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희

여름을 건너면서 호수는 순해졌다

변덕스런 하늘을 품느라 물빛은 더욱 짙어지고

흐름을 멈춘 수면이 거품을 물고 있다

미루나무가 허공을 끌어와 꼭짓점을 세워 보지만

하늘은 여전히 아득하다

물푸레가 동면한다는 계곡을 달리면서

마음만 바빴던 날들이 가파르게 남아 있다

간혹, 하늘의 연서를 빼곡히 받아 적다가도

한줄기 소나기일 뿐임을 앎으로

둥글게 둥글게 지워 나가야 한다는 것도 안다

수직을 벗어난 미루나무잎의 평온한 배영, 그 아래로

수몰된 누군가의 고향이 출렁거리고 있다

 

호수가 환한 등줄기를 곧추세우고

노을 속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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