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위원장 강수연

 

강수연(49)은 배우다.

우리 나이로 네 살 때 데뷔해 46년을 배우로 살았다. 스물한살 나이로 한국 여배우 최초로 3대 국제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한 시절을 풍미하던 여배우가 어느샌가 은막 뒤로 사라지는 일이 흔했지만, 강수연은 달랐다. 당대의 흐름에 맞춰 멜로의 여주인공이 됐다가, 1990년대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여자가 됐다가, 천하를 호령하는 조선시대 여인이 됐다.

생기 넘치던 젊은 여배우는 카리스마를 품은 중견 여배우로 자신의 자리를 지속적으로 찾아 나갔고 만들어 갔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자존심이라는 뜻으로 쓰인 속어)가 없냐”는 영화 ‘베테랑’(감독 류승완) 속 대사가 강수연의 입에서 빌려온 말이라는 일화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런 배우가 국내를 넘어 아시아 최고로 올라선 국제영화제의 수장이 됐다.

성년을 맞은 해 큰 위기에 부딪힌 부산국제영화제가 대내외적 쇄신과 도약을 보여줘야 했을 때 그에게 공동 집행위원장 자리를 제의했고 그가 이를 받아들였다는 소식에 많은 영화인이 놀라움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6일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사무실에서 만난 강수연 위원장은 지난 1일 개막해 10일 폐막까지 반환점을 돈 영화제를 꾸리면서 그는 하루 두 시간만 자면서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요. 다 끝나면 이용관 (공동 집행)위원장님한테 뭐라고 해야겠어요. (웃음) 개막식 때 마음고생을 가장 많이 했어요. 새벽까지 비바람이 몰아치는 해운대 바다를 보면서 한숨지었죠. 김해공항으로 와야 할 비행기가 모조리 결항돼 게스트들이 서울로 갔다가 KTX를 타고,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어요. 제가 입고 있던 드레스도 다 젖었는데 초조한 마음에 젖었는지도 몰랐어요. 그래도 하늘이 도왔죠. 개막식 때가 되니 비가 잦아들었고 예상보다 많은 분이 제때 도착해 참석할 수 있었어요.”

눈코 뜰 새가 없다는 표현 외에는 달리 다른 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바쁘지만, 20회를 맞은 부산영화제에 대한 자부심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비바람을 뚫고 우리 20주년을 축하해 주러 전 세계에서 그렇게 많은 분이 와주셨다는 게 감사하죠. 오신 분들 모두 ‘아시아의 대표적 영화제’라고 말해요. 세계가 아시아 영화에 주목하는 시기에 부산영화제가 이렇게 있으니 모두 그 중요성을 알고 도와주고 있는 거죠. 이제 성장기를 거쳐 성년이 됐으니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해야죠.”

그의 연기는 한국영화의 변화상, 사회적 흐름과 궤를 함께해 왔다는 점은 중요한 부분으로 꼽힌다.

1980년대 ‘씨받이’, ‘아제아제 바라아제’, ‘감자’로 고난을 겪는 한국 여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넓고 깊게 담았고 ‘경마장 가는 길’, ‘그대 안의 블루’로 1990년대 초반 한국영화의 감수성을 표현했다.

‘지독한 사랑’, ‘깊은 슬픔’에서 지독하고 깊은 사랑을 보여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한국 현대여성상의 변화를 표출했다.

‘여인천하’로는 장악력 있는 연기의 정점을 선보였다.

당시 세상을 호령하는 여성상을 보여주는 연기와 작품이 사람들이 요구하고 희망하던 바였다고 떠올린 그는 “배우도 지금 현재 무엇이 문제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제 위원장직을 수행하면서 배우의 일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그의 꿈은 그동안 수없이 강조해온 대로 여전히 “연기 잘하는 할머니 여배우”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원대한 목표인지 최근에 알았어요. 작품의 운도 있어야 하고 시대적 흐름과 맞아야 하고 당연히 연기도 잘해야 하고 젊은 관객과 소통 문제가 없어야 하고…. 더 좋은 배우가 되려면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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