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시인)

▲ 이석우(시인)

포석 조명희(趙明熙)는 동학 농민전쟁이 한창이던 1894년 8월 10일 충북 진천 벽암리 숫말에서 몰락한 유생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이 숫말에는 조명희와 그 조카인 조벽암의 생가터 표지비가 서 있다. 그들이 나고 자란 곳으로 타처에서 떠도는 외로운 혼령이 돌아와 편히 쉬라는 바램으로 서 있다. 포석의 문학은 1994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진천에서 ‘포석 조명희 문학제’가 열리면서 한국문학사에 새로운 의미망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2003년 ‘포석공원’이 만들어지고 ‘포석의 길’이 생겨나더니 급기야 금년 2015년 5월 15일 조명희 문학관이 포석의 고향에 세워졌다. 이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회곡집 『김영일의 사 (1923)』와 최초의 시집 『봄 잔디밭 위에(1924)』를 세상에 선보인 포석의 문학에 우리는 값하게 되었다.
포석은 다섯 살에 아버지를 잃고 둘째형과 함께 살면서 숫말에서 진천소학교를 마친다. 1910년은 8월 29일 조선은 나라를 잃고 말았다. 일본의 데라우찌가 조선총독부에 앉아 왕처럼 군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완용을 비롯한 75명의 매국노들은 은사금과 대대손손 이어받을 수 있는 작위를 수여 받았다. 포석은 그해 서울 중앙고보에 입학하지만 망국의 비통함을 달래다가 영웅 숭배열에 빠져 버리고 만다. 그는 독립을 머릿속에 그리며 북경사관학교로 떠난다. 그러나 평양에서 둘째형에게 붙들려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해가 1914년 이었다.
이 때 진천으로 돌아 온 포석을 찾아와 운명의 시침을 돌린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포석의 조카 조벽암이었다. 이들의 문학적 교감은 포석이 1919년 3·1 운동으로 체포되었다가 출옥 후 그해 9월 동경으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이 때 조벽암은 서당을 안 가고 꾀를 부리다 숙부인 포석에게 종아리를 맞기도 한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던 포석은 1923년 봄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귀국하고 정지용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이 때 그의 회곡 「김영일의 사」는 전국 공연으로 한창 호평을 받고 있었다. 그는 이즈음 서울 권농동으로 이사하게 되고 1924년 장남 중낙 (重洛)이 태어났으며 닷새 뒤 첫 시집을 발간한다. 이 때 벽암은 포석의 집에 들려도 밥을 먹지 않고 돌아가곤 하였다. 그 만큼 포석의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1925년에는 ‘카프’를 창립하고 그해에 단편소설 『땅속으로』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민족 민중문학의 길로 나선다. 1927년 발표한 『낙동강』』은 프로문학을 대표할 작품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1928년 8월 소련으로 망명하여 소련작가동맹 맹원으로 가입하기도하였으나 스탈린의 소수 민족 말살정책으로 체포되어, 1938년 5월 11일 하바로프스크에서 일본 간첩이란 누명을 쓰고 처형 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의 장편소설『만주 빨찌산』과『붉은 깃발 아래서』의 원고도 그의 죽음과 더불어 실종된 것이다.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을 위하여 총 대신 붓을 들었던 항일 민족주의자이며 사회주의자였던 그는?소련작가동맹 원동지부 지도부에서 일하며 산문시 <짓밟힌 고려>, <10월의 노래>, <볼세비키의 봄>, <5월 1일 시위 운동장에서>,<아우 채옥에게> 등을 썼다.
돌을 끓어 안는다는 그의 호 포석(抱石)의 은유처럼 그의 작품 속에는 조국의 강토가 어머니의 품으로 육화되어 있다.
포석과 벽암의 집은 가까이에 있었다. 어느 날 포석은 깊은 가을 애상에 겨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벽암네 할아버지가 떠다 심었다는 밤나무에서 밤알이 떨어지는 소리는 포석의 잠을 더욱 멀리 달아나게 하였다. 다음 날 포석은 벽암을 불러 ‘너 뒤울안에 가보아라 밤이 떨어졌을 게다. 어제 밤에……’하고 일러주었다. 오랫동안 벽암은 고향집 뒤울안의 밤나무에서 알밤 떨어지는 소리를 귀에서 씻어낼 수 없었다. 이 일화에 관련한 시를 포석의 시집에서 발견했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어머니 좀 들어 주셔요/손잡고 귀 기울여 주셔요/ 저 담 아래 밤나무에/알밤이 떨어지는 소리가들립니다./ ‘뚝’하고 땅으로 떨어집니다.//우주가 새 아들을 낳았다고 기별합니다./등불을 켜 가지고 오셔요./새 손님 맞으러 공손히 걸어 가십시다. -포석의 시 「경이(驚異)」
그에게 있어서 고향 뒤울안의 알밤은 우주가 낳은 새 아들인 것이다. 그는 그에게 오는 조선 대지의 모든 것들을 등불을 켜고 어머니와 마중하고 싶은 것이다. 포석은 돌과 나무와 그 것들의 열매를 끌어안고 있는 시인이다. 그는 가난을 떼어내지 못하고 평생을 계급장처럼 붙이고 살았다. 정지용의 시 「굴뚝새」와 이 시는 발상과 정서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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