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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열고 바라본 세상, 모두가 시더라
마음 열고 바라본 세상, 모두가 시더라
  • 조아라 기자
  • 승인 2015.11.10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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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간 책 20여권 발간한 청주 다사리장애인야학 사람들
▲ 청주 수곡동에 위치한 다사리장애인학교 야학교실의 한국·최명랑·윤선희(사진 왼쪽부터)씨가 ‘1인1책 펴내기 프로그램’ 수업에 앞서 시낭송을 하고 있다. <사진/고경수>

창살에 비친 눈부신 햇살
씨 뿌린 텃밭에
푸성귀 냄새 풍성한 봄날
햇빛에 이어진 당사실
길게 길게 늘어져 있네.
심술 난 바람이 헝클일까
구름이 잘못 밟아 끊어놓을까
조바심에 바늘방석
실패에 감고 감기 손길이 바쁘다
(고 이봉구 시 ‘햇빛의 실타래’ 전문)

 

12살 때 다리를 다친 이후 3년 간 줄곧 누워 지냈다. 무덤 같은 시간 속에서 먹여주고 대소변을 받아내 주던 할머니만이 유일한 친구였다. 그 해 가을, 감나무에서 떨어지던 단감이 어찌나 먹고 싶던지. 혼자서만 맛있게 먹는 언니가 얄밉기만 했다. 기적처럼 일어났지만 장애인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없었던 그에게 줄곧 삶은 먹을 수 없는 떫은 감 같았다. 다사리장애인학교 야학교실의 김옥수씨. 그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단풍잎 하나를 봐도, 빨간 고추를 봐도 “저기서 시가 나올랑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문득 눈을 들어 바라보니 세상은 모두 ‘시’더라는 이들. 늘 시와 함께 하기에 주위의 따가운 시선도 두렵지 않고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다는 이들이 있다. 다사리장애인학교 야학교실의 ‘1인 1책 펴내기 프로그램’ 수강생들이다.

청주시 수곡동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2010년부터 권금주 수필가의 지도로 ‘1인 1책 펴내기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현재 김옥수(70), 정칠성(65), 윤선희(49), 최명랑(46), 한국(45), 홍석용(29)씨 등이 참가하고 있다.

그동안 이곳을 거쳐 간 수강생들이 펴낸 책은 20여권에 이른다. 신영수씨의 ‘당신이 떠난 후에’, 정칠성씨의 ‘계절따라 세월따라’, 김옥수씨의 ‘아버지의 눈물’, 유경희씨의 ‘아시나요’, 오정은씨의 ‘할 말이 있소’ 등이 이곳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지금은 고인이 된 유지숙씨와 이봉구씨도 각각 시집 ‘마음 속의 작은 편지’와 ‘햇빛의 실타래’를 마지막 선물로 남겼다. 올해는 홍석용씨가 상상의 연인인 디나에게 띄우는 시를 담은 시집 ‘푸른 하늘 아래서’를 펴냈다.

이들은 “시는 나의 병을 치유하는 약”이라고 입을 모은다. 시를 읽고 직접 자신의 경험을 담아 시를 쓰고 책을 내다보니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생각이 들고 자신감도 생겼다.

최명랑씨는 “예전에 나는 외톨이였다. 매일 혼자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이 안 든다”며 “시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퇴행성 관절염, 허리디스크, 어깨근육통 등 각종 병을 앓고 있어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라 불리는 정칠성씨는 “병이 있어 심심하지 않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다. 아내와 딸을 잃고 홀로 생활하고 있는 그에게 시는 이제 인생의 전부가 됐다.

그는 “우울한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시를 공부하게 되면서 몸도 많이 아프지 않은 것 같고 변화된 것이 많다”며 “수시로 시집을 사서 읽고 시를 쓰는데 어찌나 좋은지 친구들이 나보고 시에 미쳤다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예전에 사고도 많이 치고 싸움도 잦았다던 한국씨도 “이제는 낙엽을 봐도 예쁘게 보이고 꽃을 보면 마음이 설렌다”며 수줍게 웃는다.

무대에 오른다는 일은 상상조차 못했다던 이들은 이제 수시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시낭송을 하곤 한다. 시낭송가이기도 한 권금주씨의 정성 어린 지도 덕분이다. 그동안 매년 다양한 주민문화제와 시낭송 행사의 무대에 섰고 ‘충북 시낭송 경연대회’에 참가해 수상권에 들기도 했다. 특히 정칠성씨 등 3명은 지난 2012년 청주여자교도소에서 열린 ‘충청북도 시낭송회’에 참가해 도종환 시 ‘담쟁이’를 합송해 참석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을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넘어가는 담쟁이의 모습에 자신들이 투영돼 가장 좋아하는 애송시이기도 하단다.

권금주씨는 “시에 대한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 시낭송을 가르쳐 드렸는데 이제는 진심으로 시를 즐기고 서로 시를 주로 받으며 노래 부르듯 시낭송을 하고 있다”며 “언어장애를 가지신 분들의 어눌한 발음이 오히려 화음처럼 아름답게 들리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다사리에 발령을 받았을 때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됐는데 지금은 마치 이 분들과 한 가족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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