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화면에 등장하면 시청자의 혈압은 상승한다.

    손가락질을 하며 욕을 하고, 부들부들 치를 떨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시청률도, 화제성도 상승한다. 악역의 힘이다.

    막장 드라마가 넘쳐나는 속에서 악역은 흔하다면 흔하다. 그러나 악역에도 급이 있다면 최근에는 이들 셋이 단연 화제다.
    지난 5일 시작한 MBC TV 주말극 '내 딸, 금사월'은 출발과 동시에 악덕 시어머니 소국자(박원숙 분)의 활약상에 시청률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차림새부터 원색적이고 요란해 강렬한 인상을 주는 소국자는 천박하고 못됐다. 자신이 식모로 일하던 주인집 딸을 며느리로 들이면서 식모살이했던 한을 며느리에게 고스란히 돌려주는 것은 기본이고, 며느리의 엄마인 자신의 사돈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저지른다.
 

    하지만, 소국자의 악행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며느리가 정신병자 행세를 하며 병원에서 몰래 혼외 자식을 낳은 사실을 알자 며느리가 낳은 아이를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바꿔치기하는 패륜도 저지른다. 그러고는 해산하고 온 며느리에게 시치미를 뚝 떼고 온갖 힘든 일을 시키며 괴롭힌다.
    앞서 '겨울새' '백년의 유산' 등에서 꿈에 나올까 무서울 정도로 뻔뻔하고 이기적인 시어머니를 연기하며 큰 화제를 모았던 박원숙은 이번에도 제대로 된 '분노 유발 캐릭터'로 시청자들이 뒷목을 잡게 만들고 있다.

    제작진은 "촬영장에서 한없이 인자하고 늘 환한 웃음을 짓는 박원숙은 '슛'이 들어가면 표독스러운 시어머니로 돌변한다"며 "박원숙의 교묘하고 악랄한 시어머니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몰입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내 딸 금사월'은 방송 4회에서 전국 17.8%, 수도권 18.2%를 기록하는 등 초반부터 인기몰이 중이다.'

    SBS TV 월화극 '미세스캅'에서는 손병호의 끝도 없는 악행이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재벌이자 국회의원까지 꿈꾸는 강회장(손병호)은 그자리에 오르기까지 경찰 살해, 살인 교사 등을 비롯해 마약거래, 폭행, 금괴 밀반출, 경찰·검사 매수 등 온갖 특수 범죄를 저지른 슈퍼 범죄자다.

    한마디로 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해서는 안 될 악질이지만, 재력을 이용해 그 모든 것을 교묘히 덮은 채 버텨온 공공의 적이다.

    죄의식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배짱과 뻔뻔함이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 강회장은 경찰과 법을 조롱하며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계속해서 나쁜 짓을 저질러 나가며 경찰 강력계 팀장인 주인공 최영진(김희애)은 물론이고, 시청자의 분노 지수를 상승시킨다.'
 
    KBS 2TV 수목극 '어셈블리'에서는 극초반 가진 것 없고 다리마저 저는 노쇠한 블루칼라 노동자 배달수를 연기하며 서민과 해고 노동자의 애환을 온몸으로 그렸던 손병호는 '미세스캅'에서 그와 180도 다른 얼굴을 보여주며 탄탄한 내공을 과시한다.

    '어셈블리'의 배달수는 크레인 농성 중 추락사하며 안타까움을 안겨줬다. 그러나 '미세스캅'의 시청자들은 지금 강회장이 그 많은 악행의 죗값을 치르는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러한 시청자의 바람을 안고 '미세스캅'의 시청률은 지난 15일 자체 최고인 전국 13.7%, 수도권 14.6%를 기록했다.'
 

    SBS TV 주말극 '애인있어요'는 요즘 불륜녀 강설리(박한별) 때문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시청률은 5%대로 경쟁작인 MBC TV '내 딸, 금사월'에 한참 뒤지지만, 강설리는 인터넷상에서 화제를 몰고 다닌다.

    약학대학원생인 강설리는 고아로 가난하게 자라났지만 밝고 당차다. 그런 그가 대학원 선배이자 유부남인 최진언(지진희)을 '노골적'으로 짝사랑하던 끝에,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자' 아예 진언을 자신의 남자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인터넷에서는 이 강설리의 '행실'에 대해 '도발적인 불륜녀'라며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강설리는 최진언의 아내 도해강(김현주)이 타이르고, 윽박지르고, 끝내는 무릎까지 꿇으면서 사정했음에도, 또 최진언이 초반 자신을 밀어내려고 애썼음에도 저돌적으로 달려들어 최진언의 마음을 빼앗는다.

    강설리는 "남의 걸 훔쳤다고 생각 안 해요. 사랑이 제게 왔을 뿐. 무뚝뚝하게 왔지만 그래도 용기 내서 성큼성큼 내 앞으로 와줬어요. 이 사랑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요"라고 조근조근 말한다.
 
    누리꾼들은 이런 강설리에게 '최악의 불륜녀'라는 수식어까지 붙였다.

    흔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불륜녀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청순하고 앳된 모습에 가난을 딛고 밝게 성장한 강설리가 스스로 불륜을 정당화하는 모습에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배신감을 느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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