고 생각했어.

“엄마, 그거 녹기 전에 딱 한 입만…….”

나는 무척이나 불쌍해보이도록 눈썹을 아래로 내리고 간절하게 엄마를 바라보며 말했어.

“안 돼!”

엄마는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쌩하고 바람소리를 내며 나가버렸어.

엄마가 나가자마자 꼬마바람이 겨울바람으로 변해 내 방을 쌩쌩 돌아다녔어. 나는 기침을 심하게 해댔어. 물론 진짜로 기침을 한 건 아니야. 엄마가 후다닥 다시 들어왔지.

“영재야, 괜찮아?”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계속 기침을 했어. 엄마는 내 등을 감싸 안아주었어. 그리고 등을 가만가만 만져주었지. 올라왔던 기침이 서서히 멈췄어.

“어휴, 언제 엄마 속을 안 썩일래?”

바로 이때야. 전투에서 이기려면 먼저 적의 허점을 파고들어야한다고 했거든. 엄마가 마음이 약해질 때를 놓치지 말고 내 생각을 밀어 넣어야 해.

“엄마!”

“응, 그래. 말해 봐.”

“가슴이 답답할 때면 기침이 나는 것 같아.”

“그래? 그럼 가슴을 편안하게 해야겠구나.”

엄마가 내 가슴을 쓸어주었어.

“나도 친구들처럼 먹고 싶은 걸 맘대로 먹으면 가슴이 시원해 질 것 같아.”

나는 기운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더듬더듬 말을 했어. 엄마가 한 숨을 쉬었어.

“그래, 그러면 엄마도 좋겠어. 그런데 그런 걸로 배를 채워서는 키가 크지 않아. 엄마가 만들어주는 영양 많은 음식을 먹어야 해.”

사실 엄마 말은 옳지 않아. 영양을 일일이 따져서 먹는 것보다 자기가 먹고 싶은 걸 행복한 마음으로 먹는 게 더 좋은 거야. 너희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내가 불쌍해 보이는 표정으로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자 엄마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어.

“우리 아들, 아이스크림이 그렇게 먹고 싶었어?”

“응!”

엄마가 내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며 물었어. 나는 반가워서 힘찬 목소리로 날름 대답을 하며 엄마 가슴을 밀치고 일어났어. 엄마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눈을 흘겼어.

“아이스크림 만드는 건 누구한테 배웠니? 또 삼촌이 바람 넣은 거 아냐?”

“아니야. 내가 곰곰이 생각해서 만드는 방법을 알아낸 거야.”

엄마는 피식 웃으며 내 머리에 엄마 머리를 맞대고 비볐어.

“절대, 절대 안 되는데 우리 아들 창의력에 엄마가 감동을 했어. 네가 만든 아이스크림은 너무 달고, 차갑고, 딱딱해서 안 돼. 이가 상할 수 있고 건강에도 안 좋아. 대신 엄마가 조금 덜 차고 말랑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줄게.”

나는 벌떡 일어나서 엄마 목을 꼭 껴안았어.

“정말? 정말이지?”

“그럼. 대신 일주일에 딱 한 개만 만들어 줄 거야.”

“알았어. 나 벌써부터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 같아.”

난 다 알아. 엄마가 만들어 준 아이스크림은 몸에 나쁜 설탕을 넣지 않아서 달지 않기 때문에 맛이 없을 거야. 그렇지만 어쩌겠어. 엄마를 이겨야 하잖아? 그래서 무지무지 좋은 척하며 팔딱 팔딱 뛰었어.

엄마도 무지 행복한 표정으로 나를 꼭 안아줬어.

너희들도 눈치 챘지? 엄마가 뭘 원하는지 알면 얼른 엄마가 원하는 걸 해 줘야해. 그리고 그 틈새에 내가 원하는 걸 살짝 끼워 넣는 거야.

난 오늘 엄마와의 싸움에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이길 수 있다.’를 써먹어서 기분 좋게 이겼어.

엄마도 똑똑한 아들 덕분에 행복했을 거야.

 

 

 

군쟁편(軍爭篇)

 

4. 불리한 것을 유리하게 만든다

 

운동화 밑창이 들썩댔어. 나는 발바닥에 힘을 잔뜩 주고 버텼지.

‘안 돼. 제발…….’

발바닥이 근질거리고 땀이 나서 저절로 얼굴이 찡그려졌어.

‘에이 씨, 꼬마바람, 너. 힘 좀 세다고 이러기야?’

이를 악물고 발바닥에 힘을 주었더니 방귀가 나오려고 했어. 발에 힘을 주면서 엉덩이에도 힘을 주려고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는 거야. 선생님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렸다가 가까이에서 들리는 같아 귀까지 얼얼했어.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야.

꼬마바람이 느닷없이 내게 나타나서 장난을 거는 바람에 엄마에게 상상과 현실을 구분 못한다고 혼났거든.

‘친구들한테 사차원이라는 놀림은 받고 싶지 않단 말이야. 제발 나 좀 살려줘.’

나는 마음속으로 꼬마바람에게 통사정을 했어.

 

나는 지금까지 바람은 하나 인줄 알았어. 그런데 사람이 하나하나 모여 가족이 되고, 친척이 되고, 삼보 초등학교 3학년 1반이 되는 것처럼 바람도 하나하나가 모여 하늬바람, 높새바람, 비바람, 태풍이 되나 봐. 원래 바람은 이렇게 뭉쳐서 다녀야하는 거 아니니?

그런데 꼬마 바람은 제멋대로 혼자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장난꾸러기 바람이야. 가끔은 신나고 재미있을 때도 많지만 걔네 동네에서는 어른 말을 안 듣는 골치 아픈 아이였을 거야. 그래서 혼자 여기저기 기웃대다가 무리를 잃어버리고 혼자가 되었겠지.

북쪽에서 서쪽으로, 동쪽에서 남쪽으로 부는 바람의 기본 질서 따위하고 자기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큰 소리를 치거든.

