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토청꿀 대표 김대립씨

 

(동양일보 조아라 기자) 모두들 제 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다. 그래도 조금만 더 가면 희망의 그림자에 닿을 듯 한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딱 한 발만 더……. 그렇게 8년을 달렸다. 늘 곁에서 함께 뛰는 ‘토지(토종벌 지킴이)’ 사람들이 있었기에 외롭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희망은 그의 것이 되었다.
최근 전국 110여개 양봉농가로 구성된 연구모임 토종벌지킴이가 8년 간의 연구 결과 낭충봉아부패병을 막을 수 있는 친환경 예방법을 개발했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2008년 첫 발생 후 2010년 전국을 휩쓸며 토종벌의 98%를 폐사시켜 ‘토종벌 에이즈’로 불리던 이 병의 예방·대처법이 개발됐다는 것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토종벌지킴이 현장교수인 김대립(42·청토청꿀 대표·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추정길 44-112·☏016-9480-3000)씨가 있었다.
“다들 거의 포기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결국 포기할 것은 하나도 없는 거라는 걸 알게 된 거죠. 현재 청주시 73농가 중 80% 이상에서 토종벌이 살아났어요. 앞으로 2년간 100% 살려내 충북이 낭충봉아부패병의 청정지역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토종벌 박사’로 잘 알려진 김씨는 이미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인물이다. 토종벌을 키우는 할아버지,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 9살 때부터 숙명처럼 벌통을 만진 그에게 벌은 세상에서 가장 친숙한 존재다.
중학교 1학년 때 토종벌 인공분봉법을 개발하기 시작해 최근까지 8~9가지의 분봉법을 개발한 그는 1997년부터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토종벌 농가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최연소 신지식 농업인(136호)에 지정됐고 충북 바이오농업 대상을 받기도 했다. 토종꿀 생산만으로 연 매출 1억 원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던, 소위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2010년 이름 모를 그 병이 다가오기 전까지는.
2010년은 김씨 뿐 아니라 많은 토종벌 농가들에게 재앙이었다. ‘낭충봉아부패병’이라는 거대한 태풍이 쓸고 간 자리는 절망적이었다.
“지리산에서 1000여 통씩 하던 누군가는 벌들이 다 죽고 1주일 동안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전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정말 공감이 갔어요. 벌들이 너무 불쌍하기도 하고…… 마음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요.”
당시 이름도 모르고 연구도 없었던 병이었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삶이 송두리째 곤두박질치는 듯한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결코 토종벌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벌을 대상으로 500여 가지 이상의 실험을 시도했고 무수한 시행착오도 겪었다. 심지어 질경이를 삶아 벌에게 먹이기까지 했다.
2011년 토종벌지킴이를 발족한 이후 이들과 함께 연구를 계속했다. 환경 변화로 인한 토종벌의 생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제주도에 시험 벌 농장을 만들어 연구하기도 했고, 같은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중국, 일본을 방문하기도 수십여 차례였다. 지난해에는 6번이나 중국, 일본의 토종벌 관련 기관, 현장을 찾아갔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쉰 적이 없어요.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거다 싶은 것을 한 뒤에 자곤 했어요. 저 나름대로는 꼭 해야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이러다 밥 굶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3~4개월 만에 1억씩 날리기도 했으니까요. 아버지는 결국 소를 키우기 시작하셨죠.”
그러나 많은 벌들이 죽어갈수록 희망에 한발씩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론은 이 바이러스에는 약이 없다는 것. 환경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벌통 내부의 환경 변화가 필요했다.
마침내 그와 함께 연구하던 토종벌지킴이는 이 병이 명나방애벌레, 수중다리좀벌 등 해충에 의해 감염되며, 감염된 토종벌애벌레가 주변 벌통이나 이웃 벌통을 빠른 속도로 감염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해충방지벌통과 여왕별 교체로 이 병을 예방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해충방지벌통은 3.2mm의 홈을 내 명나방애벌레가 이곳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도록 한 것. 또한 낭충봉아부패병 발생 위험 시기에는 여왕벌을 건강한 우수 여왕벌로 교체해 바이러스 숙주인 애벌레의 양이 조절되도록 했다.
“사실 이 병은 나만 잘 관리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감염병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모든 토종벌 농가가 이 병에서 벗어나야 내 벌을 살릴 수 있어요. 예방법을 찾았다는 것이 사실은 너무 큰 사건이라 아직 기관이나 많은 사람들이 신뢰하고 있지는 않아요. 사람들의 믿음을 받기 위해서는 결국 저희들이 질병을 완벽히 해결하고 벌을 살려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검증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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