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협량(狹量)의 사전적 의미는 좁은 도량이다. 소위 속 좁은 사람을 일컫는다. 얼마 전 협량정치라는 말이 회자된 적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승민 찍어내기 파동이후 보수언론조차 감정적 통치, 속 좁은 정치라며 질타했다. 특히 지난 7월초 박 대통령이 ‘믹타(MIKTA·5개 중견국 협의체) 국회의장단을 만난 자리에 자신에게 쓴소리를 해 온 정의화 국회의장을 배제시킨 것을 두고 더욱 그랬다. 국정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으로 펼쳐야 한다면서 협량을 개탄했다.   
요즘 충북 관가는 대형 행사나 축제가 성공적으로 끝나 희색 만면이다.
지난 11일 폐막한 2015괴산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는 관람객 108만명이 다녀가 당초 목표 66만명을 훌쩍 넘는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입장객 수로만 보면 초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처음으로 입장권 자율판매가 시도된 청원생명축제 역시 이전대회 못지 않은 입장객을 불러 모으며 성공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안주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행사가 그러하듯이 대회가 끝나면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 대회준비를 위해, 행사 성공을 위해 그렇게 동분서주하던 개최측도 대회가 끝나면 손 터는 것을 우리는 많이 봐 왔다.
유기농엑스포가 진정 성공했다면 그 선점 효과를 극대화시켜야 한다. 충북도는 ‘유기농 특화도 충북’ 실현을 위한 기반을 다지고 충북 농업의 경쟁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그래서 충북을 유기농 산업의 세계적인 중심지로 만들어야 한다. 이는 유기농엑스포 성공을 위해 음양으로 신경쓰고 도움을 준 괴산군민과 충북도민에 대한 도리다.
유기농엑스포가 성공한데는 크게 4만 괴산군민, 나아가 161만 충북도민의 땀과 열정,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작게는 충북도청과 괴산군청 공직자, 유기농엑스포조직위 직원들의 노력과 고생이 있다. 전 직원이 전국을 뛰어다니며 유기농엑스포 홍보에 나선 것을 도민들은 신문지면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내 소관업무도 아닌 것에 신경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윗사람의 지시에 의했든 여부를 떠나 유기농엑스포를 위해 발품을 판 모든 공직자의 희생이 없었으면 이 행사는 성공할 수가 없었다.
그중에서도 양 기관의 수장인 이시종 지사와 임각수 군수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지사는 특히 유기농의 끝이 아니라 유기농을 통해 충북은 물론 대한민국의 농업 위기를 극복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임 군수의 역할은 자못 컸다. 그는 엑스포 유치부터 발벗고 나서 독일로, 인도로, 청와대, 기획재정실, 농림수산식품부 등 중앙관련부처, 7대 종교단체, 전국의 각 교육감 등등 엑스포를 위해 발로 뛰고 또 뛰었다. 내부적으로 입장객 목표도 충북도가 정한 66만명보다 배 이상 많은 120만명으로 잡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그런 임 군수가 지난 6월5일 불미스런 일로 구속됐다. 자신을 기소한 검찰과 치열한 법리 다툼을 벌이고 있어 재판 결과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임 군수는 수감중인 구치소 안에서도 유기농엑스포 성공을 위해 많은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는 한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전 인류를 위해서, 전 지구환경을 위해서,인류의 안전먹거리를 위해서 괴산유기농엑스포를 반드시 성공시켜 주시옵소서. 괴산서 개최되지만 대한민국을 위하고, 전세계를 위하고, 인류의 미래를 위한 생명축제입니다. 제발 하느님. 대성공하도록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했다고 적었다.
옥중에서도 유기농엑스포 성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던 그가 정작 엑스포 개막 소식을 듣고선 베갯잇이 젖도록 울었다고 한다. 이시종 지사는 지난 달 18일 열린 개막식에서 9분동안 개회사를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200자 원고지 13.5매 분량, 정확히 말해 글자수 2692개 안에 임각수의 ‘임’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반면, 이어 등단한 김병우 충북교육감은 이렇게 말했다. “이 자리에 지난 몇 년 불철주야 준비해 오신 임각수 군수님이 안계신게 아쉽다”면서 전국의 교육감들을 찾아다니며 유기농의 교육적 의미를 강조하고 홍보했던 사실을 언급했다. 바로 이거였다.
사실 도민들은 이 지사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길 바랐다. 마차를 함께 끌던 동료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도민들은 이 지사가 왜 임각수 얘기를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더군다나 임 군수는 비록 정당은 없어도 이 지사를 정치적 동지로 여기지 않았던가. 이 지사의 개회사와 임 군수의 옥중눈물 소식을 접하고 잊혀졌던 ‘협량’이 다시 떠올라 영 개운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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