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논설위원 / 신성대 교수)

▲ 신기원(논설위원 / 신성대 교수)

뽀빠이 이상용과 함께하는 토크콘서트에서 현장사진을 찍으려고 스마트폰을 꺼냈는데 액정과 폰에 금이 가면서 부서졌다. ‘아직 할부금도 다 내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을 하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희한한 생각이 들어서 꿈 해몽을 찾아보니 ‘핸드폰이 망가지거나 액정이 깨지는 꿈은 타인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거나 일진이 나쁘다는 암시입니다. 이런 꿈은 예지몽으로, 핸드폰만을 표상으로 나타낸 것이 아니라, 님의 당분간의 운수가 제대로 길을 찾지 못하므로, 매사에 주의할 것을 예시합니다. 이런 꿈은 작은 손실을 통하여 큰 손실을 막는 액땜의 의미도 있습니다’라고 되어 있었다. 하긴 그러고 보니 요즘 소통이 제대로 안되어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 꿈에도 영향을 준 것 같았다. 또 어제 학교에서 산·학·관 협력 교류회를 하면서 이상용씨가 ‘인생을 아름다워라’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는데 학생들 발표준비를 돕느라 가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꿈에 반영된 것 같다.
 이런 점에서 프로이드(Sigmund Freud)의 주장은 일정 부분 설득력이 있다. 프로이드는 꿈의 해석을 통해서 수면 중에는 깨어있을 때의 자아활동이 저하됨으로써 억압된 욕망이나 불안이 변형되어 의식에 떠오르는 것이라고 하면서 꿈의 상징적 내용해석에 관한 이론을 전개하였다. 그는 '모든 꿈은 억압된 소원의 성취를 목적으로 한다'고 하였다. 즉, 그는 과거에서 비롯되거나 꿈꾸기 전날의 낮에서 유래한 하나 이상의 소원들이 꿈에서 성취되는 것으로 묘사되며, 그것을 해석하다 보면 억압된 유아기의 소원이 숨겨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고 현실의 삶 또한 대단히 복잡미묘한 인간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에 꿈이라는 무의식세계의 척도로 현실세계를 분석하기에는 한계가 많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일상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꿈을 통해서 행운을 얻거나 큰 복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간혹 꿈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가르쳐 준 곳에서 산삼을 캤다거나 숫자를 알려줘 로또복권에 당선됐다는 보도를 접하는데 이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신라시대 김유신의 둘째누이인 문희도 언니 보희의 선유몽(꿈에 높은 산이나 고개에 올라가 소변을 보았더니 그 물에 온 나라가 잠겼다는 꿈)을 사서 김춘추와 결혼하게 되고 결국 왕비가 되었으니 비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꿈은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며 ‘꿈은 개인의 기록이며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인식도 가질 수 있다.
 이처럼 꿈은 그 내용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꿈은 본인이 꾸는데 꿈의 내용은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개된다. 간혹 꿈을 꾸기 전에 현실에서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서 어떤 작품을 구상하고 있거나 복잡한 실험에 대한 생각을 실제로 하고 있었던 경우 이러한 고민이 잠재의식속에 남아서인지 꿈속에서 영감을 받고 작품을 완성하거나 실험을 성공시킨 경우도 있기는 하나 대부분의 경우 꿈은 날개를 달고 정처없이 부유한다.
 문득 ‘꿈의 내용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사람이 하루에 6시간씩 잔다고 할 때 그는 인생의 1/4을 수면상태에 있게 된다. 수면상태에 있는 동안 항상 꿈을 꾸는 것은 아니지만 꿈을 마음먹은 대로 꿀 수 있다면 수면 중에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꿈에 대한 혼돈(?)은 장자의 胡蝶之夢이란 우화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영국의 철학자 러셀(Bertrand Russell)도 “우리가 깨어있는 삶이라고 부르는 것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악몽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내가 꿈꾸고 있다고는 믿지 않지만 꿈꾸고 있지 않다고 증명할 수도 없다”고 하였다. 꿈에 대한 성현들의 말씀을 곱씹으며 유현한 꿈의 세계를 알 수는 없지만 일상에서 보람을 느끼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후회도 없고 꿈도 잘 꿀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는 1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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