어느 때는 하늘로 치솟기도 하고 하늘에서 갑자기 방으로 쳐들어와서 잠자는 나를 깨워 놀자고 떼를 쓰는 일도 종종 있다니까. 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만날 하품을 하는 나를 보고 밤에 잠을 안자서 성장이 늦다고 믿는 게 당연한 걸 거야.

꼬마바람이 하는 행동은 초등학교 3학년인 내가 학교에 간다고 하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다 집으로 돌아오는 거와 같을 거야.

‘너, 나오면 죽어!’

나는 발바닥 밑에서 나오려고 하는 녀석에게 마음속으로 소리를 지르다가 그만 발에 주었던 힘이 풀리고 말았어. 아차, 하고 다시 힘을 주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어.

쀼웅! 쌩!

힘이 풀린 똥구멍에서 방귀가 새어나오는 것과 동시에 꼬마바람이 다리를 타고 올라와 배를 지나 턱을 치고 머리카락까지 하늘로 솟게 만들어버렸어.

나는 얼결에 벌떡 일어났어.

“이게 뭔 소리야?”

방금 내 눈썹까지 추켜올린 바람은 이미 사라져버리고 없는데 선생님이 칠판에 구구단을 적다가 뒤돌아보며 물었어.

나는 ‘무얼요?’ 하고 되묻는 표정을 지었어. 방금 일어난 일을 감쪽같이 숨기려면 어쩔 수 없잖아.

“권영재! 너, 그 꼴이 뭐야?”

선생님과 아이들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지.

나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내 모습을 내려다보았어. 티셔츠가 가슴까지 올라가 있어서 배꼽이 훤히 보이는 거야.

‘아이, 씨.’

눈앞이 깜깜했어. 정신을 차리고 얼른 티셔츠를 내렸어.

친구들 앞에서 이게 무슨 창피냐고. 머리를 마구 긁적거렸어. 그런다고 창피한 게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때 내가 무얼 할 수 있겠어?

나는 바로 앞자리에 앉아있는 보슬이를 힐금거리며 보았어.

‘보슬이가 봤으면 어쩌지. 설마 눈 깜작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니 못 봤겠지.’

나는 불안한 마음을 달랬어.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난 적이 없는 양 슬며시 자리에 앉았어.

친구들은 ‘방금 우리가 꿈을 꾼 거야?’ 하는 표정으로 나와 선생님을 번갈아 보았어.

선생님이 나를 보고 큰 소리로 말했어. 그렇지만 화가 많이 난 것 같지는 않더라고.

“권, 영, 재! 장난감을 학교까지 가지고 와서 친구들을 놀라게 하면 되겠어? 그거 가지고 나와.”

정말 큰 일 났어.

바람을 장난감으로 알고 있는 선생님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해도 혼나지 않으려고 거짓말 한다고 할 게 틀림없어. 우리 엄마도 늘 그랬으니까. 어른들 생각은 비슷하거든.

친구들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야. 나는 뭐 별일이냐는 듯이 헝클어진 머리카락만 손가락으로 빗고 또 빗었어.

“권영재! 빨리 가지고 나오라니까!”

선생님이 드디어 내 자리까지 내려와서 헝클어진 머리통을 쥐어박았어.

“네 머리를 이 꼴로 만든 걸 빨리 내 놓으라고!”

선생님이 내 머리를 앞뒤로 흔들고 귀를 잡아당기며 자꾸 내 놓으라고 윽박지르잖아. 그런데 참 답답한 거야. 뭐가 있어야 내놓지. 바람이라는 건 너희들도 알다시피 손에 잡히는 물건이 아니잖아.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바람이 그랬다고 하면 누가 믿겠냐고?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숨을 참았어. 숨을 쉬다가는 선생님에게 바른대로 말할 것 같았거든.

‘차라리 지금 세상이 멈춰버렸으면 좋겠어.’

내가 어쩔 줄 몰라 쩔쩔매고 있는 사이에 선생님은 진짜 화가 난 사람처럼 얼굴이 붉어졌어.

“그래, 너. 내 말이 말 같지 않다는 거지?”

선생님 숨소리가 둥둥둥 하고 나를 향해 빠르게 달려왔어. 얼른 피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겁이 더럭 났어.

‘아, 어쩌지. 어쩌지.’

나는 머리를 막 굴려서 좋은 생각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그만 포기하고 말았어. 생각을 떠올리기 전에 이미 선생님이 내 턱을 손으로 받치고 '빨리 내놔!' 하는 눈빛으로 다그쳤거든.

나는 ‘정말, 정말, 너무 억울해요.’ 라고 눈물, 콧물을 손등으로 닦는 시늉을 했어. 이딴 일로 눈물을 흘린다는 건 권율 장군의 후손으로써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친구들 앞에서 계속 사차원 세계에서 온 아이처럼 보이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고 말이야.

나를 이 꼴로 만든 꼬마바람은 이미 줄행랑을 쳤고 선생님이 말하는 장난감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으니, 그 어떤 말을 해도 다 거짓말이 되고 말 거야. 그러니 어쩔 수 없잖아?

선생님이 내 헝클어진 머리를 더 헝클어뜨리며 피식 웃었어. 손가락 사이로 살짝 봤더니 엄청 미안한 얼굴인 거야. 히힛.

“짜식, 남자가 그만한 일로 울기는. 담부턴 이런 장난치지 마라.”

선생님이 교단을 향해 멋쩍게 걸어갔어.

방금 전까지 호기심이 가득 찬 친구들의 눈빛도 선생님의 뒷모습을 따라 하나 둘 칠판을 향해 옮겨갔지.

나는 화가 나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중얼댔어.

"꼬마바람 이 자식, 만나기만 해봐라.”

 

꼬마바람이 처음부터 건방진 건 아니었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은 우리 할아버지에게 책임이 있어. 나는 누구보다 할아버지 말을 믿었고 믿은 대로 행동으로 옮긴 것뿐이야. 정말이야. 그게 다라고.

그렇다고 말썽쟁이 꼬마바람을 할아버지가 불러온 것은 아니야. 할아버지는 그런 바람이 있다는 것도 모르거든.

할아버지는 꼬마바람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 그렇다고 교과서나 백과사전에서 본 적도 없지. 지금까지 텔레비전 다큐 프로그램에도 나오지 않았거든.

