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 / 소설가>

▲ 박희팔<논설위원 / 소설가>

 여간해서는 오지 않는 영곤이가 왔다. “얼래, 워쩐 일여 해가 서쪽에서 뜨겄네. 뭔 일 있남?” “있지유, 아주 큰일이지유.” “부자지간이 큰일 때나 날 찾아드는구먼. 그래 뭐여?” “엄마 땜에 아버지와 큰어머니 제사를 지가 지내야겄어유.” “뭔 소리여. 엄마 아버지 큰어머니 제사 다 큰집에서 지내잖여?” “아뉴 안 그리유. 따지고 보면 이게 다 할머니 때문이유.” “나 땜에?” “야, 할머니가 우리 엄마 아버지 맺어주셨잖어유. 그래서 이런 사단이 벌어졌응께 할머니가 결자해지해 줘유!”
 재당질(칠촌조카)이 재당숙모(칠촌숙모)인 인자리댁을 찾아왔다. “아주머니, 저 아무래도 자식을 봐야겄습니다.” “시방 조카님, 뭔 소린감.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들 다 있지 않은가?” “그건 양아들 식구들이잖어유.” “아니, 양아들은 아들 아녀 정식으루 양자로 입적했잖여.” “그렇긴 해두 돌아가신 아버지가 억지루 밀어붙이신 거구 그리구 내가 못 낳는 게 아니구….” “그게 인제 와서 뭔 소리여 안 되아!” “일을 저질러 놨어유.” “뭔 소리여 무슨 일을?” “저저….” 참 맹랑한 일이다. 열한 살이나 아래인 서른일곱 살짜리 과수를 건드렸는데 그게 임신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그거 안에서두 아는 감?” “모르쥬. 그러니께 아주머닐 찾어왔지유 어트게 줌 해결해 주셔유.” “해결해 달라니, 그 과수와 떼어 달라는겨 질부한테 그 사실을 얘기해 달라는겨?” “집사람한테 잘 말해서 성살 시켜달라는 거쥬.” “성사, 그럼 그러니께 그 과부를 작은댁으로 들여놓겠다 이거여?” “예 아무래두….” 참 기도 안 차는 일이다. 인자리댁은 순간적으로 숨이 헉 막혔다가 다시 고르며, “그 마음씨 곱고 어진 질부한테 그 죄를 다 어트케 할려구 그러는가 난 말 못 하네 조카가 저지른 일 조카가 추슬러.” “저는 더 말 못하겄어유. 전 아주머니밖에 없어유. 아주머니, 아주머니 제발 제발유!” 인자리댁은 목매는 재당질 일로 이틀을 밤낮으로 끌탕을 하다가 사흘째 날 오십 줄의 재당질부를 찾아갔다. 그리고 저간의 일을 대략 얘기하고 나서, “차마 당사자 입으론 자네에게 얘길 못하겠다며 내를 찾아왔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겠는가?” 하자, 재당질부는 멍하니 넋 나간 채로 한참을 있더니 급기야 눈물을 훔치며, “다 아녀자노릇 못한 지 팔자소관이지유. 임신까지 했다니 같은 아녀자 입장으루 어떡하겄어유.” 이래서 한 가지 해결을 보고 양아들에게도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나서, “어머닌, 그래도 당신의 자식은 의당 지금의 자식이라며 같이 따로 나가 사시겠다는디 워트게 생각햐?” 하니, “일은 저질러진 일이고 어먼님도 그러시고 저희도 그게 좋겠구만유.” 해서 뜻밖에 큰 어려움 없이 해결을 보았다.
 그런데 새사람이 들어오는 날 식구들이며 온 동네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재당질이 맨 앞장서고 남산만한 배를 앞세우고 새사람이 삽짝을 들어서는데 고만고만한 여식들 셋이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거였다. 그 새사람의 딸들이었다. 그 세 딸들은 엄마가 이 집으로 들어와 두어 달 만에 낳은 남동생 영곤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며 키워주었다. 그리고 각자 본 동네며 이웃동네 남자들과 아주 자유롭게 연애해서 시집들을 갔다.
 한데 문제는 영곤이 아버지도 영곤이 어머니도 그리고 양아들과 사는 영곤이 큰어머니도 다 세상을 뜨고 난 후 일어났다. 영곤이가 처음에는 잘 몰라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가만히 보니까 명절 때는 차례 상의 여러 선대들 끄트머리에 엄마가 올라 있는데 기제사는 아버지와 큰어머니는 지내면서 엄마제사는 지내지 않는 거였다. 그게, 엄마의 기제사는 엄마의 전 시집에서 전 남편과 나란히 지내준다는 거였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영곤은 거기 가서 생판 모르는 아버지라는 사람과 나란히 엄마의 제사를 지내기는 도저히 싫었다. 허나 이러한 일들을 양형님한테 말하고 따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여 오늘 인자리댁을 찾아온 것이다.
 “결자해지라니 뜬금없이 뭔 소리여?” “저 저 말이유 큰어머니한테 입적돼 있는 건 이해해유. 그치만 우리 엄마 기제사는 지내 줘야지유 왜 내 엄마만 빼놔유. 엄연히 이렇게 자식이 살아 있는데.” “그려?” “그래서 결심했어유. 엄마 제사를 지내려면 아버지 큰어머니 제사까지 지가 다 지내기루유. 양형님은 어차피 세 분 다 친부모님이 아니잖어유. 워띠유 제 말이 틀렸시유?” “그래서 그 사정의 말을 양형님한테 나보구 전해 달라구. 엄마 아버지 맺어준 죄루. 근데 너 결자해지(結者解之) 말구 다른 문자도 아는 게 있느냐?” “몇 개는 있지유.” “참 장하기도 하지!” 그리고 이튿날, 인자리댁은 결자해지를 하러 90노구를 지팡이에 의지하고 꾸벅꾸벅 그 양아들 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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