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환·이을용·이운재 덕분에 여기까지 와"

(동양일보) 지난 1일 마포구 성산동의 서울월드컵경기장 보조경기장에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1천 석 규모의 경기장에 약 3천 명이 몰리면서 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바위나 나무 위에까지 올라가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평일 오후에 사람들을 이렇게 불러모은 경기는 바로 '청춘FC'가 프로축구 K리그 챌린지(2부 리그)의 '이랜드FC'를 상대로 치른 국내 첫 평가전이었다.

'청춘FC'는 매주 토요일 밤 방송되는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의 축구팀이다.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의 최재형 PD는 최근 전화통화에서 "지난 1일 경기에 많은 인파가 몰려서 정말 놀랐다"라고 말했다.

"제가 '청춘FC' 전지훈련 때문에 6주 동안 벨기에에 있었던 탓도 있겠지만, 사실 시청자들 반응이 크게 와 닿지 않았어요. 프로그램 시청률도 그다지 높지 않아서 외면받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1일 경기 인파를 보고 깜짝 놀랐죠."

최 PD는 애초 벨기에 구단인 AFC 투비즈를 인수한 국내 기업으로부터 "구단에 데려갈 우수한 젊은이 한둘을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을 제안받았지만, 고민 끝에 거절했다.

"개인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축구라는 종목에서 1등을 뽑는다는 것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보다 집단이 함께 도전하고 그 실력을 세상에 선보이는, 외인구단 형식의 프로그램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 결과 국가대표 출신 안정환과 이을용, 이운재가 저마다의 이유로 축구를 그만둔 젊은이들을 찾아내 재기를 돕는 프로젝트 '청춘FC'가 탄생했다.

'청춘FC' 자격 요건은 '좌절 경력이 있는, 그러나 포기를 모르는 자'다.

최 PD는 "어떤 공동체든 한 번의 실패로 모든 것이 끝나는 곳은 건강하지 않은 사회라는 생각을 늘 했고, 그를 풀어갈 소재가 축구였던 셈"이라면서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청춘FC'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절박한 청춘들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감동을 자아낸다.

그렇다고 과도하게 감성적으로 접근하거나, 출연자들의 좋은 점만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 점이 이 프로그램의 미덕이다.

최 PD는 "촬영장에서는 예능 프로그램을 찍는다고 생각하고 참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라면서 "모두 축구만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모든 상황이 진짜에요. 물론 예능이기에 조금 더 하고, 덜 하고 이런 부분이 있지만, 현장 흐름대로 흘러갑니다. 그 친구들의 노력하는 모습과 좌절하는 모습을 진솔하게 담으려고 노력해요. 예능적으로 억지로 누군가를 주목해 찍으려고 하기보다는, 더 열심히 하는 친구들에게 더 관심을 보이죠."

최 PD는 안정환, 이을용, 이운재 등 세 지도자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표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 셋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맡았다면 '청춘FC'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들 해요. 감독들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는 모습이 있으면 따끔하게 이야기합니다. 뒤돌아서서 후회하기도 하지만요."

'청춘FC'은 MBC TV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백주부' 백종원을 내세워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7월 11일 방송을 시작했다.

4.1%(닐슨코리아·전국 기준)로 시작한 프로그램 시청률은 지난 2개월 사이 소폭 상승했지만, 온·오프라인에서는 '청춘FC'에 대한 입소문이 점점 퍼지고 있다.

KBS는 애청자들의 호응에 프로그램을 12부에서 16부로 연장한 데 이어 방송시간도 10분 더 늘렸다.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선수들 부상을 대비해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의과대학 전공의, 선수들에게 고기 회식 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다는 정육식당 주인을 비롯해 '청춘FC'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오는 16일 열리는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성남FC와의 평가전도 이랜드FC 경기 이상으로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

최 PD는 "'청춘FC'에서 한 명이라도 더 축구 선수로 뛸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당장 좋은 결과를 얻지 않더라도 축구에 뜻이 있는 친구들에게는 조금 더 도전할 길이 열렸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이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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