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수필가)

▲ 박영자(수필가)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던 지난 주말, 나는 강원도 철원 땅에 있었다. ‘단비를 몰고 온 여인’ 이라는 찬사까지 들으면서 기분이 좋았었다. 가뭄이 심해 올해 단풍이 시원치 않았는데 그마져도 비바람에 떨어져 나뒹굴며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단풍잎들이 마지막이나마 물을 흠뻑 들이 마시고 갈증을 해소하고 갈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여행길은 불편하지만 단비이니 소나기로 퍼부어 주기를 바랐다. 기상대에 의하면 미시령을 비롯한 영동 지방에는 200mm가 넘는 큰 비가 왔고, 가뭄이 심한 중부 내륙에도 60mm가 넘는 가을비가 내려 ‘단비’를 넘어 ‘금비’가 되었고 그 비의 가치는 2500억 원이나 된다니 참말 다행스럽다.  철원에 간 길에 제 2땅굴을 견학하였다. 전에 제 3땅굴을 본 일이 있었지만 제 2땅굴은 처음이다. 빗속에 우산을 받고 입구로 들어가는 차례를 기다리며 날씨도 구중중하고 을씨년스러운데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아니, 우리는 참으로 이상한 나라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표현하기 어려운 비애 같은 것이 가슴 속에서 울컥 올라왔기 때문이다.
 
  1945년 내가 겨우 다섯 살일 때 해방이 되었고 철이 들기도 전인 10살 때 6.25를 겪은 후 65년을 ‘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이 늘 내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으니 하루도 마음 편하게 살아 보지 못한 일생이 아닌가. 생각해 보면 이 보다 더 불행한 생애가 있는가 싶다. 통일이라는 말도 신기루처럼 허공에서 어른거렸을 뿐 그 실체는 없었다. 어쩌면 내 생애에 통일을 보지 못하고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참말 박복한 우리였다.
 
  안전모를 받아쓰고 땅굴로 들어서니 어둠침침하고 바닥은 축축하여 음습하기 짝이 없다. 땅굴의 높이가 2m밖에 되지 않아 자칫하면 천정에 머리를 부딪쳐서 다치는 경우도 있단다. 내 키는 안전권이지만 안내원의 ‘머리 조심 하세요.’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허리가 굽혀진다. 폭은 2m 정도라 들어가는 사람과 나오는 사람이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한다.

  공기가 충분하지 못하니 호흡도 곤란하고 머리가 아프기까지 하다. 키가 큰 남자들이 천정에 안전모 부딪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이 단단한 화강암을 어떻게 이렇게 뚫었을까. 자그마치 3.5km를 왕복하여 7km를 걸었다. 지하 50~160m 라니 으스스하기도 하였다. 1975년 3월 24일 발견되었다니 그것도 40년 세월이 갔다..
 
  이 땅굴이 발견 될 당시 수색하던 한국군 7명이 북한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 땅굴을 이용하면 1시간에 약 3만 명의 무장병력이 이동할 수 있으며 탱크까지 통과할 수 있다고 하니 놀랍다. 지금은 안보관광코스로 운영하고 있으며,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데 외국인도 많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분단국가에만 있는 특별한 볼거리가 아니겠는가. .
  내부 천정 여기저기 물이 흘러내리고,  구석구석 이끼도 살고 있다. 군사분계선 남쪽 1.1km까지 파 내려왔으니 만약에 이 땅굴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북한군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두더지처럼 이 땅굴을 팠다는 세 가지 증거는 다이너마이트 장전공의 방향이 북에서 남쪽으로 향하고 있고, 갱도 배수로의 물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 굴착 공법이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점이라는 설명을 듣고 보니 정말 물이 북으로 흐르고 있었다.

  요즈음 SNS를 보면 여기저기 아직 발굴하지 않은 땅굴이 수없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사비를 들여가며 땅굴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퇴역장군, 목사님, 신부님, 등등, 그러나 국방부는 땅굴이 없다고 주장하는 입장이니 혼란스럽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밝혀져야 하지 않겠는가.

  땅굴을 다 보고 나오면서 우리는 심각한 전쟁 중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무감각한 사람들이 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서글프기도 하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니 땅굴 같은 것은 염두에도 없는 것은 아닐까.
정치하는 사람들 싸움만하지 말고 땅굴 견학부터 다녀오면 생각이 좀 달라지려나. 나라가 있고나서야 정치도 있고 밥그릇도 있는 것인데 말이다.
 
  단비가 내려 해갈을 하듯 우리의 갈증을 해소 할 통일은 어디 쯤 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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