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 (수필가)

▲ 박영자 (수필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요소를 우리는 ‘의식주(衣食住)’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과 중국은 우리와 다르게 ’식의주(食衣住)’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만치 먹는 일에 비중을 둔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찌 생각하면 그것이 맞는 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 뿐 아니라 식물이든, 동물이든,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첫 번째 과제는 먹을 것을 섭취하는 일이다. 먹을 것이 없으면 생명체는 죽는다. 식물은 물이 없으면 시들고, 먹지 못한 동물은 기진해서 쓰러진다. 식량을 구하지 못한 인간도 기력을 잃고 사경을 헤매게 된다.
   모든 생명체의 두 번째 과제는 번식하는 일이다. 번식하기 위해 식물은 성숙해져야 하고, 동물도 번식 가능한 나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손을 남길 수 있다. 너무 빨리 병들거나 죽지 않고 번식 가능한 나이가 되기 위해서는 영양을 섭취해야 한다. 그만치 먹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우리 옛말에 ‘사흘만 굶으면 남의 집 담도 넘는다.’는 말이 있듯이 도둑질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굶는다는 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만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어느 날 TV에서 방글라데시의 피부색이 까만 아이가 선하디 선한 큰 눈망울을 껌뻑이며 그 어미로부터 죽을 받아먹는 장면을 본 후로 작은 성의나마 보태어 그 생명을 구해야 할 것 같았다. 3만원이면 마흔세 명에게 홍역예방 주사를 맞힐 수 있다는 말에 외식 한두 번 줄이면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다.
  6,70대 사람들은 가난을 경험했기에 음식도 물건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젊은 자식들은 그런 부모를 구차한 사람으로 치부한다. 음식쓰레기 장에 버려지는 멀쩡한 과일이나 고구마 같은 것, 더러는 고기나 생선을 발견하면 이러다 죄 받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외식을 하는 날은 맛이 있어서 더 먹고, 아까워서 더 먹고, 돈 생각나서 더 먹고는 여기저기서 ‘배부르다.’는 소리가 넘쳐날 때 죄의식을 느낀다.
  이번 추석에 휴게소마다 넘치는 음식쓰레기가 골치였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부모들이 싸 보낸 떡이며 전 같은 귀한 음식들을 휴게소 쓰레기통속에 처박고 간 것들이 넘치고 넘친다는 미화원 아저씨의 증언은 부모들을 슬프게 한다. 전에도 부모들이 해 보내는 김치를 휴게소에 버리고 간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반신반의 했었는데 사실이었다.
  요즈음 독서동아리에서 선정한 ‘장 지글러’ 가 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으며 참 세상은 불합리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 책은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진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재 지구상의 120억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는데 왜 하루에 10만 명이, 지금 이 순간에도 5초에 한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지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나는 그 수많은 아이들이 단순히 식량이 없기 때문에 굶고 병들어 죽어가고 고통을 받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구의 한쪽에는 특권으로 가득한 풍요로운 세계가, 다른 쪽에는 궁핍한 세계가 존재한다. 즉 한편에서는 비만을 걱정하고 있는 반면, 반대편에서는 영양실조로 인해 사망의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불합리하며 우리를 슬프게 하는가. ‘기아’는 우리가 불편하지만 알아야 하는 진실인 것이다.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서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비타민 A 부족으로 시력을 잃는 일이나, 아프리카에서 매년 수많은 여성이 아이를 낳다가 죽어가는 이유, 도시의 부자들이 내다 버린 쓰레기 더미를 뒤져 고기 조각이나 빵조각, 반쯤 썩은 채소와 말라비틀어진 과일 등을 주워 빈민가의 가족들과 나눠먹는 사람들은 모두가 ‘구조적 기아’로 고통 받는 것이 현실이다. 소는 배불리 먹는데도 오히려 사람은 굶는 현실, 사막화와 삼림파괴의 영향, 도시화와 식민지 정책의 영향, 특히 불평등을 더욱 부채질하는 금융과 지배구조….
  전 세계가 기아문제 해결에 힘쓰고 있지만, 간단하게 끝나지 않는 이유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현재의 경제, 정치, 사회 구조가 기아문제를 재생산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란다. 자본주의 시대, 신자유주의라는 미명 아래 인간이 자행하는 가장 잔혹한 탐욕의 결과물이 바로 ‘기아’인 것이다. 이 책이 우리 한국 사회에서도 기아에 대한 인식과 관심을 새롭게 하는 출발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라는 말에 희망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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