그런데 어째서 할아버지 탓을 하느냐고?

그러게. 너희들이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누구 잘못인가 따져주면 좋겠어.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할아버지에게 듣는 말이 있었어.

"뭐든 간절히 바라는 마음과 노력이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단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는 건 우리 집에서는 '밥 먹었니?' 하고 묻는 거랑 거의 같아. 가족 중에 노력해서 안 된 사람은 하나도 없거든.

아빠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의 교수님이 됐고, 엄마는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대. 죽기 살기로 악착같이 공부해서 그렇게 된 거래. 형은 우리나라에서 수재들만 간다는 대학교에 다닌다고 엄마 아빠의 자랑거리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럼 나는?

“휴…….”

너희들도 방금 내 한숨 소리를 들었을 거야.

내가 거짓말쟁이에, 현실과 상상을 구분 못하는 덜떨어진 아이가 돼버린 건 순전히 꼬마바람을 만나고부터였어. 물론 그 전에도 말썽쟁이에 뺀질이라는 소리는 듣기는 했지. 특히 형한테 말이야.

꼬마바람을 만나기 전에는 말썽꾸러기라는 소리를 듣기는 했어도 그저 평범한 아이였어. 엄마 아빠 기대에 못 미치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엄마 아빠의 커다란 걱정거리는 아니었다는 얘기야.

그렇다고 꼬마바람만 탓하는 건 아니야. 꼬마바람을 바람의 나라에서 불러낸 건 나니까. 그렇지만 조금은 억울해. 왜냐하면 난 할아버지 말대로 간절히 만나기를 상상했을 뿐이란 말이지.

 

나는 밤마다 꼬마바람과 놀았어. 꿈에서 노는 건지 실제로 노는 건지 아리송하긴 했지만 말이야. 잠자는 시간보다 꼬마바람과 노는 시간이 더 많아 아침에 일어나면 하품부터 했어.

“넌 도대체 젊은 놈이 늙은이처럼 피곤을 몸에 달고 다니니? 너 밤에 잠 안자고 도대체 뭐했어?”

나는 하품을 하며 궁시랑 거렸어.

“젊은 놈이 아니고 어린놈인데…….”

엄마는 계란말이를 만들다말고 뒤를 돌아다보며 물었어.

“뭐? 지금 뭐라고 했어?”

나는 다시 하품을 하며 시큰둥하게 대답했어.

“암 것도 아니에요.”

엄마는 내 아침을 차려주고 아빠 출근을 도와주려고 안방에 들어갔어.

내가 눈을 비비며 식탁에서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엄마가 조그만 소리로 아빠에게 말하는 소리가 내 가슴을 쿵쿵쿵 하고 두드렸어. 꼭 큰북을 치는 것처럼 말이야.

“여보, 저 아이는 큰애하고 달라도 너무 다르죠?”

“사십이 넘어 낳은 아이니 아무래도…….”

“늦둥이라고 다 그런가요? 다른 집 애들은 똘똘하기만 하던데…….”

엄마 한숨 소리가 문틈사이로 흘러나오고 그 뒤를 따라 나온 믿을 수 없는 말에 가슴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만 같았어.

“어제는 받아쓰기 시험을 봤는데 답은 안 쓰고 점만 몇 개 찍어놨대요, 글쎄. 선생님이 전화로 알려주면서 걱정을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하지 않을까요?”

“여보! 멀쩡하게 잘 크고 있는 아이를 보고 성장장애라고 난리를 치더니 이번에는 정신장애라는 거요? 아직 어려서 그럴 거요. 아버님 말씀처럼 앞으로 노력하면 잘 되겠지.”

“당신은 만날 그 소리. 잊었어요? 큰애는 저 나이 때 천재소리 들었잖아요? 그런 건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고요.”

엄마 목소리가 약간 떨리면서 높아졌어.

“쉿! 애가 다 듣겠소.”

“휴우~”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엄마 한숨 소리를 듣고 투덜거렸어.

“내가 늦둥이로 태어나고 싶었나, 뭐. 엄마가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멋대로 낳았으면서…….”

사실 그날 낱말 받아쓰기 시험시간에 연필을 들고 답을 적다가 그만 깜박, 몇 초정도 졸은 것 같은데 수업 끝나는 알림 때문에 깼거든. 그러니까 점 몇 개는 졸면서 들고 있던 연필자국이라는 거지.

나는 터벅터벅 걸어서 학교에 가는 동안 손자병법에 나오는 할아버지 가 한 말을 생각했어.

‘불리한 것을 유리하게 만들면 이길 수 있다.’

할아버지 말이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나한테 딱 맞는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한 번 해볼 만은 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키도 작고 공부도 못하지만 까짓것 그게 뭐 어때서? 훌륭한 사람들이 다 키가 큰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니까 하면서 나의 단점을 싹 무시하기로 했어. 그리고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을 생각했지.

“내가 바라는 게……?”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특별히 생각나는 게 없었어. 억지로 갖다 붙인다면?

“잘난척하는 형 콧대를 꺾어준다면 재미있겠는 걸. 음, 그리고 보슬이가 세영이보다 나를 더 좋아해줬으면 좋겠고. 히히.”

보슬이 생각을 하자 공연히 온 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아서 궁둥이를 오리처럼 옆으로 흔들면서 걸었어.

연신 웃음이 ‘히히히.’하고 잇 사이로 새어나오는 거야.

나는 손자병법 군쟁편(軍爭篇)에 나오는 말을 나한테 맞게 살짝 바꿔서 큰 소리로 반복해서 낭독했어. 보슬이를 생각하면서 말이야.

“불리한 것을 유리하게 되도록 하면 바라는 대로 된다.”

“불리한 것을 유리하게 되도록 하면 바라는 대로 된다.”

“불리한 것을 유리하게 되도록 하면 바라는 대로 된다.”

 

 

 

허실편(虛實篇)

 

5. 주도권(主導權)을 내 손 안에 넣으면 이길 수 있다

 

“자, 오늘은 식물 키우기 수업인 거 잊지 않았지?”

