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소명 앞에 옷깃을 여민다

1991년 ‘이 땅의 푸른 깃발’을 사시로 내걸고 출범한 동양일보가 창사 24년을 맞아 다시한번 망원경과 현미경이 될 것을 다짐한다. 동양일보는 먼 곳에 있는 진실은 망원경으로 찾아내고, 감춰지고 숨겨진 진실은 현미경을 들이대 들춰내고야 마는 언론의 근성을 회복하는데 전력할 것이다.
지난 24년을 돌이켜보면 언론환경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우리나라 종이신문은 사실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특별한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언제 도태될지 모르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전국지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창간 100년째 종이신문 발행을 중단하고 지금은 웹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심층기사 위주의 주간지를 발행하고 있다. 그 외에 많은 중소 신문사들이 발행을 중단하고 온라인과 주간지에 주력하는 실정이다.
이런 실상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신문구독률은 20.2%라는 한국언론재단 발표가 있었다. 이런 추세라면 2026년이면 한국에서 종이신문이 사라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다. 이같은 언론환경의 변화는 우리가 이겨내야 할 숙명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언론의 사명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정보의 바다로 일컫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지만 인류가 존재하는 한 정제·정리된 정보-편집된 뉴스의 필요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우리 언론이 언론다운 길을 걷지 못한 것은 권력과 자본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입만 열면 불편부당,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했지만 정치집단, 경제권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실을 왜곡하기 일쑤였다. 언론환경의 악화로 미래는 더욱 암담하지만 우리는 진실보도와 불편부당이라는 언론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우리가 숨가쁘게 질주해 온 지난 24년의 세월보다 헤쳐 나가야 할 미래의 무게가 무겁게 다가옴은 당연한 일이다. 동양일보는 세상을 보는 창이 될 것이다. 건전한 진보와 보수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전달하고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과 약자를 먼저 생각하는 신문이 되고자 한다.
그러면서 동양일보는 여러 목소리중 하나이고 싶다. 물론 큰 목소리가 되기를 바라는 바 없지 않지만 다른 목소리와 함께 가기를 바란다. 또 남들이 꺼내기를 꺼려하는 말도 과감히 지면에 담아낼 것이다. 우리와 견해가 다를지라도 이를 폭넓게 수용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온 힘을 모으려 한다.
판사는 판결로, 신문은 기사로 말한다고 했다. 1987년 민주화이후 언론은 모처럼 자유를 누렸지만 신문, 방송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동양일보도 여기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지 않는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어느 언론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분투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하루하루 열심히, 최선을 다해 신문을 만들어 독자 앞에 내놓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스스로에게 언론인의 사명과 역할을 되묻고, 독자들부터는 당근과 채찍을 받으며 정론의 길을 걸어 갈 것이다.
우리는 잔잔한 바다에선 결코 좋은 뱃사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경세(經世)의 언어를 굳게 믿는다. 동양일보, 아니 우리나라 언론 앞에 도사리고 있는 도전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너무나 잘 안다. 동양일보 임직원 모두는 지난 24년을 거울삼아 새로운 역사에 도전하고자 한다. 스물네살의 건강한 청년으로써 다시 옷깃을 여미고 독자와 더불어 지역을 밝히는 참된 신문, 푸른 깃발이 될 것을 다시한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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