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미원중학교 수석교사)

▲ 김은숙(미원중학교 수석교사)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때 저절로 생각이 많아지는 때가 시월이 아닐까 싶다. 척박하게 언 땅에서 새로운 생명의 소생과 연둣빛 신록의 신비로움을 확인하고 녹음의 깊은 품에서 눈부신 날들을 보낸 후에나 저 황홀한 황금빛 들녘과 붉게 물들어가는 나뭇잎을 접할 수 있는 대자연의 신비. 대자연의 흐름과 그 순환의 신비로움을 가장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때가 시월이기에 온 우주의 공기가 무르익어 숙연해지는 이 가을이면 누구나 절로 눈이 깊어지고 더 겸허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저 삭막해보였던 황량한 겨울도 땅 속 깊은 곳에서는 생명의 봄을 준비하고 있었듯이, 숨이 턱턱 막힐 듯 뜨겁고 몸을 늘어지게 했던 한 여름도 이 땅의 온 산하를 안으로 물들이며 무르익은 결실의 계절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붉은 몸으로 우리 곁을 찾아오는 작은 대추 한 알도 결코 저절로 익어간 것은 아닐 것이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태풍 몇 개 / 저 안에 천둥 몇 개 /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  저게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 저 안에 땡볕 한 달 /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 대추나무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장석주, ‘대추 한 알’ 전문 

 거센 태풍이며 무서운 천둥과 번개의 시간을 견딘 후에나 붉게 읽어가는 한 알의 대추처럼, 땡볕 한 달과 무서리 내리는 몇 밤을 견딘 후에나 둥글어지는 저 대추 한 알처럼 우리 교육의 토양도 씨앗을 뿌리는 과정부터 결실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때까지는 같은 과정과  긴 기다림의 시간이 요구되는 게 아닐까 싶다.
 씨앗을 뿌리기 위해 땅을 가는 일부터 새로운 토양을 다지는 일까지 선행되는 과정이 필요하고 씨앗을 뿌린 후 싹틀 수 있도록 적당한 두께의 흙을 덮어주고 물을 주고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우리 교육의 토양에 뿌리는 씨앗도 싹이 트기까지 많은 기다림이 필요할 것이다. 싹이 튼 후엔 햇볕이 잘 들게 해주며 천둥과 번개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을 키워가도록 더 많은 성원으로 용기를 주어야 할 텐데 열매는 언제 달리는 거냐며 성급하게 재촉하면 튼실한 열매를 맺기 전에 휘몰아치는 바람을 무서워하며 시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건 기다리는 시간, 견디고 이겨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자연의 순리가 우리 교육의 토양에도 적용된다는 생각이다.   
 충청북도교육청이 2016학년도 행복씨앗학교와 준비교에 대한 공개 응모를 받은 결과 도내 59개교가 신청했다고 한다. 10개교를 선정하는 행복씨앗학교에는 유치원 3곳을 비롯하여 초등 17교 중등 4교 모두 24개교가 응모하여 2.4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는 소식에서 행복씨앗학교에 대한 관심과 기대의 정도를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혁신학교 혹은 학교혁신에 대한 관심과 기대라기보다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의 정도가 아닐까.
 충청북도교육청이 지향하는 혁신학교가 ‘학교 공동체가 협력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창의적인 교육활동을 실현하여, 따뜻한 품성을 가진 역량 있는 민주시민으로 함께 성장하는 공교육 모델 학교’라고 할 때, 행복씨앗학교는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느냐에 앞서 교육활동의 기저에 어떤 철학과 비전이 담겨 있느냐, 학생과 학교에 대한 어떤 기대를 갖고 교육공동체가 서로 협력하여 문화를 만들어가느냐가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한 논밭에서 자라는 농작물도 조금씩 자라는 속도가 다르듯이 서로 다른 토양의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활동이 뿌리내린 깊이도 조금씩 다르고 농사짓는 행보와 속도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은 학교에 대한 기대와 열망만큼이나 필요한 것이 기다림의 시간, 대추 한 알이 익어가듯이 더 붉게 익어가고 둥글어지기를 마음으로 성원하며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우리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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