“네!”

수업종료 알림이 울리고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아이들은 서로 가지고 온 식물의 씨앗을 책상에 올려놓고 이야기하느라 시끌시끌했어.

“어, 이게 뭐야? 씨가 좀 크네?”

“해바라기 씨앗이야.”

“해바라기는 키가 엄청 큰데 교실에서 키우려고?”

“싹이 나면 화단에 옮겨 심어야지.”

“아, 그러면 되겠구나.”

교실이 금방이라도 새싹이 나올 것처럼 들뜬 분위기인거야. 그러면 뭘 해. 나한테 오늘은 최악인 날인걸. 나는 꼬마바람에게 투덜댔어.

“내 인생을 훼방 놓는 놈, 넌 죽었어!”

그날도 집에 가자마자 꼬마바람이 나를 꾀는 바람에 밤새 놀다가 잠을 잘 못 잤거든. 그러니 또 늦잠을 잤지. 그 바람에 준비물 가지고 오는 걸 깜빡 잊었지 뭐야.

씨앗과 화분을 가져오기로 지난주에 우리 분단 아이들에게 이미 약속을 했거든.

우리 반은 스무 명이고 네 분단으로 나누어 앉았어. 분단의 대표인 분단장은 한 달씩 돌아가면서 맡는 거야.

이번 달은 내가 우리 분단의 분단장이야. 일주일만 버티면 다른 친구한테 분단장 자리를 물려줄 수 있었어. 그런데 그만 사고가 터지고 만 거야.

‘아,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니까.’

나는 이마를 책상에 박고 양쪽 머리를 다다닥 때리며 자신을 마구 혼냈어. 이런 말은 우리 할아버지가 자주 쓰는 말인데 급할 때는 꼭 할아버지 말투가 튀어나오네.

‘아, 바보. 넌 까마귀 고기만 먹니? 왜 만날 까먹는 거야? 영재 너, 진짜 한심하다. 한심해.’

준비물 좀 안 가져왔다고 호들갑을 떠는 건 내 스타일은 아니야. 하지만 지난 번 분단 회의 때 보슬이 앞에서 폼 좀 내보고 싶었거든. 그래서 큰 소리를 탕탕 쳤던 게 문제였어.

휴, 내 삶은 하루라도 문제가 없는 날이 없다니까.

“흠흠, 너희들, 씨앗이랑 화분 가져오기 귀찮지? 우리 집에 많으니까 내가 대표로 가져올 게. 대신 너희들이 잘 키워줘. 근데 누가 키우는 거 맡을래?”

보슬이가 활짝 웃으며 손을 들었어. 아이들이 좋아하며 박수를 쳤어.

“고마워. 보슬아. 애들아 보슬이가 잘할 것 같지?”

정말 중요한 건 보슬이가 내 말을 듣고 활짝 웃어주었다는 거야. 그런데 이게 뭐야. 완전 망쳤잖아. 내 스스로 내가 한심하다는 걸 보슬이에게 보여주는 꼴이 된 거야.

 

가뜩이나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세영이가 ‘딱, 걸렸어.’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한 쪽 다리를 6학년 일진 형들처럼 까딱거리며 이죽거렸어.

“권영재 분단장! 우리 분단 식물은 뭘 준비했냐?”

내가 고개를 들고 울상을 짓자 세영이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오른쪽 입 꼬리를 위로 올리고 쯧쯧 거렸어. 보슬이를 흘금거리면서 말이야.

나는 세영이가 왜 그러는 지 다 알아. 보슬이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는 걸.

‘아, 저 얄미운 자식을 어떻게 골탕을 먹여주지?’

나에게 깐족대던 녀석이 보슬이 곁에 가서 소곤거리는 거야. 보나마다 ‘어리바리, 사차원, 꼴통’하며 내 흉을 보고 있을 거야.

나는 순간 가슴에서 불꽃이 팍! 하고 피어서 머리로 올라갔어. 저 얄미운 녀석을 한 방에 기를 죽여야 되는데…….

할아버지 말씀이 간절히 원하면…….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생각하지도 않은 말이 툭 튀어나왔어. 진짜로 난 그럴 생각이 아니었거든. 그 말은 결코 내 머리가 시킨 게 아니야. 그냥 저 혼자 툭 튀어나온 거라고.

“저 녀석 짝짝이 궁둥이를 보슬이가 봤으면 좋겠다. 엄청 창피하게.”

세영이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옆집에 살았거든. 다섯 살 때까지 엄마들이랑 대중목욕탕에도 같이 다녔어. 그때 우리 엄마가 세영이 엉덩이를 토닥거리면서 한 말이 지금 막 생각난 거야.

“아유, 세영이 엉덩이는 짝짝이래도 통통한 게 귀엽네. 호호호.”

내가 막 그런 생각을 할 때 누군가 뒷문을 열고 후다닥 뛰어 들어오는 거야. 그리고 그 뒤를 다다닥거리면서 여러 명이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어.

나는 고개를 휙 돌리고 무슨 일인가 하고 바라보았어. 철민이가 여자아이 몇 명에게 쫓기고 있었어.

‘저녀석 또 한 건 했나보네.’

나는 속으로 낄낄대다 아차 싶었어. 남 걱정할 때가 아니잖아.

나는 다시 책상에 이마를 박고 끙끙댔어. 무슨 좋은 수를 생각해 내려고 말이야.

읽기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씨앗과 화분을 집에 가서 가져올 수는 없어. 집에 갔다 오려면 30분이나 걸리거든.

나는 이마를 책상에 콩콩 찍으며 좋은 생각을 떠올리려고 안간 힘을 썼어. 그러나 결국 포기하고 말았어.

‘에이, 뭐 어떻게 되겠지.’

내가 고개를 드는 순간 민지가 두 팔을 뻗어 철민이를 잡으려고 했어. 철민이는 안 잡히려고 보슬이 책상 옆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속닥거리는 세영이를 밀쳤지. 그런데 철민이가 앞으로 고꾸라질 찰나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얼떨결에 세영이 바지를 붙잡은 거야.

