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자신 밖으로 표출하는 사람과 혼자서 안으로 삭이는 사람이 있다. 화를 밖으로 표출하면 엉뚱한 타인이 희생양이 될 우려가 있고, 안으로 삭이면 자신이 희생양이 될 우려가 있다.

언젠가 이런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가족나들이 철이었다. 운전하던 남편이 옆에 앉은 부인과 심하게 다툰 모양이다. 남편은 길가에 차를 세웠다. 부인도 차에서 나왔다. 남편이 휴대폰 밧데리를 비틀어 빼더니 길바닥에 내팽개친다. 부서진 액정화면이 길바닥에 산산이 부서진다. 부인은 팔짱을 끼고 서서 남편을 째려보고 있다가 울고 있는 어린 아이를 사정없이 때린다.

운전 중에 스냅사진처럼 스쳐간 장면이지만 오랫동안 아린 기억으로 남는다. 누구든 운전 중에 옆 자리에서 계속 쪼아대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다. 휴대폰을 박살내는 걸 보아 휴대폰 속의 어떤 사건이나 인물이 그들의 갈등과 관련이 있을 거란 추측이 든다. 그래서 휴대폰을 길바닥에 내던지며 분풀이를 했을 것이다.

부부 싸움 뒤에 엄마는 큰아이에게 화내고 큰아이는 동생에게 화내고 동생은 강아지를 걷어찬다. 우리가 수 없이 들은 말이다. 동대문에서 뺨 맞고 서대문에 가서 화내는 격이다. 문제는 어린 자녀들이다. 부부가 다투고 나서 자녀들에게 화풀이를 한다면 자녀들은 희생양이 되고 만다.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대상이지 화풀이 대상이 아니다. 부모가 갈등하는 사건과 어린 자식은 아무 상관이 없다. 부모를 화해시킬 능력도 없으며, 그 자리를 피해서 달아날 능력도 없다. 부모의 폭력적인 모습이 자식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렇게 화인처럼 찍힌 트라우마로 말미암아 자녀들은 자주 화를 내며 성장하게 된다.

결혼하기 전에 싸우는 장면은 절대로 자식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원칙이라도 세워놓아야 하지 않을까.

부부 사이의 갈등은 대개 사소한 일로 생긴다. 사소한 일들이기에 갈등이 잦을 수밖에 없다. 갈등이 잦으니까 갈등의 장면이 노출될 확률도 높다. 그러나 부부싸움을 긍정적으로 보면 서로의 모난 부분을 마모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피할 수 없으므로 싸워도 치료법을 알고 싸워야 한다.

그 치료법 중의 하나가 알아차리기이다. 알아차리기는 내 마음의 돌봄이며 자신과의 대화이다. 화를 폭발시키지 말고 일단 숨을 고르고 마음을 추슬러야 한다. 상대가 나를 화나게 한 원인이 무엇인지 내가 상대에게 화나게 한 이유는 무엇인지를 헤아리면 신기할 정도로 화가 가라앉는다. 엉뚱하게 자녀가 화를 입지 않아도 된다. 일을 그르치지 않아도 된다.

또 한 가지 치료법은 밖으로 나가 걷는 방법이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전쟁터를 빠져나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인디언들은 화가 나면 일단 집을 나가서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걷다가 화가 풀리는 지점에 막대기를 꽂고 온다고 한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가기 전에 전쟁 같은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걸 잊지 말자. 일단 밖으로 나오면 터널시야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야를 얻게 된다.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부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사물들과 감정을 나누어 갖게 된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으면 뛰어보면 좋다. 뛰는 속도에 비례해서 화가 풀리는 속도도 가속화된다. <청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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