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칠환

쿵 스러질 때만 해도

네가 너를 숨기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독수리가 날아오고

파리 떼가 날아갔을 때만 해도

불끈 솟은 갈빗대를 보며

네가 너를 숨기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너는 땅으로 스몄다

이듬해 봄 네가 엉겅퀴로 나오는 걸 보았다

그러니, 나는 지금 짐승을 꺾는 것이다

이것은 수액이 아니라 핏물이다

짐승들이 바람에 목을 길게 늘이고 흔들리고 있다

한 떼의 꽃들이 짐승을 밟고

짐승 위에 똥을 싸며 걸어가고 있다

꽃들이 넘지 못하는 철조망 너머까지

천연덕스럽게 짐승들이 번지고 있다

꽃들이 짐승을 꺾어 먹다가

초원 너머까지 질주하고 있다

도시의 꽃들은 화분에 짐승을 가꾸고 있다

물 주지 않으면 짐승들은 울부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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