그와 동시에.

“꺄~악!”

짐승이 내지르는 소리가 났어. 갑자기 원시림으로 변해버린 것 같은 교실 분위기가 술렁거렸지.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뭔가 불안하면서도 기대감이 몽글몽글 샘솟았어. 난 호기심이 생기면 야릇한 느낌이 솟는다니까.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세영이를 향해 있어서 나도 아이들을 따라…….

“아!”

세영이의 바지가 엉덩이가 보일 듯 말듯 한데까지 내려간 거야. 나는 눈을 감았다 떠봤어. 꿈속에서 일어난 일인 줄 알았거든. 철민이는 세영이 바지를 부여잡은 채 넘어지려고 하고 있고, 세영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바지춤을 끌어올리고 서 있더라고.

그런데 보슬이가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잖아. 이게 좋은 징조야? 나쁜 징조야?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거야.

그때 내 옆구리를 치고 쌩하고 바람이 지나갔지.

나는 두 눈을 꽉 감고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말기를 기도했어.

“꺄~악!”

그러나 그 순간, 보슬이가 개코원숭이나 내지를만한 소리를 지르는 거야. 그런 소리는 보슬이처럼 예쁜 아이가 내질러선 안 되잖아?

‘아, 이러지마. 제발!’

내가 꼬마바람에게 마음속으로 통 사정을 하고나서 눈을 떴어. 그런데 내 눈에 세영이 엉덩이가 보이는 거야.

세상에! 이런 일이!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겁 없이 저지르겠어. 더구나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꼬마바람이 아니고는.

꼬마바람이 아주 빠른 속도로 온힘을 다해 철민이 팔을 친 거야. 그 힘에 못 이겨 세영이 바지를 잡고 늘어졌던 몸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고, 세영이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손을 논거지.

쯧쯧, 어떻게 해.

세영이 엉덩이가 짝짝인지 아닌지는 미처 못 봤어. 내 신경은 온통 보슬이한테 가 있었거든.

“그만해!”

나는 꼬마바람에게 소리를 지르는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세영이 허리를 안았어. 아이들이, 아니 보슬이가 더 이상 이 모습을 보지 못하게 말이야.

철민이도 일어나서 자기 바지를 탈탈 털고 자리로 돌아갔지. 엄청 미안했던지 머리를 긁적이더라고. 철민이를 쫓던 여자 아이들도 하나 둘 흩어져서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휴.”

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막 끝났구나 하고 숨을 돌렸어.

그렇지만 세영이가 바지를 올리며 엉엉 울면서 교실 밖으로 뛰어나갔고 보슬이도 책상에 엎드려 훌쩍거렸어.

나는 자꾸만 신경이 쓰였어. 보슬이가 보지 말 것을 보아서 부끄러워서 우는 건지, 친구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고 뛰어나간 세영이가 불쌍해서 우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달래줄 수도 없잖아.

나는 씩씩대며 벼르고 별렀어.

‘너, 꼬마바람. 이따 집에 가서 보자. 너랑 나랑은 이제 끝이야. 에이 씨.’

나의 씨앗과 화분 준비에 대한 고민은 저절로 풀린 거나 마찬가지야. 다음 시간에 있을 씨앗 심기 수업은 어차피 꽝! 이 되어버렸거든.

세영이는 울면서 교실에서 뛰쳐나갔고, 보슬이는 양호실에 가서 누워있고, 맨 뒷자리에 앉은 철민이는 이 사건에 주동자로 몰려 지금 교실 뒤에서 두 손을 들고 벌을 서고 있거든.

분단장인 나는 선생님의 특별한 부탁을 받고 교실에서 뛰쳐나간 세영이를 찾으러 나갔지만 세영이는 어디에도 없었어.

우리 분단 실습점수는 빵점을 받을 게 틀림없어. 씨앗도 화분도 준비하지 않은데다 분단 원의 거의가 사고를 쳤으니 할 말은 없지 뭐.

 

매일 세영이랑 같이 가던 학원에 나 혼자 터덜터덜 걸어서 갔어. 고개를 푹 숙이고. 발로 인도를 탁탁 쳐가면서 가는 내내 꼬마바람 욕을 해댔지.

“멍청이, 사고뭉치, 나쁜 놈. 권율 장군의 후예인 권영재의 인생을 망친 놈, 절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놈.”

내 티셔츠가 펄럭였어.

“야! 저리 가.”

꼬마바람이 언제 나타났는지 셔츠 안에서 목으로 얼굴을 쏙 내밀고 빈정대잖아.

“왜 툴툴대? 네 소원을 들어 줬는데.”

“내가 언제 그딴 소원 들어 달랬어?”

“피, 세영이 짝짝이 궁둥이를 보슬이가 봤으면 좋겠다고 했잖아. 안 그랬어?”

“이, 씨. 그거야 화가 나서 그냥 한 말이잖아?”

꼬마바람이 이번에는 등으로 가서 내 티셔츠를 들썩거리게 했어. 나는 손등으로 탁탁 치면서 하지 말라고 했지.

“그래서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난 네 말만 믿고 한 거니까 내 잘못은 없다. 뭐.”

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꼬마바람하고 싸워봤자 나만 손해야.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줘야 한다며? 난 약속을 지켰을 뿐이니까 시비 걸지 마라.”

맞아. 나는 꼬마바람에게 할 말은 없어.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고 꼬마바람은 그 약속을 지켰을 뿐이야.

내가 꼬마바람 친구가 돼서 같이 놀아주면 꼬마바람은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주기로 했거든. 문제는 내 소원이 너무 유치했다는 거지.

지금 생각하니 권율 장군의 후예로써 부끄러운 짓을 했던 거야. 아, 그러니 어쩌겠어.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잖아.

이번 일로 보슬이가 세영이를 멀리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하는 게 좀 치사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보슬이가 세영이보다 나랑 더 친했으면 좋겠어. 뭐, 너희들이 욕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내 마음이 그러니까.

우리 할아버지가 손자병법 허실편(虛實篇)에 보면 주도권을 자기 손 안에 넣어야 이길 수 있댔어. 하하하. 그러면 뭘 해. 할아버지는 만날 할머니한테 지거든.

