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논설위원 / 시인)

▲ 이석우(논설위원 / 시인)

일본 열도에는 10만 개의 신사가 있다. 여기에 모시고 있는 신의 수는 2000 정도가 된다. 과연 ‘신의 나라’ 라는 그들의 말에 실감이 간다. 그들은 왜 이렇게 많은 신의 숲을 만들어 놓고 자신을 그 속에 가두어 두려고 하는 것일까?
우리는 금년에도 태풍을 겪지 않고 지나가고 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 태풍 속에 가옥을 날려 보내고 홍수에 세간을 제물처럼 실려 보내고 나서야 여름을 난다. 해일은 마을 전체를 삼켜버리기도 하고 지진은 가옥과 가족들을 땅 속에 묻기도 한다. 그들의 삶 곁에는 재난이 포스터처럼 붙어 있다.
풀잎만큼 흔들리는 삶이다. 삶 속에 영혼을 잡아두기 위해 필연적으로 의탁할 곳을 찾아야 했으리라. 아침에 일어나보니 먼저 눈뜨고 있는 산악이 보인다. 우선 신으로 모신다. 일본 열도의 사람들은 휴지산을 신으로 생각한다. 큰 돌과 큰 나무가 자신들의 삶보다 더 단단하니 신으로 만들어 방안에 들이고 말과 고양이는 꺼져드는 땅 위에서 날렵하게 살아남았으니 마당에 신으로 세운다. 독도의 동도와 서도는 동해바다에서 존명의 푯대로 우뚝 서 있다. 일본의 어디선가 신으로 받들어지고 있지도 모를 일이다.
신사를 믿는 일본의 신도는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범신론에서 출발한다. 산천초목의 생명력에 대한 숭배심이 신앙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것들은 정령과 조상숭배 등으로 다듬어지고 불교와 도교의 영향으로 세공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하였다. 천주교와 기독교도 그 틈새를 엿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신교 외에 여타의 종교들이 일본 열도에서 번창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부처님도 일본의 산을 점령하지 못하였다. 일본인들은 산위에 절을 짓지 않는다. 그것은 산신을 범하는 이유기 되는 까닭이다. 필자는 대마도에서 교회를 찾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러다가 이즈하라에서 아주 작고 낡은 예배당 하나를 찾는데 만족하고 말았다. 대마도의 기독교인 수는 보고된 바가 없다.
일본신사에 안치한 신의 수 2000 가운데 그 절반은 한반도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신사는 한반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대마도에는 ‘신라신사’가 있다. 그러나 대마시가 만든 안내 책자 어디에도 그런 내용을 찾을 수 없다. 대마시가 한국과의 연맥을 달가워하지 않는데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진실을 가리고 지워서 없는 것으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 진실은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송곳처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밖으로 그 모습을 내미는 법이니까.
일본정치가들은 툭하면 신사에 가서 참배한다. 일본어의 정치(政治)는 다른 말로 '마쯔리고토(祭事)라 불린다. 그러니 일본의 정치는 신을 맞이하여 받드는 일이 되는 것이다. 일본의 여러 갈래 신사 중에서 아무래도 시마네현의 미즈모 대사를 가장 오래된 신사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약 2천 년 전 한반도에서 유래된 천신을 모신 사당이었다.
동경대학의 구메 구니다케(1839~1931)교수는 ‘신사'가 바로 한반도의 '소도蘇塗'와 같은 것으로 "신도는 제천 행사의 옛 풍속"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하늘의 천신을 조상신으로 받드는 것이 일본 왕실의 신앙인데 이것은 ‘고조선의 조상신 제사 양식을 일본이 받아 내린 것’이라 하였다. 구메 교수는 동경대에서 쫒겨 나고 말았다.
일본 왕실은 매년 11월 23일에 신상제新嘗祭를 지낸다. 한반도 신에게 제사하는 것이다. 또한 내각이 바뀌면 수상 이하 전 각료가 신사를 찾아 천조대신에게 절한다. 이세신궁은 애초에 한반도의 천신을 모시던 곳이었으니 한반도 신에게 읍소하는 것이리라.
신사 입구에는 천(天)자 모양의 문을 세우는데 이것이 새들이 쉬어가라는 ‘도리이’(鳥居)이다. 우리나라의 솟대와 비슷한 개념을 담고 있으며 신성한 장소임을 표시한다. 도리이 입구 양옆에는 두 마리의 고마이누(고려 개)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왼쪽 놈은 헤헤거린다. 시작을 뜻하고 있는 수놈이다. 오른쪽 놈은 입을 다물고 있다. 끝을 의미하는 암놈이다. 고구려의 혜자 스님이 데려온 개를 숭상하여 만들어 세우게 되었다는 일화의 주인공들이다. 신사(紳士)의 건물은 한옥의 팔(八)짝 지붕의 측면을 정면으로 하여 만든 것이 많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금줄처럼 새끼줄을 걸어 둔다.
새와 개와 금줄과 팔짝 지붕이 일본열도에 도래하여 신의 반열에 오르고 있다. 지금도 일본의 신들은 태어나고 있다. 역사의 왜곡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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