나는 다른 건 몰라도 보슬이는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어. 그래서 앞으로도 주도권을 잡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할 거야.

 

 

 

영재편(英才篇)

 

6. 아무리 뛰어난 전략이라도 진실한 마음을 이길 수 없다

 

그날 사건이후로 촐랑대고 껄렁대던 세영이가 아주 얌전해졌어. 슬금슬금 친구들 눈치도 보고 그러네. 글쎄, 언제까지 그럴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세영이가 그렇게 되게 만든 그 사건이 나 때문에 생겼다는 건 아무도 모를 거야. 그런데도 나는 세영이나 보슬이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는 거야.

그 바람에 꼬마바람과 나 사이가 서먹해졌지. 꼬마바람을 만나 재미나게 노는 것도 좋지만 사실 난 보슬이랑 친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거든. 보슬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엄마처럼 달달달 볶거나 따따따 따발총을 쏘지 않아도 보슬이가 하는 말이면 뭐든 다 들어주고 싶어져. 가끔, 아주 가끔 나를 보는 눈빛으로도 나는 보슬이에게 복종하고 싶거든. 왜 그런지는 나도 아직 몰라. 내 마음이 그냥 그렇다는 거야.

나는 세영이 사건이 있던 그날 저녁에 꼬마바람에게 결별 선언을 했어.

“우린 잘 안 맞는 친구인가 봐.”

“무슨 말이야?”
“너를 만나고부터 되는 일이 하나도 없잖아. 엄마는 내가 밤마다 잠은 안자고 엉뚱한 상상만해서 집중력이 떨어진대.”

“그런 핑계는 대지마. 치사하게.”

꼬마바람은 별로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내가 보고 있던 읽기 책을 연신 펄럭이며 툴툴댔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해버렸어.

“그리고 난 권율장군 후손이야. 훌륭한 장군의 후손답게 살려면 앞으로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해.”

“해! 누가 말려. 하면 되잖아?”

“네가 만날 옆에 와서 치근덕대는데 어떻게 해?”

“치근덕?”

“그래, 왜? 내 말이 틀렸어?”

내 말에 꼬마바람이 책상에서 방바닥으로 방바닥에서 천정으로 날아다니면서 쌩쌩 거리고 화를 냈어.

“그래, 알았어. 나는 너를 가장 친한 친구로 생각했는데 너는 나를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지.”

“나도 네가 좋아. 같이 놀면 재미있고. 그런데 너는 내가 다른 친구들하고 친하게 지내지 못하도록 해방을 놓잖아?”

“뭐라고? 내가 언제?”

“네가 세영이 바지를 벗기는 바람에 보슬이가 달라졌어. 나를 전처럼 대하지 않는단 말이야.”

“뭐라고? 세영이와 보슬이 문제인데 왜 너하고 연관지어?”

“몰라. 그런 게 있어. 사람 사는 일은 복잡하고 어려워. 너한테 말해줘도 넌 모를 거야.”

“흥! 그래 나는 사람이 아니니까.”

꼬마바람이 콧바람을 푸푸 품으면서 내 방을 한 바퀴 돌았어.

나도 꼬마바람이 좋기는 하지만 꼬마바람이 내 삶을 자꾸만 복잡하게 만드는 것 같아. 뭐라고? 어린 녀석이 무슨 삶까지 들 먹이냐고? 무슨 얘기야. 어른들이나 아이들이나 사는 건 다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우리 할아버지가 사는데도 전략이 필요하다고 하는 거야.

처음에는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고 내가 옹졸해서 그런 생각을 한다고 빡빡 우기던 꼬마바람이 나를 떠나 다른 친구를 찾겠다고 하더군.

“그동안 너와 놀면서 무척 행복했어. 잘 있어.”

“응. 나도.”

나는 코끝이 찡했어. 그렇다고 남자가 그런 걸 표시 내는 것도 뭐 그렇고 해서 코만 자꾸 문질렀어. 안 그러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았거든.

나는 창문을 조금 열어줬어. 꼬마바람이 가더라도 한순간에 쌩 하고 가는 게 싫었거든. 꼬마바람도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천천히, 조금 열린 창틈으로 스르르 나갔어.

“아, 안녕, 잘 가.”

난 겨우 모기만한 소리로 작별인사를 했어. 꼬마바람도 창틈을 빠져나가고도 한참동안 창가를 서성대더라고. 난 곧 후회했지. 작별인사를 좀 더 폼 나게 할 걸 하고 말이야.

꼬마바람이 떠나고 난 밤은 너무 지루하고 길었어. 나는 매일 밤 뒤척거리다 겨우 잠들곤 했지. 혹시 꼬마바람이 다시 창문을 두드리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도 안 한건 아니야. 그렇다고 꼭 다시 돌아왔으면 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

 

그날은 내가 청소당번이었어. 세영이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후다닥 나가더라고. 세영이와 나는 같은 영어학원에 다니거든. 그럼 먼저 간다고 말을 하던지, 기다렸다 같이 가야하는 거 아냐?

꼬마바람이 떠나고 나서 내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서 멀어지는 느낌이 들어. 제일먼저 세영이가 그랬지. 뭐, 세영이는 나뿐만아니라 다른 친구들한테 대하는 게 전과는 달라졌어. 말 수도 줄어들고. 그래서인지 무척 어른스러워 보이기는 해.

보슬이도 나를 전처럼 편안하게 대하지 않는 것 같아.

영어학원에 간신히 시간을 맞출 것 같은데 그날따라 선생님이 청소검사를 너무 꼼꼼하게 하는 거야. 교실 바닥을 제대로 안 닦았느니, 창가 먼지가 그대로라니, 책상 배열이 엉망이라느니…….

청소가 늦어지는 바람에 학원수업 시간에 제대로 갈 수가 없을 것아 땡땡이를 치기로 했어. 수업 중간에 들어가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가는데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은 기분이고 몸에서 힘이 다 빠져버려서 다리에 힘이 없는 거야.

학교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삼거리가 나와. 삼거리 오른 쪽은 영어 학원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우리 집 가는 길이거든. 삼거리에서 영어 학원으로 가는 길모퉁이에 문방구가 있어. 우리 학교 아이들은 거의 여기서 학용품을 사거든.

아, 그렇지. 그 길은 너희들도 다 아는 길이지. 내가 그 길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문구점 앞 인형 뽑기 기계 이야기를 하려고하는 거야.

터덜터덜 걷다가 신호대기 앞에서 신호를 보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아, 글쎄 세영이와 보슬이가 인형 뽑기를 하고 있잖아. 영어학원도 안 가고 둘이서 딱 붙어서 뭐가 좋은지 시시덕거리는 거야.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힘이 완전히 풀려버렸어. 나를 왕따 시키고 둘이서 언제부터 저렇게 친했지? 난 보슬이가 세영이보다 나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문구점도 도로도 자동차도 보슬이와 세영이까지 회색으로 보이는 거야. 그러면서 내 몸이 낡은 시멘트 담장처럼 초라해 보이는 느낌이었어. 정신을 차리려고 눈을 꽉 감았다 뜨고 머리를 막 흔들었어. 그랬더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더라고.

나는 문구점 옆 꽃집 앞에 세워놓은 큰 화분 뒤에 숨어서 지켜봤어. 보슬이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확, 뛰쳐나가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지.

“세영아, 조기, 야구모자 꺼내 봐.”

“야구 모자?”

“응. 저 모자, 너무 앙증스러워. 저거 갖고 싶어.”

“알았어. 내가 꺼내줄게.”

“정말? 정말 할 수 있겠어?”

보슬이가 고개를 갸웃하고 세영이 얼굴을 올려다보며 활짝 웃는 거야. 세영이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입을 귀까지 올리고 웃더라고. 흥, 그러다 입이 찢어지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내 코에서 김이 확확 났어. 가슴은 쿵쾅쿵쾅 뛰었다가 조글조글 오그라드는 것 같더라고. 보슬이 때문에 꼬마바람과도 헤어졌는데 보슬이가 나보다 세영이하고 더 친해 보이니까 미칠 것만 같았어.

보슬이와 세영이, 나는 유치원 때부터 친구였거든. 우리 셋은 친한 만큼 싸우기도 잘했어. 물론 세영이와 내가 주로 싸웠지만 말이야.

할아버지는 우리가 티격태격 거리며 노는 걸 보고 말했어.

“이놈들아, 손자병법에 보면 오랜 전쟁은 피해만 남는다고 했어. 그만들 싸워.”

맞아. 언제까지 세영이를 신경 쓸 수는 없지. 내가 보슬이를 세영이보다 더 좋아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

30분이 더 지났는데 세영이는 야구 모자를 못 건져 올리더라고. 보슬이 입가에서 샐룩대던 보조개가 시무룩해보였어. 세영이 바지 주머니에서 동전이 연신 나와 인형 뽑기 기계에 들어갔지만 허탕만 치더라고. 세영이가 땀을 흘렸어. 보슬이도 지루한 얼굴로 그런 세영이와 인형 뽑기 기계 안을 번갈아 보더니 푸, 하고 한숨을 쉬는 거야.

“세영아, 그만 하고 집에 가자.”

“어, 어. 근데 아직 못 뽑았는데…….”

보슬이가 어깨에 맨 가방끈을 당기더니 앞서 가니까 세영이도 쭈뼛쭈뼛 따라갔어.

나는 바지 주머니를 뒤적였어. 원래 우리 엄마는 내가 몸에 해로운 군것질을 하지 못하게 용돈을 안 주거든. 그런데 며칠 전에 할아버지 어깨 주물러주고 엄마 몰래 받은 천원이 생각난 거야.

천원을 오백 원짜리 동전 두 개와 바꾸고 인형 뽑기 기계 안을 들여다봤어. 난 한 번도 이런 걸 해 본적이 없거든.

안에는 보기에도 조잡한 동물모양의 인형들이 잔뜩 들어 있고, 야구모자도 몇 개 있더라고. 나는 기계 작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세히 살펴봤어. 딱 천원 밖에 없는데 세영이처럼 실패하면 안 되잖아. 그런데 야구모자는 다른 인형보다 집기가 쉬울 것 같더라고.

“이까짓 것도 못하는 게 잘난 척은…….”

나는 오백 원을 넣고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움직였어. 집게를 서서히 내려 보내고 시계 3시 방향으로 살짝 돌린 다음 다시 아래로 조금 내려와서 야구모자 위에 집게를 가져다댔지.

조금만, 조금만 더. 가슴이 또 조글조글 오그라드는 것 같았어.

나는 조심스럽게 야구모자를 집었어. 초록색 바탕에 A라는 글자가 크게 박혔고 노란 창으로 된 앙증스러운 모자야. 보슬이가 분명히 좋아하게 생긴 거야.

“이까짓 것쯤이야.”

나는 숨소리조차 죽이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기도를 했어. 콧등에서 땀이 났어. 손바닥도 미끈미끈해지고. 그런데 막 집어서 올리려는 순간 툭 떨어지는 거야.

“아이, 씨!”

다시 했는데 또 잡힐 듯 잡힐 듯하다가 말았어.

나도 모르게 땅바닥에 주저앉았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금힐금 쳐다봤어. 내일 보슬이에게 야구 모자를 주고 잘 보이고 싶었는데…….

인형 뽑기 안에 있는 야구 모자를 보니 마치 보슬이가 기계 속에 갇힌 것처럼 보이는 거야. 보슬이가 답답한 기계 속에 갇혀있는데 나 혼자 집에 갈 수가 없잖아. 그래서 다시 일어나서 눈에 힘을 주고 기계를 노려봤지. 마음속으로 ‘저 모자는 보슬이 꺼야!’ 하고 외치면서.

나는 인형이 나오는 구멍을 들여다봤어. 그런데 생각보다 큰 거야. 형이 쓰는 노트북만하더라고. 구멍 안에 손을 넣고 팔을 쑥 디밀어봤어. 손끝에 아무것도 만져지지가 않았어. 그러니까 손으로 꺼낼 수는 없다는 거지.

“너를 혼자 두고 가지 않을 테야.”

나는 구멍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기어 들어갔지. 구멍이 작아서 어깨가 꽉 조이기는 했지만 굼벵이가 기듯 조금씩 움직여서 겨우 들어갔어.

노란 창이 달린 야구 모자를 가슴에 안고 바깥을 바라보는데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분이 좋더라고. 그렇지만 얼른 나가지 않으면 들키잖아. 그래서 나오려고 머리를 디밀어도 나갈 수가 없는 거야.

내가 친구들보다 몸이 작다고 해도 작은 인형 기계 안이 좁아서 들어올 때처럼 다리를 쭉 뻗고 머리를 들이밀 수가 없는 게 문제였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거야.

할아버지가 이 꼴을 봤으면 ‘쯧쯧, 전략도 없이 마구잡이로 돌진해서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냐?’ 했을 거야. 거꾸로 다리부터 나가려고 해도 안 되는 거야.

기계 안은 덥고 답답했어. 이러다가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더라고. 마침 어떤 아줌마가 지나가기에 기계를 탕탕 치고 소리를 질렀어. 그런데 그 아줌마는 핸드폰을 하느라 못 들었나 봐.

아저씨도 지나가고 누나도 지나갔지만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어. 나는 이제 여기 갇혀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 죽을 때 죽더라도 보슬이한테 야구모자는 주고 싶었어.

문득 꼬마바람이 보고 싶어졌어. 그리고 헤어질 때 쌀쌀맞게 군것도 미안하고, 작별인사도 멋지게 못한 것도 후회했지.

“이럴 때 꼬마바람이 있으면 도와줄 텐데…….”

기계에 힘없이 기대서 중얼댔어. 그리고 그동안 꼬마바람과 재미있게 놀던 생각을 떠올렸지.

그때 기계 앞으로 모자가 데굴데굴 굴러오는 거야. 나는 기계에 바짝 붙어서 밖을 내다봤어. 바람에 떠밀려오는 모자를 주우려고 대머리 아저씨가 헐레벌떡 달려오는 거야. 그리고 모자를 줍다가 나와 눈이 딱 마주쳤지.

아저씨는 놀라서 그 자리에 털퍼덕 주저앉았어.

나는 아저씨 주변을 여기저기 살펴봤어. 아저씨를 내 앞으로 오게 한 건 분명히 꼬마바람이라는 걸 난 알 수 있었거든. 그런데 꼬마바람은 어느새 숨어버렸더라고.

“고마워. 내 친구.”

내가 그렇게 중얼대며 기계 밖을 보고 있는 사이에 아저씨는 119에 신고를 했어. 그리고 119 아저씨들이 와서 기계를 다 뜯고서야 나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지.

나는 나올 때 노란 창 야구 모자를 가슴에 꼭 껴안고 나왔어. 그리고 구급차에 실려서 병원으로 옮겨졌어.

아무도 모자에 대해서 묻는 사람이 없더라고. 물론 내 몸도 멀쩡했지. 뭐 간단한 검사 받고 엄마가 데리고 집으로 왔어.

엄마는 너무 기가 막 힌지 한숨만 쉬더라고. 난 또 따발총 공격을 받을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야구 모자를 들고 학교에 갔어. 당연히 보슬이를 보자마자 줬지. 아주 멋지게 씩 웃으면서.

보슬이가 야구 모자를 들고 나를 보며 물었어.

“이게 그거야?”

“응?”

난 뭔 소린지 몰라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어. 이런 행동은 생각을 굴릴 때 저절로 나오는 습관이야.

“어제, 그 거.”

뭐야. 보슬이가 어제 사건을 어떻게 안 거지?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못했어.

“어젯밤 뉴스에서 봤어.”

“어? 어. 그랬구나.”

우리 집은 텔레비전을 안 보거든. 그래서 내가 뉴스거리가 되었는지 전혀 몰랐지. 내 얼굴이 빨개졌어. 기계 안에 갇혔을 때보다 더 숨을 못 쉬겠는 거야. 콧속에서 뜨거운 김이 푹푹 나왔어. 보슬이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도무지 모르겠는 거야.

난 세영이가 뽑지 못한 걸 내가 뽑았다고 자랑하려고 했는데 기계에 들어가서 훔쳐온 게 다 들통이 난 꼴이 되었지.

이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야. 그놈의 손자병법에 나오는 전략들은 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 이럴 때는 내 머릿속에서 코빼기도 안 내미네.

나는 무안한 모습을 감추려고 공연히 콧잔등을 비비다가 슬쩍 봤더니 보슬이가 모자를 무릎에 올려놓고 손으로 만지작대는 거야. 아주 소중한 걸 만지듯이 말이야.

‘아싸!’

나는 마음속으로 만세를 불렀어. 사는 데 이리저리 머리 굴리는 전략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낫다는 걸 배웠어. 히힛.

그러니까 내말은 사는 게 계산대로 안 된다는 거지. 이것도 손자병법에 나오는 전략이냐고? 아니, 나, 권영재가 새로 만든 손자병법이야.

왜, 그런 중요한 걸 함부로 내 맘대로 만들었냐고? 그거야 세상이 많이 바뀌었잖아. 그러니까 새로 우리에게 필요한 손자병법은 우리 스스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거지. 가만, 그러면 손자병법이 아니고 영재병법이라고 해야 하는 거잖아. 하하하.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어때? 재미있었어?

아, 그래? 알았어. 너희들이 재미있다니까 다음에 또 들려줄게. 그럼 안녕.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충청대로 103 (율량동)
  • 대표전화 : 043)218-7117
  • 팩스 : 043)218-7447,7557
  • 창간 : 1991-12-29
  • 제보전화 : 043)218-722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원중
  • 명칭 : 동양일보
  • 제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 등록번호 : 충북 가 00003
  • 등록일 : 1991-12-27
  • 발행일 : 1991-12-27
  • 회장 : 조철호
  • 발행/인쇄인 : 유영선
  • 편집인 겸 편집국장 : 김영이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ynews@dy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